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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아동 전문 이명숙 변호사가 들려주는 ‘호주제 폐지로 달라지는 법률상식’

“새 신분등록제도 시행되면 아들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할까 걱정하는 일은 사라질 거예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5.04.11 11:11:00

지난 3월2일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새로운 민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2008년 1월1일부터는 호주제가 완전히 사라진다. 지난해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호주제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큰 호응을 얻었던 이명숙 변호사가 호주제 폐지로 인해 달라지는 것들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여성·아동 전문 이명숙 변호사가 들려주는 ‘호주제 폐지로 달라지는 법률상식’

“호주제는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해 호주승계 우선순위, 혼인·자녀 등의 신분관계 형성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함으로써 많은 가족들의 불편과 고통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2월3일 헌법재판소는 이같이 밝히며 호주제의 위헌성을 인정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에 이어 지난 3월2일 국회가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개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2008년 1월1일부터는 호주제가 사라지고 새 신분등록제가 시행된다.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여성계에선 오랜 숙원이 이뤄졌다며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반인 입장에선 호주제를 폐지하면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지는지 알기 쉽지 않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호적등본을 떼어볼 일이 몇 번이나 있겠어요? 대출 받을 때, 보험 들 때, 여권이나 비자 만들 때, 그리고 이혼소송할 때 정도죠. 이혼소송하려는 분들한테 ‘호적등본 떼어오세요’ 하면 세 명 중 한 명은 ‘남편 거요? 아니면 제 거요?’ 하고 물어요. 자신의 호주가 친정아버지인지 남편인지도 모르는 거죠.”
업무상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호적등본을 열람해본 이명숙 변호사(41)는 “호주제가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감조차 느껴지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줬다”고 말한다.
“어떤 여자 분은 친정의 호적등본을 떼어보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돌이 채 안된 남자아이가 떡 하니 올라 있더래요. 딸만 둘인 집안이라 아버지 평생소원이 대 이을 아들을 얻는 거였는데, 딸들이 다 결혼을 하고 나니까 아버지가 30대 후반의 여자를 만나 아들을 낳은 거예요. 그 아버지의 나이가 74세, 어머니도 칠순을 넘긴 나이였어요. 사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나이인데, 이 경우 아버지가 사망하면 혼외 자식이자 제 앞가림도 못하는 남자아기가 이 집안의 호주가 되는 거예요.”
혼인신고 때 부부가 합의하면 자식이 어머니의 성 따를 수 있어
호주제는 민법상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이고, 이에 근거해 국민 개개인의 신분을 호주와의 상호 관계로 표시한 일종의 신분증명제도가 호적이다. 호적엔 가족 구성원의 출생·혼인·사망·입양 등 신분 변동사항이 시간별로 기록되는데 자녀는 아버지의 호적을 따라야 하고, 여성의 경우 결혼하면 남편이 호주가 된다. 여성이 결혼을 할 경우 ‘호적을 파간다’는 말을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호주가 사망할 경우엔 아들-미혼인 딸-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호주를 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70대 노인이 혼외 아들을 얻은 것은 두 딸이 모두 결혼으로 ‘호적을 파갔으니’ 자신과 아내가 사망할 경우 집안의 대가 끊어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아버지 사후 딸이 이혼을 하게 되면 배다른 남동생이 호주가 된다.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온 호주제가 폐지되고, 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우선 아들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할까 걱정하는 일은 없어진다. 법무부가 준비 중인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는 오는 6월에야 윤곽이 잡힐 듯하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호주’를 기록하는 난은 없어진다.

여성·아동 전문 이명숙 변호사가 들려주는 ‘호주제 폐지로 달라지는 법률상식’

이명숙 변호사에 따르면 법무부는 현재 ‘1인1적 편제방식’과 ‘가족별 편제방식’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1인1적 편제방식은 개인마다 각기 자신을 기준으로 한 신분등록표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당사자의 출생·혼인·사망 등 신분변동 사항이 기재되고, 부모·배우자·자녀의 신원이 간단히 표시돼 친족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가족별 편제방식은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2대의 가족관계를 기록하는 것으로 자녀가 혼인하면 배우자와 함께 새로운 가족부를 만들고, 부부가 이혼하면 각각 새로운 가족부를 만들게 된다. 이혼할 경우 자녀는 무조건 아버지의 호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친권자가 속한 가족부에 기록된다.
가족별 편제방식이나 1인1적 편제방식 모두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동등하게 본다는 점이 기존 호주제와 다르다. 여성이 결혼하더라도 ‘호적을 파는’ 일은 없어지고, 남편과 동등하게 배우자 관계로 표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별 편제방식의 경우 가족부 검색을 위해 가족 중 한 사람을 대표로 정해야 한다.
15세 미만인 경우 법원의 허가 받아 새 아버지의 성 따를 수 있어
이명숙 변호사는 새 신분등록제도가 시행되면 사생활 침해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로선 호적등본을 떼어보면 호주가 할아버지일 경우 할머니와 미혼인 삼촌, 이혼한 고모까지 전부 기록되어 있다. 한 집안에 누가, 몇 번이나 이혼을 했는지 다 드러나는 상황. 하지만 새 신분등록제도는 자신 외에 가족의 신분변동사항이 기재되지 않는다.
또한 현행 민법은 ‘부계 혈통’을 우선시해 자녀의 성과 본은 반드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강제하고 있으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어머니의 성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혼인신고 때 부부가 합의하면 자식이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한 것. 혼인신고 이후에는 자녀의 성을 바꾸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나 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친아버지에게 세 딸이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딸들이 낙태도 여러 번 했고, 중학생인 막내는 임신한 상태로 어머니와 집에서 도망쳐 나왔어요. 이런 경우 딸들이 어머니 성을 따르게 해달라고 법원에 청구할 수 있어요.”
또한 지금까지는 미혼모의 경우 자식을 자신의 호적에 올렸더라도 생부가 나타나 인지신고를 하면 자식의 호적이 아버지에게로 옮겨지고 성도 바뀌었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부모 협의에 의해 자녀가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된다.
자녀의 성과 관련해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재혼가정의 자녀가 새 아버지와 같은 성을 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여성의 경우 아이가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혼란을 겪거나 학교생활 등에서 불편을 겪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지금까지는 친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아이를 새 아버지의 양자로 호적에 올릴 수는 있었지만 성과 본은 친아버지를 따라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새 아버지의 성으로 바꿀 수 있다. 일부 호주제 폐지 반대론자들은 “그럼 재혼을 할 때마다 아이의 성이 바뀌는 것이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명숙 변호사는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길을 열어뒀을 뿐 실제 성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에서 호주제 폐지는 이혼녀들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를 해요. 호주제가 폐지되면 재혼가정의 아이는 모두 새 아버지와 성이 같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재판부가 새 아버지와 아이의 친밀감 정도, 경제적 능력, 친아버지의 의견 등을 다 고려해 허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혼할 경우 아이의 친권을 엄마에게 주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재판부가 과연 성과 본을 바꾸는 데 얼마나 유연할지 의문이에요.”

여성·아동 전문 이명숙 변호사가 들려주는 ‘호주제 폐지로 달라지는 법률상식’

후배 변호사들과 민법개정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명숙 변호사. 이명숙 변호사는 호주제 폐지가 남녀를 차별하는 인식을 개선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연령 제한을 두고 있는 것도 성을 바꾸는 걸림돌이다. 민법개정안은 이혼한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재혼했을 경우 아이의 성을 새 아버지와 같게 바꿀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었는데, 혼인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하고, 자녀의 나이가 15세 미만이어야 한다. 결국 아이가 14세 미만일 때 재혼한 경우에만 아이의 성을 새 아버지의 성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명숙 변호사는 “아이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이면 어릴 때 성을 바꾸라는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연령을 15세 미만으로 못 박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창 사춘기를 겪을 중·고등학생 때 부모가 재혼한 청소년의 경우엔 새 아버지와 성이 다른 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나마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주제로 인한 악습이 뿌리뽑히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예요. 호주제를 대신할 새 신분등록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테니까요.”
이명숙 변호사는 “그동안 호주제로 인해 한부모 가정, 재혼가정 등에서 자란 아이들이 받았던 상처가 큰 만큼 이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면 합리적인 신분등록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5년 4월 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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