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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5개월여 만에 ‘여성인권대사’로 임명된 전 법무부장관 강금실

‘장관시절부터 남의 눈치 안 봐, 정치적 야망이나 인기보다 일상의 행복이 더 중요해’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연합뉴스 제공

입력 2005.01.31 11:02:00

지난해 7월 법무부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대외 활동을 자제해온 강금실 전 장관이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월12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여성인권대사’ 임명장을 받은 것. 퇴임 후에도 여전히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그의 근황을 취재했다.
퇴임 5개월여 만에 ‘여성인권대사’로 임명된 전 법무부장관 강금실

지난 1월 12일 외교통상부에서 여성인권대사 임명장을 받은 강금실 전 장관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미소만 지어보였다.


지난해 7월 퇴임 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47)이 지난 1월12일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해 12월 말 국무회의에서 여성인권대사로 지명된 그가 임명장을 받으러 외교통상부에 나온 것. 강 전 장관은 앞으로 1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인권대사로 정부정책을 외국에 홍보하고,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하게 된다. 강 전 장관은 이와 별도로 1월26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다보스 포럼)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퇴임 후 지난 5개월간 공식 활동을 자제하고, 칩거하다시피 했던 강 전 장관이 연초부터 대외 활동에 나서자 정계와 법조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으로 1년5개월의 재임기간 내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가 퇴임 후에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각종 ‘유력 정치인’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사법개혁추진위원장 등의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 정치권에선 당장 오는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를 위해 강 전 장관이 정치에 입문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강 전 장관이 정치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지도 모른다는 관측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는 정치나 관료직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체질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 국회에 출석해 말꼬리잡는 싸움에 열중하는 국회의원들을 보고 “호호 코미디야 코미디”하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퇴임하면서 “너무 즐거워서 죄송하다. 떠날 때는 말없이”라고 했던 그가 아닌가.
퇴임 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음에도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피하고 있는 강 전 장관은 여성인권대사 임명장을 받기 위해 붉은색 재킷에 스커트 차림으로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나타났을 때도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말을 극도로 아꼈다. 그의 한 측근은 “강 전 장관은 이제 완전한 자연인이고 싶어한다”며 “자신의 근황조차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매우 꺼린다”고 전했다.
퇴임 5개월여 만에 ‘여성인권대사’로 임명된 전 법무부장관 강금실

그렇다면 ‘자연인’으로 돌아간 그가 여성인권대사가 되고,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는 이유는 뭘까. 법무부장관 재임시절 법무부에서 일하며 강 전 장관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검사는 “강 전 장관은 자신의 개인 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고, 억압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공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며 “두 가지 모두 명예직이기 때문에 개인 생활을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몫을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여행 다녀온 뒤 장관시절 함께 일했던 법무부·검찰 간부들과 송년 모임 가져
퇴임 후 2개월여의 휴식을 끝내고 지난 10월 초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 변호사로 복귀한 강 전 장관은 ‘자연인’ 강금실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판사시절 춤을 배우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변호사 개업 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에게서 1년 가량 한국 전통춤을 배웠던 그는 장관시절 “지금껏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 춤을 배운 것”이라며 “법조인이 되지 않았다면 무용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춤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런 그이기에 퇴임 후 강남의 한 문화센터에 나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지난 11월, 한 주간 신문에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살풀이춤을 추는 사진이 공개되자 그는 해당 언론사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문화센터에도 발길을 끊었다.

퇴임 5개월여 만에 ‘여성인권대사’로 임명된 전 법무부장관 강금실

재임시절, 말과 행동은 물론 옷차림까지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강 전 장관의 인기가 퇴임 후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강 전 장관의 한 측근은 “관료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무뎌지고, 정치인들 중에는 어떻게 해서든 대중적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강 전 장관은 권력이나 인기에 관심이 없다”며 “일상의 행복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춤추는 사진’ 소동을 뒤로하고 11월 중순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떠나 12월 초에 귀국했다. 여행 기간 동안 파리에서 열린 서양화가 이현씨의 전시회에도 들렀다. 이현씨는 그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강 전 장관은 송광수 검찰총장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가장 먼저 함께 일했던 법무부 간부와 중견 검사들을 챙겼다. 송년회를 겸한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 한 검사는 “강 전 장관은 검찰 출신 장관들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검찰수사 독립’을 이뤄냈다”며 “강 전 장관 시절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를 그리워하는 검사들이 적지 않지만 취임 당시만 해도 강 전 장관과 검찰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참여정부 초기 판사 출신의 젊은 40대 여성 변호사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자 검찰 내에선 그를 ‘점령군’ ‘식민지 총독’, 심지어 ‘계모’로 부르기까지 했다.
한 부장검사는 “서열과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조직에 검찰 근무 경험이 전혀 없는 부장검사급 변호사가 장관으로 왔으니 반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 조직을 얼마나 무시하면 저렇게 젊은 여자가 장관으로 올 수 있나 하는 생각에 트집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 전 장관이 ‘순환보직’ 인사 원칙을 확립하고, 정치권의 수사 개입을 차단하는 등 역대 여느 장관 못지않은 업무 추진 능력을 발휘하자 검찰 내부에서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회에 나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일선 검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다고.
강 전 장관은 과감히 검찰 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검찰에 몸담았던 원로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는 등 법무부와 검찰 조직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또한 수시로 검찰 간부와 법무부 직원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했다고. 매일 점심 저녁으로 약속이 잡혀 있어 “장관 된 후 살이 쪘다”며 불평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예고 없이 서울지검을 방문해 야근하는 검사들을 격려하고, 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검찰 간부의 생일에는 집으로 꽃을 배달시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장관시절 여직원들과 어울려 떡볶이 사 먹고, 공안 검사들과 김밥 먹으며 한국 현대사 공부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이러한 행동에 검찰 조직 내에선 강 전 장관에 대해 “우리를 적으로 대하고, 파헤치려고만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다고 한다. 강 전 장관 역시 자신이 검사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취임 4개월 만인 2003년 6월 말 전국의 검사들에게 보낸 A4 용지 2장 분량의 이메일에서 검사들을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사람에 비유하며 “검사는 검찰이라는 권력기관 속에서 편향된 권력으로 부풀어오른 이미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검사가 순결성을 지닌 직업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시 구절을 인용하며 써 보낸 편지에 대해 ‘장관답지 못하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이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강 전 장관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때문에 강 전 장관이 갑작스럽게 퇴임하게 됐을 때 검찰 조직의 허탈감이 상당했다고. 한 검사는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를 대하고, 검사들이 갖고 있는 순수성과 사명감, 투철한 직업의식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니 과연 어느 누가 우리의 그런 모습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허탈했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 재임 당시 법무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강 전 장관에 대해 “머리가 좋고, 직관력과 예지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강 전 장관은 취임 후 부장검사·검사장·평검사들과 각각 집중 집단면담시간을 가졌는데 면담에 응했던 검사들이 하나같이 “장관을 만나고 나면 장관 편이 된다”고 입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법무부 출신의 또다른 검사는 “국가보안법 등 현안에 대한 시각차는 있었지만 순수함과 열정이 기존의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의 장관들이 보였던 행태와는 분명히 달랐다”고 말했다.

퇴임 5개월여 만에 ‘여성인권대사’로 임명된 전 법무부장관 강금실

지난해 7월 퇴임식에서 검사들과 환하게 웃고있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누구하고나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공안 검사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 현대사 공부도 했는데 그날은 분식점에서 파는 김밥을 사다 나눠 먹었어요. 자기가 해야 하고,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강 전 장관은 또 법무부 여직원들과 팔짱을 끼고 나가 떡볶이를 사먹는가 하면, 해외에 나갈 때 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는 VIP대우를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돌아다니면서 커피도 마시고 싶은데, 귀빈실에 있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는 것. 그의 측근들이 한결같이 그의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젓는 이유도 격식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그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의 곁에서 일해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강 전 장관에 대해 “인간의 작은 행복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때문에 자신의 개인생활에 신경쓰는 것 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행복에도 관심이 많다고. 강 전 장관의 이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의 재임 시절 정부에서 법무부 5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혁신을 주제로 교육을 한 적이 있다. ‘혁신은 무엇인가’하는 정의로부터 시작되는 주입식 강의였다. 그런데 갑자기 강 전 장관이 사회자의 마이크를 들고 참석자들에게 “혁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한 사람을 지적했는데 그로부터 “혁신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조직 구성원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을 들은 강 전 장관은 다시 “지금 그럼 행복합니까”라고 물었다.
강 전 장관은 평소 법무부 직원들에게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을 없애나가는 것이야말로 개혁이고 혁신이라고 말하며 행복한지를 묻곤했다고 한다. 법무부 출신의 한 검사는 “법무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행복하냐고 물어준 사람은 강 전 장관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장관시절 가장 힘든 일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던 강 전 장관은 요즘 새벽 기도에 열심이라고 한다. 지난해 4월 천주교 영세를 받은 그는 매주 청담동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때문에 그의 주변에선 “강 전 장관이 ‘장관을 그만두면 연애도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했는데 요즘 예수님과 열애하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강 전 장관의 한 측근은 최근 그의 인기를 톡톡히 실감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 것. 강 전 장관이 뿌리치지 못하고 응했는데 그 뒤로 사람들이 계속 몰리는 바람에 옆에 있던 사람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강 전 장관은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뭐” 하고 웃으며 선선히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줬다고.
현직 장관 중 국민들이 맡은 보직과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나면 금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강 전 장관은 퇴임 후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기가 사그라들 줄 모른다. 끊임없이 그의 정계 진출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의 측근들은 장관 재임시절 “오십이 넘으면 아무 직업 없이 그저 놀고 싶다”고 말했던 그가 정치인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하면서도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여지를 남겨둔다. 정치권에서 강 전 장관의 상품 가치가 그만큼 높고, 누구보다 대중이 그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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