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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 세계 최고 수준인 핀란드 방문하고 돌아온 전 여성특위 위원장 강기원 변호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일할 권리를 준 것이 국가경쟁력 세계 1위의 원동력이었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5.04.11 11:00:00

호수와 숲이 아름다운 나라 핀란드. 깨끗하게 보존된 자연환경만큼이나 사회 투명성이 높은 핀란드는 남녀평등과 여성의 사회 진출 보장을 위한 정책도 세계 으뜸이다. 최근 일주일간 핀란드를 방문하고 돌아온 전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강기원 변호사를 만나 생생한 핀란드 체험기를 들어봤다.
‘남녀평등’ 세계 최고 수준인 핀란드 방문하고 돌아온 전 여성특위 위원장 강기원 변호사

99년 여성부 출범의 토대가 된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강기원 변호사(63)가 지난 2월 초 남편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62)과 함께 핀란드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1970년 주부로서, 대학 졸업 6년 만에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한 강기원 변호사는 1954년 첫 여성 판사를 배출한 이래 20여 년 만인 1973년 황산성 변호사와 함께 두 번째 여성 판사가 됐다. 그 후 한 번도 일을 놓지 않으며 여성 차별 문제, 어린이와 노인 복지 정책, 인구 문제 등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지난 설 연휴 핀란드 정부의 초청으로 핀란드를 방문,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학계와 언론계 및 재계의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고 돌아와 ‘친(親)핀란드인’을 자처할 정도로 핀란드에 매료됐다고 한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있는 국가 중 한 나라라는 것, 그리고 여성의 정치 참여율이 높고, 양성평등 정책이 발달했다는 정도만 막연히 알고 있다가 이번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핀란드라는 나라가 정말 연구해볼 만한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출산 및 양육비 지원, 남자도 육아 휴직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핀란드를 방문한 강 변호사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여성의 활발한 정치 참여다. 1906년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시작한 핀란드는 현재 여성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이 이끌고 있고,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이 30%를 넘는다. 여성의 높은 정치 참여 비율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을 반영하는 것. 강 변호사는 이번 여행 중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와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업 노키아 본사가 있는 에스포시를 방문했는데 두 도시의 시장도 모두 여성이라고 한다. 강 변호사는 20세기 초 핀란드가 겪은 두 차례의 전쟁이 핀란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은 것 같다고 말했다.
“1917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핀란드는 그 후 두 차례나 전쟁을 치렀어요. 전쟁으로 수만 명의 남성들이 죽자 여성이 사회를 이끌어야 했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죠.”
전쟁을 통해 남녀의 역할 구분이 흐려지고, 기존에 남성들이 하던 일을 여성들이 해내자 ‘남녀의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한 결과로 핀란드에는 의회나 공직의 일정한 비율을 여성에게 보장하는 할당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남녀가 대등한 조건에서 실력을 겨룰 수 있도록 출산 및 육아 관련 복지 제도가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 여성이 임신하면 월 10만원 상당의 태아 건강비가 국고에서 지급되고, 출산 후 6개월 동안 필요한 양육비용을 물품과 현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 또한 3세까지는 양육비로 월 50만원 정도가 지원되고, 만 3세 이하 아동의 부모는 재고용이 보장된 무급 휴직을 할 수 있다.
“출산 후 유급 휴직 외에 무급으로 1년까지 쉬고, 다시 복직할 수 있는 제도는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에서 가장 먼저 시행한 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출산 및 육아 휴직제도도 모두 이런 나라를 모델로 삼은 거죠.”
육아 휴직을 부모가 나눠 쓸 수 있도록 한 것도 북유럽 국가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그런데 제도가 있어도 대개 여성들만 육아 휴직을 내자 핀란드에서는 아예 육아 휴직 기간 중 몇 개월은 남자가 쓰도록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아를 여성이 전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 활동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데 정책 입안자들이 그것은 결국 국가의 손실로 이어진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 강 변호사가 만난 핀란드의 마티 반하넨 총리도 얼마 전 육아 휴직을 끝내고 돌아왔다고 한다. 정부 관료들은 강 변호사에게 한결같이 “육아를 아버지가 반드시 분담해야 하고, 어린 아이뿐 아니라 어느 정도 자란 아이의 자녀교육에도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아버지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고.

‘남녀평등’ 세계 최고 수준인 핀란드 방문하고 돌아온 전 여성특위 위원장 강기원 변호사

핀란드 방문 당시 모습. 핀란드 외무부 공보관과의 만찬(왼쪽), 핀란드 외무부 차관·동아시아 담당 국장과 포즈를 취한 강기원 변호사와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오른쪽 사진 맨 오른쪽부터)


“제가 그들에게 ‘우리는 복지 정책을 세울 때 늘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을 참고하는데 핀란드 정부는 대체 어느 나라를 참고로 한 것이냐’고 물었어요. 그에 대한 답변은 ‘우리 형편이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도록 했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런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제도로 만들게 됐다’는 거였어요. 그들이 굉장히 민주적이고, 정치와 생활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출산 및 보육 정책과 관련해 강 변호사가 인상적으로 여긴 또 한 가지는 출산 지원금과 양육비 등의 혜택이 신분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직접 탁아시설을 운영해 육아 부담을 덜어주고, 국영 탁아시설로 충족되지 않는 부분은 사립 기관에서 맡는데 그 비용을 정부에서 지불해요. 가난한 사람이나 재벌, 대통령의 아이까지도 모두 똑같이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세금에서 차이가 나는데, 누구나 혜택을 받기 때문에 세금을 많이 내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다고 해요. 우리도 이런 제도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됐어요.”
강 변호사는 에스포시의 영빈관이나 총리실, 국회 사무총장실 등을 방문했을 때 60세 이상 되어 보이는 남자 노인들이 손님 접대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20대 초반의 젊은 인력이 할 법한 일들을 노년층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이 사회가 인구 전체를 동원해 사회를 유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얼마 전 보건복지부 용역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적정인구가 4천9백만 명이라고 해요. 지금의 인구수보다 더 늘어난 숫자죠. 정부에서는 고령자가 많아져서 그들을 부양하려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며 출산을 장려하고, 신세대 부부들이 그래도 아이를 안 낳으니까 각종 보육 정책을 마련하고 있어요. 사회 복지가 좋아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핀란드를 보면 인구를 늘려서 고령화 사회에 대처하겠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가 의문이 들어요.”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출산율이 저하되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출산을 장려하면 그들이 고령이 됐을 때는 그들을 부양할 더 많은 젊은 인구가 필요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며 적정 인구수에 대한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른 핀란드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핀란드는 전체 면적이 한반도의 1.5배예요. 그런데 인구는 5백20만 명에 불과하죠. 그래서 제가 핀란드 사람들에게 ‘인구 밀도가 낮은 편인데 나이 많은 사람들을 부양하려면 인구를 더 늘려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우리는 젊은 인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일하는 인구가 필요하다’면서 ‘노인들을 일하게 하면 되지 왜 인구를 늘려야 하냐’고 되묻더라고요. 나이에 상관없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자신을 책임지면 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인 거죠.”
핀란드는 13세기부터 6백 년 가까이 스웨덴 왕조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그 후 1백 년 넘게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17년에 제정러시아가 붕괴되자 독립했지만 다시 소련과 전쟁을 치르고, 제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독일과 연합한 대가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정해진 기간 안에 전쟁배상금을 다 지불했고, 현재 1인당 국민소득 3만5천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자연환경조차 북극에 인접해 호수와 삼림 외에 농토가 희박한 핀란드가 여러 시련을 이겨내고 국가경쟁력 세계 1위 국가로 거듭난 것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국민 개개인을 ‘일당백’의 수준으로 훈련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남녀평등’ 세계 최고 수준인 핀란드 방문하고 돌아온 전 여성특위 위원장 강기원 변호사

핀란드는 ‘부패가 없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핀란드는 국정 운영의 모든 부문에서 부패를 엄격히 다스릴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국민이 재산내역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직자 재산신고’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핀란드는 국민 전체가 재산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어요. 온 국민이 국민 개개인의 재산이 어떤 상태인지 서로 다 알아볼 수 있어요. 누가 작년에 얼마의 수입을 올렸고, 세금은 얼마를 냈는지 다 볼 수 있는 거죠. 정말 놀랍더라고요. 투명해도 그 이상 투명할 수 없죠.”
일제 시대에 태어나 유년기에 전쟁을 겪고, 50~60년대 전후 복구 사업이 한창일 때 학창시절을 보낸 뒤 경제 성장에 전력투구하던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회 활동을 한 강 변호사로서는 우리의 역사와 닮은 점이 많은 핀란드를 보며 아쉬움이 많은 듯했다. 핀란드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을 동원해 나라를 일으키는 동안 우리는 전 인구 중 젊은 세대, 그중에서도 남자에게만 집중적으로 사회 활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
그 시대를 산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강 변호사 역시 어머니 세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라면서 우리 어머니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참 많이 했어요. 어머니의 삶을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거였죠.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나도 남들만큼은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는 아이가 둘 이상 되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남들 사는 대로 끌려갈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도 딸 하나만 낳았다. 그리고 가사는 온 가족이 분담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지만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빼어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야망 같은 것은 없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더라고요. 그래서 의식주는 되도록 간단하게 하고, 집이 아무리 허름해도 부엌은 이용이 편리하도록 만들어 가족 구성원 누구나 각자 음식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옷도 빠는 것은 세탁기가 하지만 세탁물을 내놓고 개는 것은 식구들 각자가 분담하게 한다 등 이런저런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 결과를 놓고 보면 실천한 건 하나도 없어요. 어쩌다 보니 아이는 커버리고, 남편은 자기 앞길 가느라 정신없고, 얼렁뚱땅 저도 나이가 들어버렸고요(웃음).”
애초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강 변호사는 꾸준히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70년대 후반 그는 미국에서 유학하며 ‘공부하는 아이 따로 있고, 살림하는 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 부모의 배려 아닌 배려로 결혼 전까지 부엌에 들어가본 적이 없었던 자신의 성장 과정이 결코 옳은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딸은 다르게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미국에 가보니 어떤 일은 나를 대신해서 해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공동생활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네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라’ 하고 말했죠. 제가 식탁을 차리면 수저라도 놓게끔 가르쳤어요. 그래서 그런지 열 살쯤 됐을 때부터 살림을 참 잘했어요.”
그는 일찍부터 아이가 집안일을 돕도록 한 것은 결코 딸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들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가사는 어느 한 사람이 도맡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남편에게도 수차례 강조했던 바라고.

‘남녀평등’ 세계 최고 수준인 핀란드 방문하고 돌아온 전 여성특위 위원장 강기원 변호사

“남편에게 제가 하는 만큼은 요리도 하고 집안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부모가 둘인 것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죽거나 아프거나 제 역할을 못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하도록 한 거죠. 그런데 우리는 흔히 엄마가 일찍 죽고, 아빠만 남으면 ‘이거 큰일이다’ 하는 반응을 보이고, 엄마가 남으면 ‘그나마 다행이다’고 말하는데 잘못된 거죠. 저는 남편에게 아빠가 남으나 엄마가 남으나 똑같이 아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소양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어요. 남편은 제가 없으면 자기도 혼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는데 실력은 전혀 알 수 없죠(웃음).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가사를 분담하지는 않지만 제가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편이에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도와준 건 없어도 어딜 가나 협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죠(웃음).”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은 2002년 방한했을 당시 “모든 혁명은 바로 집에서,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며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딸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주고 아들과 똑같이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할로넨 대통령은 부모가 동등한 역할 분담을 통해 자녀들이 남녀평등을 자연스레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가족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가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걸림돌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할로넨 대통령이 이끄는 핀란드의 역사와 국민성에 관심이 높아져 돌아오는 길에 핀란드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와 사전을 구입했다는 강기원 변호사는 “가정에서는 물론 학교나 사회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큰 손해를 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5년 4월 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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