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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부부 사는 이야기

12년 별거 끝에 재결합해 ‘제 2의 인생’ 사는 부부 김희라·김은정

“오랫동안 상처주고 아팠던 만큼 더욱 아끼며 살아요”

■ 글·김지영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5. 05. 02

2001년 오랜 지병이 악화돼 연기생활을 그만둔 영화배우 김희라가 최근 대학 강단에 서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폐인이나 다름없이 살아오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은 3년 전 화해한 부인 김은정씨. 두 사람이 12년 별거생활을 청산하고 재결합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투병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사랑을 되찾은 요즘 심경을 털어놓았다.

12년 별거 끝에 재결합해 ‘제 2의 인생’ 사는 부부 김희라·김은정

지난 2001년 한 TV 프로에 병마와 싸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공개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영화배우 김희라(58)가 최근 대학 강단에 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전북과학대에서 ‘영화연기론’을 가르치고 있는 것.
지난 4월8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병색이 완연했지만 “학생들을 보면 기운이 난다”면서 의욕을 내보였다. 함께 자리한 부인 김은정씨(53)는 “남편은 당뇨 합병증과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말투도 어눌해졌는데 강의만 나가면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신기할 정도”라고 전했다.
“타고난 무대체질인 것 같아요. 한번 강의할 때마다 수십 권씩 책을 봐요. 큰 도움은 되지 않지만 남편이 신나서 강의 준비를 할 때 옆에서 공부할 내용을 함께 찾아주고 그래요.”
지난 2001년 당뇨, 고혈압 등 지병이 악화돼 재기가 불가능해 보이던 그를 다시 일으켜 강단에 세운 사람은 부인 김은정씨다. 오랜 별거 끝에 3년 전 그와 재결합한 김은정씨는 “지난해 처음 전북과학대에서 교수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거리가 멀어 힘들다고 거절했는데 고맙게도 1년간 더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며 “무엇보다 남편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이제는 후배 양성에 힘써야 할 시기도 된 것 같아 교수 제의를 수락했다”고 밝혔다.
친정 아버지의 유언으로 12년 만에 재결합
두 사람은 3년 전 재결합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별거생활을 했다. 김은정씨는 지난 89년 아들 기주씨와 딸 나리씨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이듬해 뒤따라갔는데 곧 미국으로 건너올 줄 알았던 남편은 계속 한국에서 지내기를 고집했다고 한다.
“별거가 그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별거하기로 하고 별거한 것도 아니었고요. 저는 미국에서도 남편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어요. 그래도 94년까지는 어쩌다 한번씩 미국을 다녀가더니 95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는 발길을 뚝 끊었어요.”
그렇게 남편과 생이별을 한 김은정씨가 12년간의 별거생활을 청산한 것은 지난 2002년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유언 때문.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미국에 있는 그에게 전화해 “김 서방을 용서해주고 받아주어라. 남자가 살다 보면 잘못할 수도 있는 거다. 부모도, 형제도 없이 혼자 지내는데 얼마나 불쌍하냐. 다 용서하고 사랑해주고 상처까지도 보듬어주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인천에 살던 남편에게 전화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서럽게 울더라고요. 아버지가 남편을 사위가 아니라 아들처럼 대해주셨거든요. 인천으로 달려가 남편과 함께 장례식에 갔는데 다른 때는 미워죽겠던 남편이 그 후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그런 감정이 생겼죠(웃음).”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처음에는 전과 다르게 초라해진 김희라의 모습이 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낯설고 서먹서먹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저리도 변할 수 있나 하는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몸도 좋고 유머감각도 풍부한 사람이었는데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 것을 보니 눈물이 쏟아지고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기가 막혔다”면서 “너무 안타까워 아버지를 여읜 슬픔조차 생각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12년 별거 끝에 재결합해 ‘제 2의 인생’ 사는 부부 김희라·김은정

열렬한 후원자인 부인 김은정씨는 남편의 강의 준비를 곁에서 돕는다고. 오른쪽은 아들 기주씨.


김희라는 장례식이 끝난 뒤 그를 붙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날 한번만 더 믿고 노력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이미 마음으로 남편을 받아들이고 용서한 그는 그 길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언니 집에서 남편과 함께 기거해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정기검진을 받게 하고 통원치료, 산책, 식이요법, 운동 등 온갖 정성을 쏟으면서 김희라의 건강도 차츰 호전됐다고.
“제 인생에 결혼은 한 번이면 족해요. 예전에는 저를 많이 힘들게 했지만 다른 데 눈 돌리던 남편이 이제는 저만 바라보니 용서가 되더군요. 저에 대한 사랑이 없었을 때도 미운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미국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이 사람이 과연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하면서 한시도 남편을 잊어본 적이 없었어요.”
김희라는 그런 아내가 사랑스러운 듯 옆에서 툭툭 치기도 하고, 얼굴을 살짝 꼬집기도 하면서 애정을 표현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부인 김씨에게 “김희라씨가 건강하셨을 때는 남자답고 유머도 많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고 말하자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몰랐다”며 남편의 외도 사실을 어렵사리 털어놓았다.
남편의 외도로 마음고생하면서도 두 아이 악착같이 키워
“남편에게 여자가 있었어요. 별거가 길어진 것도 그 때문이었죠.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모든 걸 용서했지만 남편의 건강을 망치고 재산을 탕진하게 만든 세 여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불끈불끈 화가 치밀어요. 마지막 여자는 심지어 두 달 전에도 전화를 걸어와 어이가 없었어요. 그래서 당신 주민등록번호며, 집 주소며 전화번호까지 다 알고 있으니 한번만 더 내 남편과 전화한 흔적이라도 보이면 바로 집으로 찾아가 당신 남편과 담판을 짓겠다, 당신도 결혼했으니 아이 낳고 살다 보면 내 심정이 어떨지 잘 알게 될 것이라고 했더니 더는 전화가 안 와요.”
남편의 여자문제로 인해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한 그는 김희라가 심지어 생활비조차 보내주지 않아 직접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지인이 운영하는 보석가게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노래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남편을 어떻게 전혀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외도를 하다 결국 집 네 채를 다 날리고, 무리해서 일하다가 당뇨와 혈압으로 쓰러져 이 지경이 됐는데요. 제 인생에서 40대는 지우고 싶은 기억뿐이에요.”
지난 76년 김희라와 결혼하기 전까지 그는 제법 잘 나가던 영화배우였다. 영화사가 공모한 배우 오디션에서 수백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영하, 고 임성민 등과 함께 합격한 것. 이후 그는 우연히 김희라와 한 영화에 부부로 출연하면서 가까워져 3년 열애 끝에 결혼했는데, 결혼 전 친정 아버지가 “헌 그릇과 새 그릇을 어떻게 맞출 수 있겠냐”며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한 번의 이혼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 때문에 저희 결혼을 강하게 반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제가 가진 재주가 많습니다. 영화배우가 싫다고 하시면 다른 길을 찾아보겠습니다’라고까지 말했었죠. 저 또한 남편을 사랑하기에 전처의 아이를 다섯 살 때부터 친자식처럼 키웠어요. 고2때 제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잖아요.”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을 우려해 그동안 남편의 외도와 큰아이가 이복형제라는 사실을 숨겨왔던 그는 1년 전 둘째 아들 기주씨에게 모든 얘기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제는 군복무까지 마친 의젓한 성인이 됐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은정씨는 “어차피 네 아버지이고, 지난일이니 모든 걸 용서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기주씨는 처음 얼마간 아버지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12년 별거 끝에 재결합해 ‘제 2의 인생’ 사는 부부 김희라·김은정

오랜 별거 생활과 남편의 외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모두 이해하며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겠다는 두 사람.


“이제는 많이 가까워져 둘도 없는 부자지간이 됐어요. 남편도 자신의 뒤를 이어 연기자로 나선 아들이 잘 되기를 고대하며 무술도 전수해주고 연기에 필요한 조언도 아끼지 않죠.”
미국에서 두 아이를 홀로 키운 그는 아이들이 편모슬하에서 자라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아이들 교육만큼은 굉장히 엄격하게 시켰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영화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한 할아버지(고 김승호)와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세뇌교육’을 시켰다고.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 기주씨는 요즘 영화배우 3세 겸 가수로서의 꿈을 키우며 연기와 춤 연습에 한창이라고 한다. 또 올해 미국 샌타모니카 칼리지 일본어과를 졸업한 딸 나리씨는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 새로이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이 다시 건강해지기를, 또 아들 기주가 할아버지와 아버지 못지않은 큰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는 김은정씨와 “아내에게 더없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김희라. 두 사람의 여생에 웃을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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