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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자매

드라마 콘서트 ‘언제나 봄날’ 여는 양희은·희경

“외도로 가족 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용서, 알려지지 않은 우리 자매의 결혼생활”

■ 글·김유림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5. 05. 02

가수와 연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자매 양희은·희경이 드라마 콘서트 ‘언제나 봄날’ 무대에 함께 오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공연되는 이번 콘서트에서 두 자매는 아버지를 주제로 한 노래와 내레이션을 선사한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양희은·희경의 가슴에 묻힌 지난 삶과 끈끈한 자매애에 대해 들어보았다.

드라마 콘서트 ‘언제나 봄날’ 여는 양희은·희경

드라마 콘서트 ‘언제나 봄날’ 여는 양희은·희경

양희은(53)·희경(51)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나란히 드라마 콘서트 무대에 선다. 5월8일부터 ‘언제나 봄날’ 공연을 갖는 것. 양희은의 노래와 양희경의 내레이션으로 구성되는 이번 공연은 ‘아버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포스터 사진을 고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매를 홍대 앞 카페에서 만났다.
“5월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먼저 떠올리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아버지를 이야기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어머니와 아버지 얘기를 묶을까 했지만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 아버지를 먼저 하기로 했죠. 요즘 우리 자매는 희경이가 낭독할 대본을 만드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마음속에 미움으로 자리 잡고 있던 아버지가 어느덧 그리움으로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이제 저희 둘 다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인지 그 분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어요.”(양희은)
62년 가족을 버리고 새 여자에게로 떠난 아버지는 자매가 열세 살, 열한 살이던 64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뒤로 자매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안고 살아왔고 돈을 벌기 위해 명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시작한 양희은은 어머니의 사업마저 실패하자 결국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이처럼 힘겹게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자매의 마음속에 원망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음속에 미움으로 자리하던 아버지를 이제는 용서할 수 있어요”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너무 짧아 기억을 끄집어내기 쉽지 않았다는 자매는 아버지를 “시대를 앞선 문화적 성향이 강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그들의 아버지는 일본과 미국을 둘러보고 온 지식인이었고 영화와 음악, 공연 등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어머니 역시 노래를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등 예술적 성향이 많았는데,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사적인 집안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한다는 게 쑥스럽기도해요. 저희 노래와 이야기를 듣고 많은 관객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추억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냈어요. 지난해 저희 공연을 본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형제·자매, 특히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애써 눈물샘을 자극하려고 한 적은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할 때 눈물은 저절로 흐르는 것 같아요.”(양희경)
한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이미 오래전부터 해온 두 사람은 지난해 공연 이후로 적어도 1년에 한번 자매가 함께 무대에 오르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양희경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언니와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내년 공연의 테마는 ‘어머니’로 이미 정해졌다고.
MBC 라디오 ‘여성시대’ 진행자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양희은은 가수로 34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TV 대신 라디오에 주로 출연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많은 청취자들을 생각하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고. 또한 그는 매사 조급해하지 않는 자신의 성격도 꾸준히 활동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노래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겨운 상황에서는 ‘가수는 본래 내 일이 아니다, 잠시 하는 일일뿐이다’라고 마음먹은 적도 적잖았다고.

드라마 콘서트 ‘언제나 봄날’ 여는 양희은·희경

50년 넘게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두 사람은 “부부였다면 잘 살았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찰떡궁합이다.


“언니가 노래 부르는 걸 싫어했던 적도 있어요.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노래를 불러야 했고, 노래로 인해 사회적 압박을 받은 적도 있으니까요. 숱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지금껏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언니의 무심한 성격 덕분이에요(웃음).”
요즘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와 ‘신입사원’에 출연 중인 양희경은 지난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넌센스 잼보리’ 등 5편의 연극·뮤지컬 무대에 오르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굳세어라 금순아’로 1년여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그는 극중 금순이 작은엄마로 출연하며 악역 아닌 악역을 맡고 있다.
“금순이한테 너무 한다고 눈을 흘기는 분들도 있지만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요즘 세상에 그렇게 참고 사는 며느리가 어디 있냐’면서요. ‘무능한 남편에 시어머니, 시조카, 시조카의 자식까지 봐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시어머니한테 세게 나가’ 하고 흥분하시기도 하죠. 드라마 작가의 친정 어머니도 시어머니 역을 맡은 윤여정씨와 제가 나오는 장면을 그렇게 좋아하신다고 하네요(웃음).”
올 한 해도 공연 일정이 빼곡히 잡혀 있다는 그는 5월에 ‘언제나 봄날’ 공연을 마친 뒤 11월,12월에는 윤석화, 박정자, 김성녀 등 6명의 여배우가 출연하는 모노연극 ‘여배우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작품인 ‘늙은 창녀의 노래’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남편 말 안 듣고 고집 센 건 언니나 저나 똑같아요”
올해로 결혼생활 18년째에 접어든 양희은은 87년 뉴욕의 한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다 만난 남편 조중문씨(55)와 여전히 허물없는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 그가 며칠 전 할인마트에서 만난 친구로부터 “네가 이혼 안 하고 잘 살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농담을 들었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양희경이 “형부가 다른 남자들과 달라서 언니를 많이 이해해주기 때문이야”라며 조씨의 편을 들었다.
“언니와 형부가 대화하는 걸 들으면 참 재미있어요. 언니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형부가 가차 없이 쓴소리를 하는데 언니는 절대로 순순히 형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고집을 부리던 언니도 결국 형부의 말을 따라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형부의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싶은 거죠. 남편 말 듣지 않고 쇠고집인 건 언니나 저나 똑같아요(웃음).”
오래전 자궁을 들어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양희은은 “예전에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상처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 97년엔 남편 조씨가 급성 다발성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리면서 또 한번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픈 사람을 옆에 두고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모를 거예요. 지옥 같이 긴 시간이었죠. 당시 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집을 나와 운전대를 잡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다행히 병세가 호전돼 남편은 지금 자신처럼 아픈 사람들을 상담해주고 위로해주면서 지내고 있어요.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죠.”
한달 전에는 17년 동안 자식처럼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 중 수컷 ‘보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미국에서 키우다 93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 비행기에 태워 함께 왔을 정도로 부부의 강아지 사랑은 대단했다고. 양희경은 “언니네가 한동안 초상집 분위기였다”며 “아이가 없다 보니 언니와 형부에게 강아지는 특별한 존재”라고 곁에서 그의 말을 거들었다.

드라마 콘서트 ‘언제나 봄날’ 여는 양희은·희경

“지금도 보보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아요. 평소 ‘굿독(good dog)’이란 말을 가장 좋아했는데 떠나려고 하는 순간에도 제가 ‘굿독’이라고 말하니까 힘겹게 몸을 추스르고 멋있는 척 포즈를 취하더라고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요. 저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하는 남편은 오죽했겠어요. 오랜 세월 함께 살면서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 아직까지 다른 강아지는 키울 엄두를 못내요.”
양희경은 언니 양희은의 소개로 2002년 현재의 남편 김광철씨와 재혼했다. 그 전까지 두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던 양희경은 재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양희은이 “옆에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사람을 만나라”며 그를 설득했다고. 2000년 봄, 양희은이 수입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를 양희경에게 소개시켜줬고 그는 못 이기는 척 친구들과 어울려 가구점에 구경하러 갔다고 한다. 그가 연예인인줄도 모르고 말을 걸어오는 김씨의 순박함에 매력을 느낀 양희경은 그 후 동갑인 김씨와 가끔 식사를 하면서 친구처럼 지냈다고. 김씨는 그에게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말썽 부리는 아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02년 1월 두 사람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소식을 접했다. 김씨의 딸아이가 골수암에 걸린 것. 양희경과 김씨의 관계를 알고 있던 딸은 양희경의 집에서 치료를 받기 원했고 결국 김씨의 가족들이 그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딸아이에게 잠시나마 엄마 노릇을 해주고 싶었던 그는 어느 날 딸아이로부터 “아빠와 결혼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결국 딸의 소원대로 같은해 8월 언니 양희은의 집에서 양가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 뒤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으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결국 딸은 그 해 10월 가을이 시작될 무렵 세상을 떠났다.
새로운 가정을 꾸린 것에 대해 말을 아낀 그는 “서로에게 위로와 말벗이 되어주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온 양희은·희경 자매는 어려서부터 징그럽게(?) 붙어다녔다고 한다. 양희은은 엄마가 “동생 손 꼭 붙잡고 놀라”고 하면 정말로 손을 놓지 않고 하루 종일 온 동네를 돌아다녔을 정도로 동생을 챙겼다고. 저녁 무렵에야 손을 펴보면 땀이 찬 손바닥에는 손금을 따라 새까만 흙먼지 줄이 그어져 있었다고 한다.
“언니가 결혼한 뒤 우리 자매는 서로에게서 한발짝씩 물러서는 법을 배웠어요”
“언니는 남자아이들과 총싸움을 하면서 놀았고 저는 소꿉장난, 인형놀이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늘 언니한테 제가 당했죠. 귀신 장난을 하거나, 잠자는 얼굴에 그림을 그려 놓는 등 언니 때문에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렇지만 동생들 챙기는 데도 유별났어요. 큰집에서 초콜릿을 하나 얻으면 저희들 주려고 꼭 집까지 손에 들고 왔는데, 막상 먹으려고 하면 손에 있던 초콜릿이 이미 다 녹아서 모두가 서운했던 기억이 나요.”
평소 고집이 세 의견이 충돌할 때도 많지만 남편보다도 궁합이 잘 맞는다는 두 사람은 “우리가 부부면 무지 잘 살 것 같지 않냐”며 농담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양희경이 처음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겨 두 아들을 데리고 양희은의 집에 들어와 산 적이 있는데, 그때도 양희은은 돈 벌어다주는 남편 역을, 양희경은 집에서 살림하는 아내 역을 하면서 잘 지냈다고. 또한 스스로 결정내리지 못하는 일도 상대에 대해서는 척척 결정을 내려준다고 한다. 양희은은 “보통 자매들이 가진 것을 우리가 갖지 못했듯 남들이 갖지 못한 걸 우리는 가지고 있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이처럼 한시도 떨어져 지내지 않던 두 사람은 양희은이 87년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났을 때 비로소 서로에게서 한발짝씩 물러서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양희은은 “희경이가 그때서야 내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가 떠나자 희경이가 탤런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자기 밥그릇을 찾아먹게 됐구나’ 싶었죠. 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희경이 덕을 많이 봤어요.”
언니에게 많이 의존하며 살아왔던 양희경은 언니가 떠난 후 엄청난 공허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들 챙기느라 결혼이 늦어진 언니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여겼다고.
“남편보다 언니에게 더 의존했던 게 사실이에요. 전 남편도 ‘당신 마음은 언니가 다 차지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니까요. 처음에는 아니라고 반박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늘 언니가 우선이었어요. 그런 언니가 떠났을 때 충격이 컸죠. 하지만 언니가 떠나고 비로소 가장의 입장에 서서야 그동안 살아온 언니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게 됐어요.”
홀로서기에 성공한 두 사람은 지금은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앞뒷집에 살고 있지만 서로의 집안 문제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참견하지 않는다고. 대신 양쪽 가족이 한집에 모여 식사를 하는 것으로 친목 도모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부엌일만큼은 빈틈없이 한다는 두 자매는 음식 솜씨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부엌에 불씨가 꺼지면 그건 집이라고 할 수 없어요. 요즘 툭하면 외식하는 주부들이 많은데 바쁜 건 이해하지만 적어도 주부라면 부엌만큼은 수호(?)해야 한다는 게 저희 생각이죠. 동생이나 저나 부엌일만큼은 남의 손에 안 맡겨요. 대신 집안 예쁘게 꾸미고 청소하는 건 잘 못하죠(웃음).”
지금껏 바쁘게 살아온 두 사람은 요즘 들어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한다. “아직까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양희은은 “여우같이 오랫동안 활동하려면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양희경 또한 “다 외웠다고 생각한 대본도 다시 보면 또 새롭다”며 “(윤)여정 언니와 대본 연습하다가 신세타령 하는 날이 많다”며 아이처럼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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