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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권말부록|명문대 합격 노트①

미국·영국 11개 명문대 합격하고 MIT 진학하는 오주현

“언젠가는 꼭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중학교 때부터 국·영·수는 물론 예체능도 이를 악물고 했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김미희‘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5.13 17:04:00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동물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는 오주현양. 그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MIT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의 꿈은 퀴리부인 같은 존경받는 여성 과학자가 되는 것.
어려서부터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세우고 집중력을 발휘해온 그만의 공부 비결을 들어보았다.
미국·영국 11개 명문대 합격하고 MIT 진학하는 오주현

지난 2월 민족사관고를 졸업한 오주현양(19)은 최근 MIT, 스탠퍼드, 케임브리지, 듀크, 존스 홉킨스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11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읽고 남이 가라는 길로만 가다가는 낙오자가 되고 만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여섯 살 때 엄마가 개미집을 사주셨어요. 제가 개미에 관심이 많으니까 키워보라고요. 개미들의 행동을 매일 관찰하고 돌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 뒤로 병아리도 키워보고 개구리도 길러봤죠.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복제양 돌리가 화제였는데 그때 유전공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중학교 수업 시간에 비로소 유전 개념을 배우면서 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제 목표가 정해졌고, 부모님께 앞으로 생물학을 전공할 거라고 공표했어요. 그 후로는 그 목표를 향해 달려왔을 뿐이죠.”
유학에 대한 꿈 역시 그 누구도 아닌 오주현양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의 유학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나 유치원 시절까지 지내고 돌아온 그는 어렸을 때 이미 스탠퍼드 등 그 지역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며 유학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귀국 후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까지 학원에 다니며 영어를 계속 공부한 것도 영어가 유학에 꼭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 그는 방학 때면 미국으로 여름 캠프를 떠났다고 한다.
“영어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려고 미국 아이들이 오는 캠프로 골라서 갔어요. 우리나라 아이들이 많이 하는 해외 영어연수는 우리말을 자주 쓰게 돼서 생각만큼 영어가 늘지 않거든요. 민족사관고에 진학한 것도 해외 유학을 위한 국제반이 있어서였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알기에 행복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는 그는 한번도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공부하는 데 있어 주현양의 강점은 탁월한 집중력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는데 그는 특이하게도 대학입시반에서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서너 시간씩 한자리에 앉아서 작품을 그려야 하는 데생 수업이 지겨운 줄 몰랐다고. 주현양은 “빠릿빠릿하지 못하니 집중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까르르 웃었다.
꼼꼼한 성격도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노트 정리하는 것을 좋아해 수업시간이면 선생님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어 학교에서 ‘필기왕’으로 통했을 정도. 노트 필기가 충실한 덕분에 중학교 때 교과서와 노트만으로 공부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일찌감치 생물학자를 목표로 정하고 유학 준비
“중학교 때는 오로지 공부를 위해 살았어요. 완전히 ‘파고드는 스타일’이었죠. 국·영·수는 물론 가정·기술 같은 암기 과목도 안 가리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체육 실기도 목숨을 걸고 했고요(웃음). 성적에 욕심이 있었다기보다 뭐든 언젠가는 다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데다 제 성격이 무조건 열심히 해야 안심이 되거든요. 실제 그때 그렇게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게 밑거름이 돼 고등학교 때는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서 할 수 있었어요. 당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여도 공부해두면 언제든 꼭 쓸모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미국·영국 11개 명문대 합격하고 MIT 진학하는 오주현

작년 여름 중국에서 열린 APEC 청소년과학축제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을 당시 외국 참가자들과 함께 한 모습.


진부한 표현이지만 주현양 역시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부를 쉽게 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발전이 없다”고. 중학교 때부터 그토록 악바리처럼 공부했던 주현양도 민족사관고에 입학했을 때 좌절감을 맛보았다고 한다. 외국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국제반에 들어갔는데 같은 반 아이들의 실력이 예상보다 훨씬 우수했던 것. 유치원 때까지 미국에서 살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도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건만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친구들 앞에서는 한없이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들과 수준을 맞추려니 마음이 급했죠. 더구나 영어는 다른 과목과 달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실력이 늘지 않거든요. 영어는 계단식으로 실력이 늘어요. 어느 정도 실력이 향상되다가 문득 멈춰서는 한동안 진전이 없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지, 그 단계를 더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서요. 얼마나 더 공부해야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 거죠. 열심히 하는데도 성과가 안 보이니 실망도 크고요.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정면 승부를 했어요. 제 수준에 좀 어렵다 싶은 과제를 만나도 피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어려운 다음 단계에 과감히 덤볐죠. 쉽게 하려고 자꾸 요령을 부리면 실력이 더 떨어지잖아요.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극복해나가는 정공법을 썼더니 효과가 있더라고요.”
미국·영국 11개 명문대 합격하고 MIT 진학하는 오주현

지난해 네팔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


악바리 근성이 있긴 하지만 그는 전형적인 ‘공부벌레’ 타입은 아닌듯 하다. 예쁘장한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성격이 소탈해 남자 후배들이 ‘형’이라고 부른다고. 운동도 좋아하고, 동아리 활동과 자원봉사도 열심이었다. 외국의 명문대학은 성적만 좋아서는 좀처럼 입학 허가를 내주지 않고, 취미나 봉사활동을 비중 있게 평가해 민족사관고에서도 학생들이 운동과 동아리 활동, 자원봉사 등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유도한다.
학교에서 아침마다 검도를 배운 그는 수영 실력도 수준급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영선수로 활약했는데 고3이던 2004년, 강원도민체전에 횡성군 대표로 나가 수영 4종목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그는 미국에 가서도 수영을 계속할 생각이라며 스쿼시와 세일링도 시도해볼 계획이라고 한다. 동아리 ‘시사토론반’ 활동도 열심이어서 지난해엔 ‘유엔상임이사국 수를 더 늘려야 하나’ 하는 주제로 토론하기 위해 중립국인 스위스대사관을 취재하기도 했다.
운동 잘하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
여름이면 ‘집짓기 봉사’를 하고, 격주로 꽃동네를 방문해 식사 준비를 돕거나 아이들을 씻기고 돌보는 일을 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안마 봉사를 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였다. 개인적으로는 3년 전부터 제3세계 어린이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편지를 주고받던 11세 소녀를 만나기 위해 직접 네팔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 시간쯤 올라가야 하는 고산지대에 살고 있었어요. 흙으로 지은 집에서 어렵게 사는 그 아이를 보고 제가 정말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어린 아이들과 놀아주고 선물로 가져간 학용품도 나눠주면서 일주일간 머물렀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죠.”

미국·영국 11개 명문대 합격하고 MIT 진학하는 오주현

언제나 힘이 되어준 가족.


강원도 횡성에 자리한 민족사관고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터라 그는 입학 초기 가족들이 보고 싶어 울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학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셈 치자’ 하고 마음을 다잡은 뒤에는 사진 찍기에 취미를 붙여 학교생활, 친구들과 지내는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아 가족들에게 보냈다고.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사진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는 그는 “사진은 그림만큼 많은 도구를 필요로 하지 않고 카메라만 있으면 되니 언제든 마음먹으면 바로 작업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한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사진은 곧 특기로 발전해 강원도 학생사진대회, 사진작가협회 사진전 등에 출품해 입상하기도 했다.
처음엔 두렵고 외로웠지만 기숙사 생활을 통해 그는 자기 자신을 추스를 줄 알게 되고 원하는 분야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예비 교육이라고 해서 집 떠나 생활하는 훈련을 받아요. 그땐 불안했죠. 기숙사 생활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니까요. 아플 땐 양호 선생님이 돌봐주시지만 그래도 엄마와는 비교가 안되죠. 그런데 기숙사 생활을 1년 정도 하니까 저절로 씩씩해지더라고요. 입이 짧아서 먹는 걸 즐기지 않던 제가 아무거나 잘 먹게 됐을 뿐 아니라 혼자서 밥도 해먹게 됐어요(웃음).”
“퀴리 부인 같은 여성 과학자 되어 인간 DNA의 비밀 풀어낼 거예요”
기숙사 생활이 익숙해지자 2학년 때는 주말이나 방학에 고려대학교 생명공학기술원 실험실을 찾아 생물학도의 꿈을 키웠다. 그가 고대 실험실에서 한 일은 단순한 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인삼에 들어 있는 산성 당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의 활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연구해 논문을 썼다. 인삼과 쑥이 위에 좋다는 한방 민간요법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이 논문은 2003년 고등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 참여하는 ‘삼성 휴먼테크 논문대회’에서 생물 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배움이 주는 즐거움을 깨닫고 생물학을 전공하겠다는 의지를 더 굳혔다고 한다.
“MIT에 가면 포스트 지놈 프로젝트에 참여할 거예요. 인간 지놈 프로젝트가 비로소 완성됐잖아요. 그건 DNA 배열 창고의 열쇠를 발견한 것에 불과해요. 그 안에는 인간 DNA의 엄청난 비밀들이 마구 뒤엉켜 있어요. 그걸 하나하나 밝혀서 창고를 정리해야죠. 유전에 관한 모든 신비를 벗겨내는 연구를 하고 싶어요.”
실험실 여건 등 연구 환경이 가장 좋은 곳을 고르다 보니 11개 대학 중 MIT를 선택하게 됐다는 오주현양. 그의 꿈은 퀴리 부인처럼 평생을 연구에 바친 여성 과학자가 되는 것. 그는 벌써부터 대학에서 공부할 생각을 하면 흥분이 된다고 한다.


여성동아 2005년 5월 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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