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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미실’로 1억원 상금 세계문학상 첫 수상자 된 김별아

“왕을 비롯해 수많은 남자 거느린 신라 여인 미실 통해 원초적인 여성성과 모성애 그리고 싶었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5.03.10 15:43:00

색(色)으로 신라의 왕들과 권력을 주무른 여인, 소년을 남성으로 만드는 스승의 역할까지 자청했던 신라 여인 미실이 소설가 김별아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장편소설 ‘미실’로 1억원 상금이 걸린 세계문학상 제 1회 수상자로 선정된 그를 만났다.
역사소설 ‘미실’로 1억원 상금 세계문학상 첫 수상자 된 김별아

국내 최고 고료인 1억원의 상금이 걸린 제 1회 세계문학상(세계일보사 주관) 수상자로 소설가 김별아씨(36)가 당선되었다. 수상작은 신라시대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미실’.
“몇년 전부터 한국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고대사에서 현대에 이르는 연작소설을 쓸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세계문학상 공모전 소식이 들리는 거예요. 고려시대를 공부하던 참이었는데 먼저 신라시대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미실을 쓰게 됐어요.”
‘미실’은 신라 화랑들의 전기인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로 책 제목은 신라 여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김대문이 쓴 ‘화랑세 기’에는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 32명의 전기가 실려 있는데 흥미롭게도 성문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한다. 여기에 자주 등장하는 미모의 요희(妖姬)가 있었으니 ‘미실’이다.
신라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아내를 높은 권력자에게 성 상납하는 색공(色供)이 보편화된 문화였다고 한다. 미실은 남편이 있으면서도 진흥왕, 진지왕(진흥왕의 아들), 진평왕(진흥왕의 손자) 등 역대 신라 왕들을 성으로 받들어 모시며 30년 동안 권세를 휘둘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 어우동도 아니고 황진이도 아닌 미실을 작품 속에 불러들였을까.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적욕망을 ‘암흑의 대륙 같다’고 했잖아요. 여성 자신도 그 시작과 끝을 모른다고 하니까 지구가 망하기 전까지는 여성의 성적욕망에 대한 탐구가 계속 이슈가 되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역사는 여성의 성적욕망을 막아온 역사였다고 할 만큼 도덕적 잣대를 앞세운 여성 억압과 통제가 극심했다. 그는 이념에 의해 인간의 욕망을 규제하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원초적인 여성성과 모성성에 접근해 보고 싶어 미실을 소설 속에서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89년과 95년에 발견된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위작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은 ‘도덕’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문란성으로 우리 민족을 음해하는 어떤 세력에 의해 가공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은 “한국사학이 쳐놓은 담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미실의 존재를 은폐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저는 거의 사실일 거라고 생각해요. ‘토우’만 봐도 신라시대의 성문화가 설명 되잖아요. 미실은 첫사랑이었던 사다함을 권력에 의해 빼앗기면서 ‘차라리 내가 권력자가 되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겠다’고 다짐해요. 권력에 눈뜬 미실이 거느린 남편만 해도 대여섯 명이었고 애인으로 둔 남자도 아주 많았죠. 미실은 창녀도 성녀도 아니면서 소년을 남성으로 만드는 스승의 역할을 했어요. 엄청난 욕망을 가진 모신(母神)이었죠.”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김씨는 지난해 여름에서 겨울에 이르는 6개월 동안 필사적으로 1천5백 장 남짓한 원고를 썼다. 한 달에 보통 3백 장 가량의 원고를 노동하듯이 써낸 것이다.
“화랑세기를 공부하는 데 반 년, 소설로 쓰는 데도 반 년이 걸렸는데 글을 쓰는 동안 어찌나 힘든지 욕지기가 막 나오더라고요.”

역사소설 ‘미실’로 1억원 상금 세계문학상 첫 수상자 된 김별아

김별아씨와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아들 혜준.


그렇다고 그에게 글쓰기에 몰두할 수 있는 근사한 작업실이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집에서 아이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글을 썼고 밤샘 작업도 하지 않았다.
“살림하고 글 쓰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예요. 남들은 역마살 있게 생겼다고 하는데 여행도 안 다녀요. 친구들과의 어울림도 거의 없고요. 최대한 삶을 단순화시켜야 그나마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확보되거든요. 살림요? 집안은 늘 폭탄 맞은 분위기죠(웃음). 허겁지겁 아이를 학교 보내 놓고 글에만 매달렸어요.”
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그는 소설집 ‘꿈의 부족’,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축구전쟁’을 비롯해 산문집 ‘식구’ 등을 펴냈다. 이 밖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창작동화도 여러 권 썼다. 이젠 어엿한 중견 작가에 접어든 그이지만 집에서는 막노동 일꾼이다.
“집안일과 글쓰기에 막 쫓길 때는 ‘내가 참 인생을 불쌍하게 산다’는 생각도 들어요. 늘 허덕거리죠. 동네 아줌마들하고 편안하게 티타임 갖는 게 소원이에요.”
가족을 소재로 한 그의 산문집 ‘식구’만 봐도 그가 가정과 아들 혜준(10)에게 갖는 각별한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부모님이 초등학교 교사로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아기 때부터 할머니와 친척들 손에서 키워졌다. 일찌감치 엄마 품에서 벗어난 유년시절 때문에 여전히 ‘애정결핍증’이 있다고 고백했던 그였기에 아이만큼은 직접 기르겠다는 오기 아닌 오기가 오래 전부터 싹 텄다고 한다.
버스안내양, 구로공단 노동자로 일하기도 이젠 ‘인생방랑’대신 ‘역사방랑’ 시작
“밤을 새워 작업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러고 나면 다음날 아이한테 엄청 신경질을 부려요. 그래서 밤샘작업을 자제하는 편이고, 아이나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아요.”
인터뷰 장소에 그는 아들 혜준을 데리고 나왔다. 혜준은 주변 사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장난꾸러기. 눈빛에는 아이들 특유의 에너지가 가득했는데 요즘은 특히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때라고 한다.
“엄마, 이 동네는 청소년 유해지역이야. 길바닥에 여자들 사진이 막 깔려 있어. 아까 미술관에서는 어떤 조각을 봤는데 여자 찌찌가 있더라.”
눈에 띄는 것마다 엄마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혜준이를 보고 있자니 그의 수고로운 일상이 한눈에 잡히는 듯했다.
“다섯 살이 되던 해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어요. 영어학원이나 속셈학원 대신 특별한 어린이집에 보내긴 했는데 사람의 욕심이 한정이 없는지 남보다 뒤처질까 봐 걱정이 되더라고요. 자식을 키우는 일이 무서울 만큼 어렵게 느껴져요. 그 이유는 제가 아직도 아이에게 자유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 보여줄 만큼 무엇이 행복인지 잘 모르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는 ‘엄마 되기 어려움’뿐만 아니라 ‘아내되기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는 스물여섯에 남편이 ‘얼짱’이라는 데 반해 결혼했다고 한다. 착한 남편이지만 “집에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아침밥도 안 해준다”는 말에 엄청 화가 나 부부싸움을 크게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고.

역사소설 ‘미실’로 1억원 상금 세계문학상 첫 수상자 된 김별아

김별아씨는 최근 가족의 의미를 다룬 산문집 ‘식구’를 펴내기도 했다.


“5년 전부터 제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 요가를 하고 있어요. 한때는 쌈닭이었어요. 여러 가지 욕구와 자의식은 강한데 현실은 안 따라주니까요. 미치지 않기 위해 저를 다스릴 필요를 느꼈어요. 요가를 통해 몸을 잘 다스리니까 마음도 편해지데요.”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수시로 조울증이 찾아온다는 그는 하루 한 시간 집 근처 호수를 산책하고, 억지로라도 웃기 위해 개그 프로그램을 다 챙겨 본다고 한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다니던 시절 그는 마광수 교수의 수제자였다. 그도 마 교수만큼 솔직하고 끼가 다분하다. 문단에서는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 다른 문인들이 잔잔한 노래를 부를 때 그는 유일하게 판을 깨며 격렬한 음주가무를 즐긴다. 노래와 춤 모두 수준급이라는 게 주변의 평. 지인들 중에는 그의 주사가 무섭다고 엄살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술을 잘 안 마셔요(웃음). 고등학교 때 많이 마셨죠.”
그는 17세 때부터 술, 담배에 입문한 ‘문제적 인간’이었다고. 학창시절 10년 연속 반장을 한 ‘범생이’였지만 밖에서는 조금 놀았다. 18세 때 ‘경월소주를 까먹으며’ 문학을 하기로 결심한 그는 문예반 지도교사의 영향으로 숱하게 책을 읽고 습작을 했는가 하면 창작의 자양분을 키우려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입시가 끝나자마자 고향 강릉에서 두 달간 버스안내양을 하는 등 ‘괴짜’ 경험도 많이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연일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구로공단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결혼 후 곧바로 혼자 인도로 날아가 한 달간 배낭여행을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이런 과거를 가리켜 ‘이상한 애가 스스로를 해명하기 위해 주체 못하고 미쳐서 돌아다닌 시기’라고 부른다.
이런 그가 요즘은 정말 범생이가 됐다. ‘인생방랑’ 대신 ‘역사방랑’으로 U턴한 것.
“과천에 사는데 근처 도서관 시설이 참 잘 되어 있어요. 아이 학교 보내놓고 나면 매일 도서관에 가요. 마흔 살까지 역사공부를 열심히 할 계획이에요.”
그가 요즘 역사방랑을 하며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것이다. 흥망성쇠의 거대한 역사를 가졌던 도시가 무(無)가 되어 있음을 볼 때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소설가 김별아. 그곳에서 그는 시간의 의미를 찾는 집착은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를 해명하기 위한 노력이나 글쓰기를 위한 몸부림이 한 생에서 다 끝나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성동아 2005년 3월 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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