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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①

‘신비주의의 대가’ 엘 그레코의 ‘성 베로니카’

■ 글·이주헌

2005. 03. 03

‘신비주의의 대가’ 엘 그레코의 ‘성 베로니카’

엘 그레코(1541?~1614), 성 베로니카, 1577~80년경, 캔버스에 유채, 84×91cm, 톨레도, 산타크루스 미술관


신앙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는 오랜 세월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 모습이 그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있을 때 그려진 초상화는 단 한 점도 없습니다. 모두 예수가 돌아가신 후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예술가들의 상상에 의해 제작됐지요. 하지만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살아 계실 때 그 얼굴 모습이 또렷한 이미지로 남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는 가시면류관을 쓴데다 채찍에 맞아 아픈 몸을 추스르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요. 그때 한 여인이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뛰어나와 천으로 예수의 땀을 닦아 주었습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는 고통을 당하는 예수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입니다. 곁에 있던 군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화를 내며 여인을 내동댕이쳤습니다. 여인은 그 와중에도 예수의 얼굴을 닦던 천을 꼭 잡고 있었지요. 그 천을 펼쳐본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천에 예수의 얼굴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으니까요. 전설에 따르면 여인의 이름은 베로니카라고 합니다. 예수의 얼굴이 새겨진 그 천은 지금 로마 교황청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특히 엘 그레코는 예수의 얼굴이 새겨진 천을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독특한 2인 초상화를 완성했습니다. 천을 들고 있는 성녀의 표정은 경건하기 그지없고 관객을 바라보는 예수의 눈빛은 형형하기 그지없습니다. 깊은 신앙심에 토대를 두고 그린 그림인 만큼 매우 거룩한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한 가지 더∼
중세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성유물을 매우 신성시했습니다. 성유물이란 베로니카의 천 같은 이적의 증거물,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 십자가 파편이나 못 같은 종교적 기념물, 성인들의 유해 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성유물들 가운데 병을 낫게 하는 등 신비로운 효험이 있다고 인정된 것들은 많은 순례자들을 끌어들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엘 그레코의 작품처럼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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