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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Book review

‘화필기행 - 들꽃길 달빛에 젖어’

감칠맛 나는 글에 화가의 그림이 곁들여진 봄나들이 길라잡이

■ 글ㆍ김차수‘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 사진ㆍ나남출판 제공

입력 2005.05.13 16:32:00

화창한 봄날, 주말 나들이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점에는 여행안내서와 기행문을 엮은 책들이 즐비한데,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이 언론인의 글에 화가의 그림을 곁들인 ‘화필기행 - 들꽃길 달빛에 젖어’다. ‘화필기행(畵筆紀行)’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글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을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오롯이 담아냈고, 그림은 강산의 빼어남을 옹골차게 옮겨놓았다.
‘화필기행 - 들꽃길 달빛에 젖어’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경북 영덕 풍경. ‘화필기행…’에 실린 박수룡 화백 작품.


‘박수룡화백이 나를 찾아왔을 때만 해도 나는 화필기행류의 글쓰기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박 화백은 엄숙하게, 마치 독립운동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사람들이 다 떠나요. 이름도 낯선 몰디브나 피지로 몰려가고, 태국 중국은 이웃집 마실가듯이 다녀와요. 진짜 좋은 건 바로 우리 곁에 있는데….”
우리의 ‘화필기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 화백의 순수한, 어찌 보면 아기 같은 애국심이 그 자신은 물론 나까지 대한민국의 산과 강, 들과 바다를 헤집고 다니게 만들었다….’
‘화필기행 - 들꽃길 달빛에 젖어’ 글쓴이 민병욱씨는 책머리에서 기행문을 쓰게 된 계기를 이처럼 적고 있다. 그는 3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날카로운 논평 기사, 폐부를 찌르는 칼럼으로 필명을 날렸다. 현역 기자시절엔 사회부 정치부 등 주로 딱딱한 기사를 쓰는 부서에서 근무했지만 뛰어난 글 솜씨를 보여 ‘민초’(언론계에서는 기사를 잘 쓰는 기자들에게 ‘초를 잘 친다’고 말한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사와 기행문은 전혀 다른 유형의 글쓰기인데도 불구하고 ‘화필기행…’에는 글쓴이의 글 솜씨가 여지없이 살아 있다.
그림을 그린 박수룡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고 수많은 개인전을 개최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중견화가 중 한 사람.
두 사람은 매달 2, 3일씩 꼬박 20개월 동안 ‘독립운동 하는 사람처럼’ 전국을 쏘다녔다. 강산의 아름다움에 덧붙여 사람살이의 정겨움도 함께 쓰고 그렸다.
‘화필기행 - 들꽃길 달빛에 젖어’

이들의 화필기행은 푸근한 황금빛이 넘실대는 땅 끝 해남에서 시작됐다. 이어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고향으로 강바람과 대숲의 속삭임이 넘쳐나는 하동포구, 남한강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지고 온달 장군의 전설이 스며 있는 단양 팔경,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 1만2천 봉우리가 만물상을 빚어내는 금강산까지 여정이 계속됐다.
이들이 찾은 곳이 관광객이 넘쳐나는 명승지만은 아니다. 이들의 글과 그림을 보면 왜 그곳을 찾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글쓴이는 경기도 파주의 통일대교, 군사분계선, 판문점, 화석정 등을 둘러보고 이렇게 썼다.
‘역설 또는 부조화를 몸으로 실감하려거든 경기도 파주에 가보라. 한반도 어느 땅이 여기처럼 고스란히 아이러니를 간직한 채 울고 웃고 화내거나 춤추며, 또 때론 한숨을 쉬고 탄성도 자아내게 하는 곳이 있는가. 문화와 반문화, 전쟁과 평화, 끊어짐과 이어짐, 파괴와 생성, 긴장과 이완 등 세상의 모든 반어들이 파주에는 공존한다. 그런 역설에 대해 민족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하며 끊임없는 물음을 던진다.’
화백은 오울렛 관측소(군사 분계선 밑의 첫 남쪽 초소)에서 바라본 북녘의 송악산, 단절을 향해 질주하는 자유로, 텅 빈 응시만이 존재하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등을 그린 그림으로 분단의 아픔과 숨 막히는 답답함을 표현했다.

‘화필기행 - 들꽃길 달빛에 젖어’

개성 송악산이 지척으로 보이는 경기도 파주 오울렛 관측소(왼쪽)와 율곡 선생이 제자들과 시문을 논하던 화석정. 책에 실린 박화백의 작품.


‘화필기행 - 들꽃길 달빛에 젖어’

글쓴이의 글과 화백의 그림을 보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궁합이 맞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복사꽃과 대게의 고장인 경북 영덕을 돌아보고 글쓴이는 ‘볼은 물론이요, 머리끝 발끝까지 발갛게 물들이는 복사꽃밭 가운데 서니 없던 시심도 절로 생겨날 듯 마음속까지 화사해진다’고 묘사했고, 화백은 발걸음마저 꽃물이 들 것 같은 분홍빛 복사꽃을 화폭에 가득 담았다.
이들의 글과 그림은 서울 도심의 인사동에서부터 경기도 양평 양수리의 한강 두물머리, 인천 영종도, 전남 담양, 충남 공주와 부여, 강원도 철원, 경북 울진, 경남 밀양, 전북 부안 위도, 소록도에 이르기까지 대장정(大長征)을 보여주고 있다. 화백이 간경화로 몸져누워 간 이식 수술을 받는 불상사가 없었다면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두 사람의 발품팔이는 더 이어졌을지 모른다.
글쓴이는 “몸이 상하는 것도 모르며 그림에 혼신을 쏟아부은 그가 자랑스럽다. 그림이 없었다면 아마 내 글은 생명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며 화백에게 공을 돌렸고, 화백은 “글이 내 그림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다”고 글쓴이를 칭찬했다.
여행에 나서기 전 두 사람이 이처럼 공력을 들여 만든 이 책을 읽는다면 즐거움이 배가될 듯하다. 이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자신의 느낌과 이 책의 글 그림을 비교하며 읽는다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법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나남출판, 318쪽, 1만2천원).

여성동아 2005년 5월 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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