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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안타까운 사랑

해군 훈련 중 순직한 남편 그리워하다 자살한 고 오길영 상사 부인 김명좌

■ 기획·최호열 기자 ■ 글·김순희‘자유기고가’

2005. 01. 31

지난해 10월 해군 훈련 중에 4명이 실종,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세상을 뜬 오길영 상사의 부인 김명좌씨가 영혼이 되어서라도 부부의 연을 이어가겠다며 최근 남편의 뒤를 따라 자살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 부부의 ‘슬픈 연가’를 취재했다.

해군 훈련 중 순직한 남편 그리워하다 자살한 고 오길영 상사 부인 김명좌

먼저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던 아내가 저승에서 인연을 잇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해군 훈련 중 순직한 남편 오길영 상사의 뒤를 따라 12월26일 자살한 김명좌씨. 그는 28세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날인 12월25일 오후 ‘싸이월드’에 있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오 상사와의 첫 만남부터 8개월간에 걸친 연애, 신혼생활 등 두 사람이 함께한 1년6개월의 추억을 글로 올려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는 ‘우리였어요’라는 글을 통해 “마음에 담고 있자니 터져버릴 것 같다”면서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예쁜 딸 낳고 재밌게 살자고 했는데…. 이렇게 애타게 울부짖으며 불러도 안 들리나봐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 머릿속엔 그와의 추억이 가득한데…. 행복했던 그 짧은 시간의 추억만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나요. 우린 하고 싶은 것도, 아직 못해본 것도 참 많은데 이젠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아무런 의욕도 생기질 않아요.”
그의 애절한 사부곡이 담긴 주인 잃은 홈페이지에는 가수 박효신의 ‘눈의 꽃’이 처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눈의 꽃’은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주제곡. 김씨는 사랑하는 남자가 죽자 그를 그리워하다 뒤따라 자살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미련없이 죽음을 택했다. 두 사람의 애잔한 사연을 김씨가 유서처럼 남긴 마지막 글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김씨가 쓴 글에 따르면 그가 남편 오길영씨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3월30일. 직업군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중매에 나선 친지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 맞선을 본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오 상사를 소개받을 당시 “군인을 싫어했다”면서 “어느 시골, 산속에 근무하고 중요한 순간에 (가족과) 함께 있지도 못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싫어서 그날도 (맞선 보는 자리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와 함께 맞선 장소에 들어선 그이는 착하고 순한 인상의 소유자였어요. 아이보리색 면바지에 엷은 연둣빛 티셔츠 차림으로 말없이 미소 짓고 앉아 있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어요. 우린 차 한 잔 마신 후 점심 먹고 곧바로 헤어졌어요. 그런데 그날 묻는 말에 조용히 대답만 하던 그 사람은 생각보다 적극적이었어요.”
두 사람이 만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오 상사는 김씨에게 “여자친구가 돼달라”고 부탁했고, 김씨가 이를 승낙하자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그날, 그이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길거리에서 막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야! 나도 애인 생겼다’하고요. 그 이후에 우린 많이 가까워졌어요. 직업군인이다보니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전화로 사랑을 키워나갔지요.”
정들기 전에 정리하려던 김씨의 처음 생각과 달리 오 상사는 그의 가슴속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 상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김씨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평택에서 3~4시간씩 기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와 김씨와 1시간30분 남짓 짧은 만남을 가진 후 마지막 기차를 타고 평택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는 키스할 때도 ‘자기야! 나 키스해도 돼?’ 하고 물어보는 ‘순진댕이’였어요. 전 그게 첫 키스였어요. 그를 만난 지 8개월 만에 결혼했지요.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밥 해서 마주 앉아 먹는 거…. 출근길에 (남편이) 뽀뽀해주고 난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어주고, 퇴근한 남편은 잘 다녀왔다고 뽀뽀해줬는데…. 저녁 먹은 후 집 근처 공원에 나가 손잡고 산책하고 운동하고, 항상 팔짱끼거나 두 손 꼭 붙잡고 다녔어요.”

해군 훈련 중 순직한 남편 그리워하다 자살한 고 오길영 상사 부인 김명좌

오길영 상사와 김명좌씨의 결혼식 사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1년여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주어진 행복도 잠시. 지난해 10월12일 오 상사에게 1박2일의 훈련이 떨어졌다. 그는 다른 날과 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출근했고, 12시40분쯤 ‘이쁜이! 내다! 점심 먹었어?’라고 전화를 해왔다고 한다. 김씨는 그것이 남편의 마지막 목소리가 될 줄은 몰랐다고.
김씨는 오 상사가 훈련 나간 날 오후 내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남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먼 바다에 나가 훈련할 때면 휴대전화를 꺼놓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고.
“다음날 새벽에 꿈을 꿨는데, 그가 사고가 났다면서 다친 몸으로 피를 흘리며 다가와 깜짝 놀라 깼어요.”
불길한 김씨의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오 상사가 훈련을 나간 다음날 아침 7시40분. 김씨의 집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오길영씨 댁이지요. 어제 훈련 중 5명이 탄 잠수정이 침몰해 1명은 구출되고 현재 4명이 실종됐습니다.”
김씨는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해군 관계자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김씨는 그때 심경을 “그가 전부였는데 날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놓고 그렇게 갑자기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고 적었다.
사고 직후 공군과 해양경찰 등 유관기관이 합동으로 수색작전을 폈지만 오 상사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딘가 남편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김씨는 친한 친구에게도 남편의 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김씨의 고향 친구인 정미정씨(29)는 “날마다 자신의 미니홈피를 찾은 친구들에게 답글을 쓰곤 했는데 며칠째 무소식이더라고요. 10월 말쯤 전화를 걸었더니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북) 남원 시집에 있다고 해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아무 일 없다’면서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뉴스에서 본 사고의 당사자가 명좌 남편인 줄은 몰랐죠”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다.
“남편과 함께 있는 것 말고는 욕심이 없었다”고 지난날을 회고한 김씨는 “돈 따위 다 필요 없어요. 여러분 내일은 아무도 몰라요. 오늘만 죽을 힘을 다해 행복해지세요” 하는 말로 글을 마친 후 미니홈피 사진첩에 ‘그를 기억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차례로 올렸다.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낸 김씨는 다음날 아침 그가 살고 있던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 1층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월6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선 오 상사를 비롯한 해군 순직자에 대한 ‘합동안장식’이 거행됐다. 특히 이날 안장식에는 김씨와 오 상사의 합장식이 이뤄져 이를 지켜보는 유가족과 부대장병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사고 이후 오 상사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 김씨는 남편의 유품과 함께 ‘합장’되었다.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이들 부부의 연이 ‘또 다른’ 세상에선 영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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