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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연기로 주목받는 탤런트 최규환·아버지 최주봉

“같은 연기자로서 부자지간을 뛰어넘는 동질감 느껴요”

■ 글·김유림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5.05.02 18:34:00

SBS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김두만 역을 맡아 눈길을 끄는 신인 탤런트 최규환.
그가 중견배우 최주봉의 아들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최규환과 그의 아버지 최주봉을 만나 그동안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연기로 주목받는 탤런트 최규환·아버지 최주봉

SBS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최서희와 김길상 부부를 괴롭히는 악역 김두만으로 열연 중인 신인 탤런트 최규환(27).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연기로 주목받는 그가 현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을 맡고 있는 중견배우 최주봉(60)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규환은 그동안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마들렌’ ‘주홍글씨’, 연극 ‘오델로’ ‘고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아왔다. 드라마 출연은 이번이 처음. 그래서 아직까지 TV 메커니즘에 익숙지 않아 연극이나 영화에서처럼 오버액션을 할 때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아직 송사리지 뭐. 그래도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보여 다행이에요. 어려서부터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연극 연습하는 걸 보고 연기보다 연출 쪽으로 관심이 있는 줄 알았어요. 배우가 되겠다고 하기에 처음엔 ‘잘 생각해보라’고 충고를 했죠. 기어이 이 길을 가겠다는데 말릴 수가 없더군요(웃음).”
아들이 출연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일절 연기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최주봉은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자존심은 지켜줘야 하기에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비판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무대 뒤 풍경을 보고 자란 그는 그 안에서 배우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연기자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특히 분장실은 어린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는데, 당시 또래아이들은 가볼 수 없는 곳을 혼자 구경한다는 사실에 마냥 신이 났다고.
하지만 배우인 아버지를 둔 것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최주봉이 89년 방영된 KBS 드라마 ‘왕룽일가’를 통해 ‘쿠웨이트 박’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을 때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놀림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
어릴 때부터 아버지 따라 가본 무대 뒤 풍경에 반해 배우되기로 결심
“어릴 땐 저를 알리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도 항상 ‘최주봉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피곤하기도 했어요. 특히 아이들이 ‘너희 아빠가 쿠웨이트 박이야?’ 하면서 놀릴 때면 많이 창피했죠. 그렇게 아버지를 부르는 아이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고요(웃음).”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고3 때 편지 한 장만 남겨놓고 집을 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보름 정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사람들 앞에서 웅변도 하고 돈벌이도 하는 성격개조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것. 며칠이 지나도록 아들의 소식을 모르자 집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유별났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꼭 하는 놈이었으니까. 집을 나갔을 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라요. 한 사흘 지난 뒤 전화가 한 통 걸려왔는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여기 대구인데 전화하는 거 걸리면 혼나니까 그만 끊을게요’ 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리더군요. ‘다행히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나마 안심을 했죠. 요즘도 그 얘기하면서 많이 웃어요.”
그는 성격개조 프로그램 참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새벽에는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고 방과 후에는 전단지를 돌렸다고 한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그는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렸다고. 처음 아들이 연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최주봉은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연기로 주목받는 탤런트 최규환·아버지 최주봉

“아버지라고 해서 자식의 꿈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설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선택한 것인데 단박에 무시할 순 없죠. 자신이 원하는 거니까 한번 마음껏 해보라고 그냥 두고 싶어요.”
최주봉은 가끔 아들이 출연하는 연극 공연장에 찾아가 말없이 아들의 연기를 지켜본다고 한다. 우여곡절 많았던 자신의 젊은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때면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이 걱정도 된다고.
“다행히 제가 활동할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요. 그때만 해도 배우는 춥고 배고픈 직업이었고 미래가 불투명했죠. 하지만 지금은 배우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있잖아요. 우리나라가 좁다면 외국으로 진출할 수도 있고요. 배우로서 어떻게 쓰임을 당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이제는 자신의 기량만 갈고닦으면 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그는 무엇보다도 아들에게 “절대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대스타로 성장해주길 바랄만도 하겠지만 그는 “인기 있는 배우보다 인정받는 배우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정한 배우가 되길 원한다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돼요.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과 뚝심만 있으면 되는 거죠. 저도 나이 40이 넘어서야 사람들에게 제 이름을 알릴 수 있었어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것도 배우의 미덕이죠.”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연기를 보고 자란 최규환은 최근 들어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고 한다. 특히 공연 오디션에 참석할 때면 ‘아버지도 똑같은 과정을 겪으셨겠지’라는 생각에 부자지간을 뛰어넘는 동질감이 느껴진다고. 그는 “어려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인생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어렸을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묻자 “가정보다는 연기가 우선이었고 자식들에게 매우 엄격했으며 약속 관념이 확실한 분”이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불만이 많으셨을 거예요. 형이나 저는 ‘아버지는 원래 바쁘신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불만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아버지께 서운한 적이 많으셨겠죠. 저 역시 불만이 있다면 아버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거예요. 지방에 촬영가시면 며칠 얼굴 못 뵙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요(웃음).”

아들이 인기 있는 배우보다 인정받는 배우로 성장하길 바라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족들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는 최주봉은 “규환이가 연기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아내가 다소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평소 그에게 “당신은 다시 태어나도 아마 배우할 거야”라고 말하던 아내이지만 막상 아들이 남편의 뒤를 잇겠다고 하자 마음 무거워했다는 것.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아들마저 연기를 하겠다고 하자 겁이 났던 모양이에요. 한동안 고민을 하더니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더군요. 얼마 전에는 ‘아들이 두 명이나 있는데 한 놈도 아버지 뒤를 잇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 역시 서운했을 거야’라고 말하더군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최규환은 “제가 고집이 센 편이라 어머니가 반대하시면 또 집을 나갈 거란 걸 아시기 때문에 아마 일찍 포기하셨을 거예요” 하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연기로 주목받는 탤런트 최규환·아버지 최주봉

최주봉에게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냐”고 묻자 그는 “누구를 보듬어주지 못하는 성격” 이라며 허허 웃었다.
“그래도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아내와 함께 산에 올라요. 젊었을 땐 아내가 자주 아팠는데 운동을 시작하고부터는 많이 건강해졌어요. 또 요즘에는 ‘여행 가고 싶으면 마음껏 가라’고 해요. 젊었을 때 저 혼자 많이 돌아다녔는데 나이가 드니까 아내에게 미안하더라고요. 같이 가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아내 혼자라도 많이 다니라고 말하죠.”
최규환은 같은 과 4년 후배와 1년째 교제 중인 상태. “며느리도 연기하는 사람이면 좋겠냐”고 묻자 최주봉은 아들 눈치를 슬쩍 보더니 “글쎄, 며느리까지 연기를 하면 좀 힘들지 않을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규환은 앞으로 장르에 구별 없이 다양한 무대에서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최주봉의 아들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2세 연기자란 타이틀이 부담스럽기도 하다는 그는 “아직까지 많이 미숙하더라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길 바란다”는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 아들에게 최주봉은 선배 연기자로서 “물 흐르듯 세상의 순리대로 따르며 언제나 겸손한 배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여성동아 2005년 5월 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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