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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몸담은 KBS 떠나는 차태현 아버지 차재완

‘TV동화 행복한 세상 - 천사의 수건’ 주인공으로 밝혀져 화제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조득진‘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5.04.11 14:00:00

KBS에서 27년간 근무해온 탤런트 차태현의 아버지 차재완씨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화제를 모았다. 2000년부터 KBS 본관 남자 화장실에 매일같이 깨끗한 수건을 걸어놓은 주인공이 그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 2001년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 ‘천사의 수건’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선행의 주인공 차재완씨와 부인 최수민씨를 만나보았다.
27년간 몸담은 KBS 떠나는 차태현 아버지 차재완

언제부턴가 여의도 KBS 본관 3층 남자 화장실에는 작지만 기분 좋은 변화가 일어났다. 늘 축축하고 찝찝한 느낌의 수건이 걸려 있던 자리에 누군가 보송보송하고 향기까지 나는 깨끗한 수건을 걸어놓기 시작한 것. 직원들은 ‘누군지 모르지만 며칠 안 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요일별로 다른 색깔의 수건이 걸려 있었다. 비록 작은 변화였지만 손을 씻고 닦을 때마다 느껴지는 상쾌함은 스트레스에 찌든 이들을 위로해주는 큰 힘으로 작용했다.
이런 선행은 KBS 내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지난 2001년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천사의 수건’ 편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최근 이 선행의 주인공이 밝혀졌다. KBS 음향효과팀에 근무하던 차재완씨(61)가 KBS 사보에 ‘매일 세탁한 수건을 사용하며 기뻐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오히려 몇 배 더 큰 행복을 느꼈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 것. 차재완씨는 탤런트 차태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처음엔 그냥 수건이 너무 더러워서 빨았어요. 여러 직원들이 쓰는 건데 이왕이면 깨끗한 게 좋잖아요. 그러다 작은 수건 한 장으로 기뻐하는 동료와 선후배들의 모습을 보니까 이 일을 통해 오히려 기쁘고 행복한 건 저 자신이라는 걸 알았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게 부끄러워요. 사실 5년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내 덕분이죠.”
그러나 지난 2000년 여름부터 5년여 동안 계속해온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3월23일 정년퇴임한 것.
“전에 선배들이 정년퇴임하는 모습을 보며 참 명예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 직장에서 평생을 일한다는 게 요즘 같은 세상에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막상 나한테 닥치고 보니까 누군가 한쪽 가슴을 뚫어놓고 간 것처럼 말할 수 없이 허전해요.”
정든 집을 떠나야 하는 기분일까. 그의 눈빛엔 문득 쓸쓸함이 스쳐갔다.
아내와 KBS 성우실에서 만나 결혼, 아들 차태현도 KBS 통해 연예계 데뷔
27년간 몸담은 KBS 떠나는 차태현 아버지 차재완

그도 그럴 것이 그는 KBS와 보통 인연이 아니다. 1968년 KBS의 전신인 동양방송국에 성우로 입사해 당시 같은 성우실에 있던 최수민씨(61)를 만나 결혼했고, 아들 차태현도 95년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에 출전해 입상하면서 연예활동을 시작했기 때문. 그의 아내 최수민씨는 만화영화 ‘영심이’의 영심이, ‘달려라 하니’의 나애리 목소리 등을 맡았으며 현재까지도 KBS 성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KBS는 차씨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코미디언이 됐어야 했어요. 감춰진 끼가 말도 못해요. 보통 밖에서 활발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집에서는 과묵하고 근엄한 척한다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안팎으로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에요. 태현이가 그런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내 최수민씨가 말하는 남편 차씨는 늘 유쾌하고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다. 넘치는 엔도르핀 때문일까. 부부는 올 초 회갑연을 치른 60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젊고 생동감 넘쳤다.

27년간 몸담은 KBS 떠나는 차태현 아버지 차재완

아버지의 끼를 고스란히 물려 받은 차태현. 아버지 차재완씨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밝게 자라준 아들이 고맙다고 한다.


1969년 최씨가 성우로 입사했을 당시, 그보다 1년 선배였던 남편 차씨는 이미 성우실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심지어 점심시간이면 그의 유머를 듣기 위해 모인 여자 동료들 때문에 ‘차재완 아워(hour)’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였다고.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투와 타고난 입담으로 동료와 선후배들의 인기를 독차지해 별명도 ‘충청도 신성일’이었다고 한다. 원래 꿈이 배우였던데다 고향이 충남 당진이라 붙은 별명이라고.
“처음엔 솔직히 가벼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별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도 절 좋아한다면서 6개월 동안 쫓아다니는 거예요. 나중에 몇 번 만나 보니 사람들에게 진짜 웃음을 선사할 줄 아는 진솔한 사람이더라고요.”
1년여의 연애 끝에 1973년 결혼에 골인한 후 차씨는 성우에서 음향효과로 진로를 틀었다. 당시 음향효과 분야의 인력이 많지 않아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보면 유지태가 털이 북숭북숭한 마이크 들고 돌아다니면서 채음하는 장면 나오잖아요? 저도 초년에는 그런 일을 주로 했어요. 그게 어찌나 힘든 작업인지 소리 하나 녹음하려면 며칠씩 밤을 새워야 해요. 한번은 농가에 닭 울음소리를 채음하러 갔는데, 닭장 옆에 묶여 있던 개가 밤새 지치지도 않고 짖어서 결국 허탕친 적도 있어요(웃음).”
68년 방송국에 입사해 정년퇴임하기까지, “내가 참 똑똑해서 실수한 적이 없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80년대 잠깐의 외도로 가족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줬다고 고백한다.
“84년도인가? 앞으로 민영방송국이 많이 생길 거라는 생각에 케이블 TV 쪽에 투자를 했는데, 제가 너무 앞서갔었나 봐요. 15억원의 빚을 떠안고 살던 집에서 온 가족이 맨몸으로 쫓겨나야 했거든요.”
다행히 그의 형님이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어서 당장 길바닥에 나앉는 위기는 넘겼다고 한다. 차씨는 힘든 시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이 화합하고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산더미 같은 빚에 살 집 한 칸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부부는 “도리는 지키며 살자”며 다짐, 부모를 챙기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두 아들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도 밝게 자라줬다고 한다. 특히 95년 KBS 슈퍼탤런트 1기로 연예계에 데뷔한 차태현은 “묻지마, 다쳐”라는 유행어를 남긴 휴대전화 광고 등에 출연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부모의 남은 빚을 청산하는 효자 노릇을 했다고.
결혼할 당시 너무 가난해서 예물 대신 성경책을 주고받았다는 부부는 해마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이면 첫해에는 냉장고, 다음 해에는 텔레비전, 그 다음해에는 세탁기 하는 식으로 서로가 아닌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선물하면서 빈 공간을 채워갔다고 한다. 부부는 요즘도 특별한 날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카드나 편지를 쓰는 것,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모두 감동적인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부모가 본보기를 보여야 아이들도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큰아들 지현이와 둘째 태현이가 ‘아무리 찾아봐도 엄마 같은 여자가 없어’ ‘아버지 같은 남편이 되는 게 꿈이야’라고 말할 때면 가슴이 뿌듯해져요(웃음).”
어느새 30대가 되어버린 두 아들을 결혼시키고, ‘농어촌선교회’ 활동을 해야 하는 등 차씨는 정년퇴임 후에도 할 일이 많아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다고 한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15년째 교회 장로를 맡고 있는 그에게 농어촌선교 활동은 하나의 과업이라고. 그가 21년간 소속돼 활동해온 ‘농어촌선교회’는 낙후된 농어촌 교회에 각종 물품과 교육을 지원하는 단체로, 앞으로는 부부가 함께 세계 오지의 교회를 찾아다니는 등 해외 선교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여성동아 2005년 4월 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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