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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열정의 화신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출연하는 마당놀이의 대모 김성녀

“마지막까지 연기하다 무대 위에서 죽음 맞고 싶어요”

■ 기획·김유림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경향신문사 제공 ■ 의상협찬·강희숙 부띠끄

입력 2005.05.02 18:27:00

연극배우 김성녀가 6월 초 연극 ‘벽 속의 요정’으로 배우생활 30년 만에 처음 모노드라마에 도전한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도 쉴 새 없이 연극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 연출가 남편 손진책씨와 호흡을 맞춘다. 배우와 연출가로 만나 부부이자 동지로 평생 외길을 걷고 있는 남편과의 결혼생활 & 30년 연기인생 고백.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출연하는 마당놀이의 대모 김성녀

“머리 다듬을 시간도 없어서 그냥 이렇게 두건 쓰고 다녀요.”
올해로 연극인생 30년. 배우 김성녀(55)는 해마다 평균 3백 회씩 무대에 오르며 인생이 연극인지 연극이 인생인지 모를 배우의 삶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간혹 그의 남편이라고 오해받기도 하는 마당놀이 단짝배우 윤문식은 그를 두고 “세 사람 몫의 인생을 한꺼번에 사는 여자”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연극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뜻일 텐데, 약속시간보다 1시간 남짓 늦게 나타난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감기몸살에 걸려 쓰러지기 직전이에요. 하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마음 놓고 끙끙 앓아눕지도 못하죠. 어떨 땐 너무 힘들어 대본을 보면서 울 때도 있어요.”
현재 그는 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김성녀의 중앙음악극단’ 단장도 맡고 있다. 한국적인 뮤지컬에 뜻을 둔 제자들을 따로 모아 마당놀이와 창극 등 각종 전통극과 관련된 실기지도를 하고 있는 것.
그가 학교 수업을 끝내고 달려가는 곳은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미추산방. 이곳에서 그는 거의 매일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지난 86년 그의 남편이자 연극연출가인 손진책씨(58)가 그를 비롯해 윤문식, 김종엽 등 배우 30여 명과 극단 미추를 창단해 연극뿐만 아니라 ‘춘향전’ ‘뺑파전’ ‘신이춘풍전’ ‘삼국지’ 등의 마당놀이를 기획해 해마다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렇게 인생무대에서 1인 다역을 맡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연극무대에서 1인 다역을 맡았다. 연극인생 30년 만에 처음 모노드라마에 도전장을 던진 것. 그는 오는 6월3일부터 7월17일까지 우림청담씨어터에서 선보이게 될 연극 ‘벽 속의 요정’에 출연해 이념갈등으로 빚어진 한 가정의 참상과 부정(父情)을 연기할 예정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모노드라마에 도전해보고 싶어 하죠. 그동안 마당놀이에 매달리느라 모노드라마를 할 시간이 없었어요. ‘벽 속의 요정’은 뮤지컬 형식의 모노드라마인데 3~4년 전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어 장기공연에 들어갔던 작품이죠.”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출연하는 마당놀이의 대모 김성녀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이번 연극의 연출은 남편 손진책씨가 맡았다고 한다.
“연출가인 남편은 숲이고 배우인 저는 나무예요. 한평생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이라는 점이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죠. 사실 남편과 함께 작품을 한다고 해도 이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갈 뿐이니까요. 남편은 연극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영원한 ‘동지’죠.”
“연출가 남편은 연극인생 함께 걷는 영원한 동지”
연극계에서 환상의 콤비로 알려진 이들 부부는 슬하에 딸 지원(28)과 아들 지형(26)을 두고 있다. 딸 손지원도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데 현재 영국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 순회공연 중이다.
“대학생인 아들만 빼고 온 가족이 연극인이다 보니 다른 가족들처럼 일상적인 대화가 잘 안돼요. 무슨 말을 하다가도 결국 연극 얘기로 흘러버리거든요. 딸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한 지원이한테 ‘집착하지 말고 그냥 즐겨라’라는 말을 자주 해요. 주인공병 걸리면 배우로 사는 게 참 힘들어지거든요. 배우는 남에게 늘 선택되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잖아요. 지원이는 차근차근 실력을 갖춰서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자신을 갖다놓을 수 있는 능동적인 배우이자 훌륭한 기획자, 제작자로 커나갔으면 해요.”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출연하는 마당놀이의 대모 김성녀

이들 부부는 지난 77년 그가 음악극 ‘한네의 승천’ 오디션을 보러 민예극단 사무실에 갔다가 처음 만났다고 한다.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연출가라기보다 문학청년처럼 보였어요. 숱이 많은 검은 머리카락과 사슴 같은 눈이 인상적이었죠. 당시 저나 남편이나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저는 바람둥이 아버지 때문에 남자에 질려서 일찌감치 독신을 선언했고 남편은 ‘연극과 결혼했다’며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었죠.”
그런데 젊은 연출가는 그를 보자 오디션도 치르지 않은 채 그를 주연배우로 결정했다고 한다.
“잔뜩 벼르고 나갔는데 오디션도 하지 않아서 이상했죠. 옆에 있는 사람한테 ‘사이비극단 아니냐?’고 물었더니 민예 하면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극단이라고 하더군요. 오디션 대신 근처 다방에 가서 처음 본 연출가와 연기, 소리, 배우의 역할 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건방져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순수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마치 ‘꿈을 먹고 사는 사람’ 같았죠.”
그 자리에서 그는 남편에게 “왜 오디션도 안 보세요?”라고 따져 물었는데 손씨는 “오디션 안 봐도 첫눈에 재목감이란 걸 알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 만남부터 서로 ‘독신주의’를 내세운 탓에 오히려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이성 간의 데이트라기보다 배우 만들기 수업과 같은 만남이 이어졌는데 남편이 “배우는 문화 전반에 대해 폭넓게 알아야 한다”며 미술관, 발레공연장 등으로 그를 데리고 다녔다고.
그렇게 밋밋한 만남을 가져온 두 사람은 첫 합작품 ‘한네의 승천’이 막을 내린 후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출연하는 마당놀이의 대모 김성녀

“작품이 끝났다는 허탈감 때문에 쫑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엉엉 울었어요. 그 다음 날 남편한테 전화가 왔는데 다짜고짜 ‘3일 동안 근신해!’ 이 말만 남기고 전화를 뚝 끊는 거예요. 원래 과묵한 사람인데 그 전화를 받고 ‘이 사람이 나한테 관심 있구나’ 하고 느꼈죠.”
그날 이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손씨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손씨는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전화를 해놓고도 말을 잘 못했다고. 그가 먼저 “어디서 만나자고요?”라고 물으면 그때서야 “광화문 두부집” 하고는 바로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고 한다.
“남편이나 아이 모두 자기 일은 자기가 챙기는 ‘셀프’ 집안이에요”
지난 77년 결혼한 그는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결혼생활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이 경상도 영주 전형적인 양반 집안의 8남매 중 맏아들이었기에 시부모를 모시고 10년간 시집살이를 해야 했던 것.
“큰아들이 ‘딴따라’인 것도 모자라 며느리까지 딴따라이니 결혼 전에 얼마나 말이 많았겠어요.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산 10년 동안은 용광로에서 강한 쇠가 달궈진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인생 공부를 많이 해서 그 뒤로는 두려운 게 없어요(웃음).”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출연하는 마당놀이의 대모 김성녀

힘든 시집살이를 치르는 동안 그는 일에서 돌파구를 찾았다고 한다. 연극을 꾸준히 했을 뿐만 아니라 서른다섯에 학력고사를 치러 대학에 입학해 둘째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고. 그는 “결혼한 뒤 늘 새로운 일을 벌이다 보니 일을 수습하기 바빠 결혼생활에 위기가 닥칠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한다. 요즘에도 남편은 그가 집안일을 하려고 하면 “국가적 손실이다. 그럴 시간 있으면 배우로서 완성도를 높여라” 하며 집안일에는 일절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고. 지금껏 아침밥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남편과 아이들 모두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챙기는 셀프(self) 집안”이라며 웃었다.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는 그는 건강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함에도 도저히 운동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연극 연습을 운동으로 여긴다는 그는 “마당놀이 두 번 공연하면 마라톤 풀코스 뛴 것과 비슷한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들었다”며 웃었다.
“무대에 가만히 서 있는 배역이라도 좋으니 무대 위에서 죽음을 맞는 게 소원”이라는 열정적인 배우 김성녀. 마당놀이에서 보여주는 진솔한 모습, 30년 넘게 외길을 고집해온 그의 집념이야말로 그가 타고난 재능을 받쳐주는 든든한 대들보다.

여성동아 2005년 5월 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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