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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남다른 교육체험

7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 교수 사업가 의사로 키운 ‘정트리오’ 어머니 이원숙

“아이는 부모가 믿고 격려해주는 만큼 자랍니다. 기꺼이 극성 부모 소리를 들으세요”

■ 글·송화선 기자 ■ 자료&사진제공·‘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동아일보사)

입력 2005.05.02 15:56:00

세계에 한국 음악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정명화·경화·명훈 삼남매의 어머니 이원숙씨는 이들 외에도 네 명의 자녀를 각각 교수, 사업가, 의사로 키워냈다. ‘극성 엄마’ 소리를 들으며 끝없는 믿음과 격려로 자녀를 성공의 길로 이끈 이원숙씨의 남다른 자녀교육법.
7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 교수 사업가 의사로 키운 ‘정트리오’ 어머니 이원숙

“엄마, 나 이제 못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바이올린 그만두고 싶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1969년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1등을 한 뒤 세계 정상의 음악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던 무렵, 그는 영국 런던에서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다 말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화려해 보이지만 끝없는 노력이 필요한 정상의 자리가 힘겨웠던 것이다. 딸의 눈물을 본 어머니 이원숙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지금 당장 그만두자. 너를 위해 바이올린을 해야지, 바이올린을 위해 바이올린을 해서야 되겠니? 너는 정말 넘치도록 이룬 거야.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러니 이제 그만두자.”
정씨는 훗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자식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움직이는 남다른 재주를 가진 분이세요. 어머니가 ‘그만두자’고 하시는 순간, 오히려 ‘내가 왜 바이올린을 그만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 이후 다시는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실은 바이올린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기회를 열어주고 무한한 믿음 주는 게 부모의 할 일
첼리스트 정명화(62),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58), 지휘자 정명훈(53)의 어머니 이원숙씨(88). 이씨의 자녀는 정 트리오 외에도 미국에서 유명 플루트 교육자로 활동 중인 큰딸 명소씨, 종합예술 기획사업가로 활동 중인 맏아들 명근씨, 미국에서 ‘최고의 의사’로 꼽히는 막내아들 명규씨와 이미 세상을 떠난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 명철씨 등 모두 7명이다. 이씨는 이들 모두에게 적성을 찾아준 뒤, 더할 수 없는 믿음과 칭찬으로 자녀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7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 교수 사업가 의사로 키운 ‘정트리오’ 어머니 이원숙

이화여전 가사과를 수석 졸업하고 교사까지 지낸 엘리트 여성이던 이씨가 자녀교육에 열정을 다하게 된 것은 당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 이씨는 이왕 가정을 꾸린다면 현모양처가 되어 남편과 자식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남편의 봉급만으로 집안을 꾸리기 어려워지자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등 팔을 걷어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처음 아이들에게 음악 교육을 시킨 건 주변 환경 때문이었어요. 해방 직후 먹고살 길이 막막해 시장통에 천막을 치고 장국밥 장사를 시작했는데 시장 환경이 아이들을 거칠게 만들 것 같더라고요.”
이씨는 외상으로 피아노를 사 아이들에게 레슨을 시켰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레슨 시간만큼은 꼭 옆에 붙어 앉아 지켜볼 만큼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6·25 때 부산으로 피란을 가면서 피아노를 싣고 간 일화는 유명하다. 무작정 떠난 피란 길이라 피아노를 들여놓을 집 한 칸 구할 수 없어 남의 집 처마 밑에 놓아야 할 정도였지만, 그는 자녀들에게 계속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재능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명소는 하도 건반을 두드려 손가락이 다칠 때까지 피아노를 치고, 경화는 말을 떼기 전부터 노래를 들으면 정확히 따라 부르는 등 남다른 재능을 보였거든요. 엄마로서 그걸 최대한 키워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7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 교수 사업가 의사로 키운 ‘정트리오’ 어머니 이원숙

자녀들의 연주회 포스터로 가득한 이원숙씨 아파트.


7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 교수 사업가 의사로 키운 ‘정트리오’ 어머니 이원숙

정명훈씨 가족과 함께 한 이원숙씨.


서양 음악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본고장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1960년에는 당시 17세, 13세에 불과하던 명화, 경화씨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도 했다. 정작 이씨는 비행기 값이 없어 입양 고아를 양부모에게 인도해주는 일을 하면서 무료 항공권을 얻어 간신히 미국을 오갈 수 있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다. 그리고 1962년, 나머지 자녀들까지 모두 데리고 아예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그러나 이씨가 ‘극성스럽게’ 자녀들을 독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어떤 결정이든 최대한 자식의 뜻을 따르려 했다. 경화씨는 “어머니는 늘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셨다”고 회고했다.
한때 음악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명훈씨가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 또한 어머니 이씨 덕분이었다. 일곱 살 때 서울시향과 하이든 협주곡을 협연해 ‘피아노의 천재’로까지 불렸던 명훈씨는 청소년 시절 피아노를 등한시하고 운동에만 매달려 이씨의 속을 태웠다. 그때 이씨는 “왜 피아노를 치지 않느냐”며 다그치는 대신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1달러씩 받은 팁을 모아 할부로 그랜드 피아노를 구입해 선물했다고 한다.
명화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피아노, 바이올린에 영 취미를 붙이지 못하던 명화씨를 데리고 첼로 연주회에 갔고, 좋아하는 눈치를 보이자 집에 오는 길에 바로 첼로를 사주었다. 명화씨는 이후 “첼로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만큼 연습에 열중해 2년 3개월 만에 서울대 주최 음악 콩쿠르에서 전 부문 특상을 석권하는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7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 교수 사업가 의사로 키운 ‘정트리오’ 어머니 이원숙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한 정명훈씨가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


하지만 식당을 운영하며 7남매를 키운 이씨가 모든 자녀에게 늘 전폭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이씨는 ‘중점주의’를 선택했다. 그 시기에 가장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 것이다. 이씨의 이 교육법은 이후 7남매 모두가 “내가 꼭 필요할 때 어머니는 늘 내 곁에 계셨다”고 기억할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부모의 관심이 꼭 필요한 순간 함께 해주는 ‘중점주의’

이씨는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자신을 개발하는 데도 게으르지 않았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을 때 나이가 이미 44세였지만 “지금 영어를 배우면 40년은 더 쓸 수 있다”며 밤을 새워 영어 단어를 외웠다. 84년 넷째 딸 경화씨가 형제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결혼한 뒤에는 67세의 나이로 신학대학에 입학해 목사 안수를 받았고, 90년 음악장학재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음악계 후진 양성을 위해 일하고 있기도 하다. 끝없이 노력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가장 훌륭한 모범이 됐다. “자신은 TV를 보면서 자녀들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하는 부모에게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지난 3월 이러한 자신의 경험담과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묶어 자녀교육서 ‘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를 펴냈다. 그동안 끊임없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그렇게 잘 키울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아온 이씨가 숨은 교육 노하우를 집대성한 책이다.
“책을 쓰니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이 마치 어제 일인 듯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빛나던 눈망울, 세상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느라 울고 웃던 아이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수많은 난관을 헤쳐왔어요. 제 인생을 기쁨과 보람으로 가득 채워준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다른 어머니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동아 2005년 5월 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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