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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당당한 주장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펴낸 건축가 김진애의 30대 여성을 위한 제안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나 자신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에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 2005.04.11 11:24:00

거친 남성들의 세계로 불리는 건축계에서 독보적 존재로 인정받는 김진애씨.
두 딸을 둔 주부이기도 한 그가 30대 주부들을 위해 자신의 체험을 통해 깨달은 ‘유쾌한 인생 살기 위한 비결’을 솔직담백하게 들려주었다.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펴낸 건축가 김진애의 30대 여성을 위한 제안

최근 서울포럼 대표이자 건축가인 김진애씨(52)가 에세이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를 출간했다. 그가 들려주는 ‘인생을 유쾌하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듣기 위해 용산구 신창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그는 역시 건축가답게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는 자신의 집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 집은 지어진 지 78년 된 일본식 집인데 본채와 별채로 나뉘어져 있어요. 건축가들은 아주 오래되었거나 정반대로 최첨단의 물건을 좋아하는데 저는 아주 오래된 것들을 좋아해요. 원래 한옥에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이 집을 처음 본 순간 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살게 됐어요.”
본채는 그와 남편, 그리고 둘째딸이 함께 사는 살림집이고 별채는 주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작업실로 쓰는 공간이다. 별채 현관문에서 마당으로 이어진 통로에는 그가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텃밭도 있다. 그는 텃밭 가꾸는 일을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열매 맺는 생명 프로젝트’라 이름 짓기도 했다.
“여기에 상추, 호박, 방울토마토, 고추 등 온갖 것을 다 심어 먹어요. 저는 이 텃밭에 먹을 수 있는 것만 키우거든요(웃음). 제가 하는 일의 성격상 난 화분 받을 일이 많은데 잘 키우지도 못하고 다 죽여요.”
취재를 하느라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한두 시간 만에 그 사람의 전모가 웬만큼 파악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두고 봐도 잘 모를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김진애는 후자의 경우다. 목장갑을 끼고 시골 아낙네처럼 호미질을 하는가 하면,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다고 아이처럼 펑펑 울어댄다. 그리고 얼핏 보면 부엌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요리를 ‘불장난과 물장난이 어우러진 황홀한 사랑의 장난’이라 이름 짓고 부엌을 신나는 놀이터로 활용한다. 그야말로 그에게는 생활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미리 기획되고 실험대상으로 분석되어지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불가능한 건 없다. 돈도 별로 안 든다. 숨은 그림찾기를 잘 하는 감식안만 있으면 된다.
“지금 30대 여성들은 자아 분열 상황에 놓여 있어요”
“그렇게 기운 센 편은 아닌데 다들 ‘김진애너지’라고 표현해요. 사실 여자치고는 너무 무겁죠?”
그는 서울공대 재학시절 공대생 8백명 가운데 유일한 여학생이었고, 미국 MIT에서 건축 석사와 도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산본 신도시, 인사동길 설계 등 소위 ‘남자 분야’로 여겨지는 건축도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개척해왔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1세기 차세대 지도자 100인’ 중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그를 지목한 바 있다.
“무슨 정책이니 프로젝트니 하느라고 항상 힘들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도 뻣뻣하고 저도 몇년 전부터 ‘못 살겠다 꾀꼬리’라고 소리치고 싶더군요. 그래도 이왕이면 일 하는 사이사이 기분 좋게, 유쾌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에 실린 글들은 그가 ‘유쾌한 프로젝트’를 널리 유포하기 위해 몇년간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과 최근에 쓴 글들을 엮은 것이다. 책이 나오기 전 이미 유명세를 탄 글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칼럼이 ‘자아 분열적 30대 여자들의 건승을 위해서’였다.
“블로그를 통해 이 글이 인터넷상에 많이 퍼져 있더라고요. 어떤 독자는 ‘책 한 권의 내용이 이 글에 다 담겨있다’는 말로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고요.”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펴낸 건축가 김진애의 30대 여성을 위한 제안

타임지가 뽑은 21세기 차세대 지도자 중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던 김진애씨는 자신도 30대 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말한다.


반세기를 살아낸 그가 요즘 30대 여성들을 이해하는 코드는 ‘자아 분열’ 이다.
“30대 남자들은 ‘주어진 중심’이 있어서 흔들리는데 그치지만 30대 여자들은 아예 ‘자아 분열적 상황’에 놓여 있고, 자칫하면 진짜 분열할 지도 몰라요.”
이런 그의 주장은 30대 여자들이 처한 상황이 그만큼 ‘복합 상황’이라는 나름의 현실 진단에서 비롯됐다.
‘30대 여자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일하는 여자, 아이 기르는 여자, 출산 유보하는 여자, 아이 학수고대하는 여자, 결혼한 여자, 결혼 압력 받는 여자, 결혼 안 하겠다는 여자, 하루에도 몇번씩 이혼을 생각하는 여자…(중략)…피곤에 절어서 잠자리조차 싫은 여자, 쇼핑 중독증에 걸린 여자, 겉보기 여유와 달리 뒤처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여자, 24시간 내내 쫓겨서 사진에 대한 생각조차 못하는 여자 등등. 징그러운 것은, 이런 다양한 상황의 대다수가 어느 여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30대 여자의 복합 상황이다.’(‘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중에서)
30대 여자들이 푸근하기보다는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복합 상황에 놓인 그들에게 세상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세상이 얼마나 30대 여자들을 긁어대고 있어요. 20대 여자에게 해주는 축복의 말이나 격려의 말보다는 ‘결혼해야지’ ‘애 낳아야지’ ‘집 장만 해야지’ ‘더 잘해야 하잖아’ 하는 말들을 던지잖아요. 그래서 나타나는 30대 여자들의 공격성은 ‘30대 여자 증후군’일지도 몰라요.”
아주 쉽게 ‘히스테리’로 폄하되는 30대 여자들의 생존을 위한 안간힘, 혹은 공격성을 그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공격성을 이루는 질료는 바로 삶의 생기이기 때문이다.
“좌절을 안으로 누르고 실망을 내색하지 않고 안으로만 접어두는 것보다는 공격적인 것이 훨씬 건강하다고 봐요. ‘내향 내(內)’보다 ‘외향 외(外)’ 할수록 진짜 분열할 위험이 줄어들거든요.”
무엇이든 유쾌한 프로젝트 세우면 성공할 수 있어
그의 30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시 “나의 30대도 그렇게 공격적이었다”고 고백했다.
“스트레스가 상당했어요. 사방에서 내 뒷다리를 잡으려드는 것 같았고, 폐기물 처리하려는 듯싶기도 했고, 제가 조금만 움직임이 느려지면 금방 표가 나는 게 보여서 피곤했어요. 그리고 주위에서 외형만 조명하려 드는 게 못마땅했죠. 사회에서의 내 자리가 어디인가 고민했고, 몸과 정신과 마음이 다 팽팽한 긴장 상태였어요.”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송휴섭 부원장(53)이 그의 남편인데 이들은 서울대 재학 시절 만나 결혼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차츰 너무나도 극과 극인 상대방의 모습에 이끌려 사랑에 빠지게 됐다고. 김씨는 26살에 첫딸 해원(25)을 낳았고 20대 후반에 미국 유학을 떠나 30대 초반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둘째딸 지완(19)은 그가 학위를 받기 일 년 전 태어났다.
“유학을 마치고 서른넷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봤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어요. 그 당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최대 고민이었죠. 대한주택공사에 3년 있다가 독립해서 서울포럼을 차렸죠. 가고 싶은데도 없고 오라는데도 없어서 독립했는데 독립해서 한 3년 동안은 지금 생각해도 아주 징그러워요.”
미국에서는 공부하고 각종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첫 아이를 키울 때 그다지 문제 될 게 없었다. 육아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주부, 학생, 엄마 노릇을 하면서도 ‘자아 분열’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이유가 없었던 것. 그는 한국에 와서야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절감했다고 한다.
“오전에는 둘째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고 오후에는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일에 매달렸죠. ‘내가 왜 이 짓 하나?’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펴낸 건축가 김진애의 30대 여성을 위한 제안

틈나는 대로 텃밭에 상추, 호박 등을 심어 먹는 그는 이 일을 ‘생명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지나온 30대의 상황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30대를 팽팽한 긴장 속에서 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아주 괜찮은 마흔살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32세에서 34세까지 엄청난 고민을 이고 살아야 비로소 37세, 38세 무렵이 됐을 때 ‘뭔가 해볼 만하다’ 싶은 윤곽이 드러난다는 것. 그는 근사한 ‘마흔 살’을 원하는 30대 여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제안을 했다.
“우선 지금의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도 중요하지만 친구만 만나지 말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야 해요. 나보다 10년 위, 20년 위의 인생 선배들을 친구로 만들면 그들은 이미 30대를 거쳐온 사람들이니까 그들의 인생자원을 내 것으로 활용할 수 있게 돼요.”
이렇게 30대 여자들이 다양한 네트워킹을 통해 어느 정도 자아 분열 상태를 극복했다면 ‘끊임없는 구상하기’와 ‘해냄의 경력 쌓기’를 통해 자신 만의 세계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자기 자신한테는 ‘자기’가 가장 크잖아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인생 구상을 적극적으로 하다보면 3년 후 자신이 원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어요. ‘해냄’의 경력쌓기라는 것도 거창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축적해나가면 그게 곧 뭐든 할 수 있게 만드는 자신감이 돼요.”
그는 시부모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 등 모든 일상을 ‘프로젝트’화 하면 답이 보인다는 이색 제안도 빼놓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꼭 승부를 걸어야 하는 거잖아요. 성공을 하기 위해서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여러 가지 현상들을 실험, 분석하다 보면 대안도 나와요. 사랑, 출산, 양육 등 이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프로젝트를 대하는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요. 결국 세상을 보는 눈이 확 달라지고 노하우도 쌓이게 되죠.”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성의’
그를 아끼는 한 측근은 사석에서 주부 김진애를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김진애는 이혼도 안 해. 부부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걔는 아직도 자기 남편을 사랑한대. 한 번 여행을 같이 갔는데 밤새 남편 얘기만 하더라고.”
지인들로부터 아직도 닭살 커플 소리를 듣는 그만의 ‘부부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지금 당장 남편에 관한 108가지 험담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어요. 천적이 따로 없죠. 매일 적과의 동침이에요. 저도 추리소설을 하나 써볼까 구상 중이에요. 제목이 ‘어떻게 남편을 완벽하게 없앨 것인가’예요. 다양한 방법이 이미 제 머릿속에 들어 있다고요.”
과격한 애정표현 속에 담긴 남편에 대한 그의 믿음과 사랑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는 ‘부부 정상회담 프로젝트’를 지금까지 천적과 공존해온 해법으로 꼽았다.
“저도 바쁘고 남편도 바빠서 서로 얼굴 볼 시간이 없어요. 귀가하는 시간도 달라서 1주일에 한 번 같이 잠자리에 들기도 힘들었어요. 대신 매일 새벽에 같이 일어나 부부 정상회담을 가져요. 둘이 간단하게 차 마시는 시간이죠. 이때 뉴스를 보면서 누구누구를 같이 씹기도 하는데 ‘공동의 적’이 생길 때 부부는 확실히 친해져요.”
그는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성의’라고 했다.
“부부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는 동안에는 남녀가 서로 교감하는 시간을 같기 위해 최소한의 성의를 갖는 것이 필요해요. 그 속에서 공통의 원칙도 지켜지고 신뢰감도 생기니까요.”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펴낸 건축가 김진애의 30대 여성을 위한 제안

호화롭게 살지 않기, 각자 성실하게 살기, 서로 만든 원칙을 잘 지키고 최대한 약속을 잘 지키기가 한 집 살림을 시작하면서 이들이 정해놓은 삶의 기준선이다.
“저희 부부는 성격상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잘 맞는 유형인데, 공통의 취미는 많아요. 여행 좋아하고 흙 만지며 노는 것 좋아하죠. 둘 다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도 순전히 ‘맛집’ 찾아다니는 여행이에요. 평소에 뭘 시키면 귀찮아하고 잘 안 하는 남편인데 인터넷에서 맛집 찾는 일에는 웬 정열을 그렇게 보이는지(웃음).”
딸딸이 엄마인 그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로 ‘아이 키우기’를 꼽는다. 생명의 성장과 기쁨만큼 인생의 커다란 보상도 없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여자라고 해서 특별히 과보호해서 키우지 않았어요. 호의적인 차별이 되니까요. 태권도 등 호신술을 익혀서 자기 몸을 스스로 지키게 하는 것,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많이 강조하면서 키웠어요.”
지인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 가운데 하나가 ‘외과의사’다. 그만큼 한 번 토론이 시작되면 피도 눈물도 없이 논쟁의 핵심을 찌르고 평소 사업추진력과 결단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다. 미국에서 태어난 큰 딸이 초등학교 때부터 제법 영어를 잘 했고 ‘미국으로 유학 보내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유학을 말렸다.
“개인적으로 조기유학을 반대해요. 사람은 자기 나라에서 자라는 게 좋아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죠. 딸에게는 ‘난 경제적 여유가 안 되니까 꼭 필요하면 대학 졸업하고 네 돈으로 가라’고 말렸어요.”
그런데 속내를 알고 보면 ‘프로젝트 전도사’인 그가 아이들 키우기보다 훨씬 더 최우선에 두었던 영순위 프로젝트가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저에게 ‘엄마는 엄마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뭐에요?’하고 물어봤어요. 저는 ‘나야!’ 하고 말해줬죠. 나 자신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에요.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떳떳하게 생각해야 30대는 물론이고 40대, 50대에도 여전히 건승할 수 있어요.”

여성동아 2005년 4월 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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