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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지도자 젊은지도자상 받은 긴급구호활동가 한비야

"세상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이에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12.10 11:55:00

오지여행가로 긴급재난구호활동가로 유명한 한비야씨가 세계에 한국 여성의 진취성을 널리 알린 공로로 지난 11월 초 한국여성지도자 젊은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지난번 이라크 구조활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기운을 내 또다시 팔레스타인으로 구조활동을 떠나는 그를 만났다.
한국여성지도자 젊은지도자상 받은 긴급구호활동가 한비야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면서 공식적인 응원을 해준다고 생각하니까 무척 기뻐요.”
오지여행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알려진 한비야씨(46·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가 지난 11월4일 제2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젊은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대한YWCA연합회에서 여성 지위 향상에 기여한 여성 지도자를 선정해 수여하는 것으로 한씨는 세계에 한국과 한국 여성의 진취성을 널리 알린 점 때문에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국제 NGO 활동가로 1년에 2백50일 이상을 세계 재난지역에서 긴급구호활동을 하며 보낸다.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수단,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네팔 등 제3세계에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난민들에게 난민촌을 지어주고 식량과 식수 및 의료지원 활동을 펼쳐왔다. 그가 팔레스타인으로 떠나기 하루 전인 지난 11월16일 밤 불광동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그만의 공간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신부나 수녀가 사는 집 같다고나 할까, 살림살이가 거의 없었다. 부엌 싱크대도 머그잔 한두 개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생활의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여행자의 간소함 그 자체였다.
구호물품으로 받은 빵을 자신에게 선뜻 나눠주는 아이들 보며 구호활동 결심
“집에 뭘 쌓아두는 걸 싫어해서 아예 사들이지 않아요. 대신 군것질을 좋아해서 과자 사먹는 데 가산을 탕진하죠(웃음).”
그가 “풍악을 울려줄게요” 하더니 조용한 음악을 튼다. 열 장 남짓한 CD가 그가 누리는 작은 사치다.
“긴급구호활동은 응급수술실에 비유될 수 있어요. 홍수나 지진 같은 천재, 전쟁 같은 인재 때문에 다치거나 굶주린 사람들이 생기면 어디든 달려가 피난처를 만들어주고 물과 식량을 나눠주죠. 처음 긴급구호활동을 할 때는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일을 맡았는데 지금은 물자 배분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그가 펼치는 긴급구호활동은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소방대원에 비유될 수 있다. 실제 재난현장에서 군인이나 현지인 못지않게 많은 긴급구호활동가들이 난민구호 활동을 하다 목숨을 잃는다.
“이라크 전쟁 지역에서 긴급구호활동을 할 때 협박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심지어 우리가 탄 차량에 폭탄을 달겠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하지만 수십만 명의 사람을 구하는 일인데 어떻게 멈춰요? 죽기는 싫지만 그래도 만일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스톱 치거나 사우나 하다가 죽긴 싫어요. 긴급구호활동 현장에서 죽고 싶어요.”
수시로 죽음과 맞닥뜨리는 현장이 그의 일터이다보니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그의 이미지는 ‘여성 전사’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국방일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군인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1위가 한비야씨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제가 늘 그렇게 강인할 거라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한다.

한국여성지도자 젊은지도자상 받은 긴급구호활동가 한비야

한씨는 내년엔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저를 여성 전사처럼 보는데 긴급구호활동 하면서 ‘울보’가 됐어요. 그리고 말이 좋아 오지여행가지, 솔직히 ‘길치’에요. 자주 등산하는 북한산에서도 매번 길을 잃어요. 회사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제 사무실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매일 헤매는걸요. 겉보기와는 많이 달라요.”
“멋있다”란 말로 자신의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긴급구호활동의 이면도 함께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전쟁 국가에 다녀오면 꼭 병이 나요. 이번에 이라크 다녀와서도 많이 아팠어요. 몇날 며칠 악몽에 시달리는데 꿈속에서도 막 전쟁이 벌어져요. 위험한 상황이어서 긴박하게 탈출 준비를 하는데 옆에 있는 동료가 폭탄에 맞아 몸이 두 동강 나서 죽는 꿈도 꾸고…. 그러면 막 비명을 지르다 잠에서 깨요. 티셔츠가 땀으로 푹 젖어 있죠. 그럴 땐 괴로워요.”
얼마 전에는 두 달간의 병가를 내서 치료를 받았을 만큼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크다 보니까 왼쪽 얼굴과 손, 발에 마비 증세가 왔어요. 치과병원에서 마취주사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어요. 제가 이럴 정도인데 전쟁터의 어린 아이들은 어떻겠어요?”
그는 생물학적 출산은 경험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어머니로서 유독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가 7년 동안 세계 89개국을 여행하다가 긴급구호활동을 결심하게 된 것도 아프가니스탄 난민 어린이들 때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30년 넘게 전쟁에 시달렸고 가난 때문에 먹을 게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풀을 뜯어 먹으며 끼니를 때우는데, 그 상황에서 아이들이 저에게 구호물자로 받은 빵을 선뜻 나누어주었어요. 생물학적 유전자는 다르지만 세계 난민 어린이들과 사회적 유전자를 나누며 살고 싶어요.”
지금도 그에게는 “세계여행이나 계속하지 무엇 때문에 그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럴 때 그는 “그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가 노력해서 사람을 살렸을 때 얼마나 뿌듯하고 기쁜지 몰라요. 물론 긴급구호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많이 두려웠어요. 주변에 긴급구호활동 하는 사람도 없었고 ‘긴급구호활동은 이런 것이다’ 하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이 세상에 풀 수 없는 문제는 정말 많지만 풀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보단 그래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세상이 어둡다고 탓하기보다 촛불 하나라도 밝히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할까요. 긴급구호활동 역시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에요. 전 세계 난민들의 굶주림과 질병이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장으로 달려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죠.”

50대에 좋은 동반자 만나고 싶어
그는 앞으로 자신이 계획한 일을 다 실천하려면 1백50세까지는 살아야 한다고 벌써부터 걱정이다.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돌았으니까 초경량항공기를 직접 조종하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돌고 싶고, 또 배 타고 지구 세 바퀴 반도 돌고 싶어요. 저에게 2년 정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100명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인지 그것도 알아보고 싶어요. 그래서 ‘훌륭함’이란 것의 정의를 다시 내려 보고 싶어요.”
이렇듯 그의 머릿속에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가득하지만 지금 당장은 긴급구호활동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 그가 해야 할 긴급구호활동은 이미 내년 스케줄까지 꽉 잡혀 있다.
“내년 3월에는 북한에 가요. 월드비전에서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 2000년부터 ‘씨감자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2007년쯤이면 씨감자가 재배돼 식량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북한 땅이 워낙 척박하다보니까 비료가 많이 필요해요. NGO 단체에서 씨감자를 보내긴 했지만 비료값을 댈 만큼의 여력은 없어요.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한국여성지도자 젊은지도자상 받은 긴급구호활동가 한비야

긴급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한비야씨. 사진제공 월드비전.


그는 북한에 다녀온 후 내년 5월쯤에는 그간 난민구호활동을 벌이면서 쌓은 경험을 풀어 쓴 책을 낼 생각이다.
“책 제목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로 잡아봤어요. 지도는 말하자면 생각의 틀인데 그동안 제가 본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존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쉼표도 없이 계속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그의 인생 드라마에서 남녀간의 사랑이나 안정된 결혼생활이 주는 행복 같은 것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것일까.
“외로움도 배고픔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겠죠. 그런데 지금은 누굴 만나고 사귈 틈이 없어요. 만난다고 한들 긴급구호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쩌겠어요? 50대가 된 후에 좋은 동반자를 만나고 싶어요. 사람마다 감정의 시간표는 다 다르니까요.”
그가 말하는 ‘좋은 동반자’란 어떤 기준일까 궁금했다.
“생물학적 유전자보다는 사회학적 유전자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나만의 행복보다는 타인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요. 그럼 정말 농도 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30대 세계 여행 경험을 통해서 ‘좋은 동반자’와 ‘나쁜 동반자’를 가리는 나름의 변별력이 생겼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여행지를 갔다 왔어도 나쁜 동반자와 동행했다면 누군가 여행 소감을 물었을 때 “거기 별로야. 절대 가지 마”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반대로 길이 험하고 도중에 장대비나 도둑을 만난 최악의 여행지였어도 좋은 동반자와 동행했다면 “거기 진짜 좋아! 꼭 가봐”라는 예찬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한번 세상에 왔으니까 제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보단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동반자라면 딱이죠. 거창한 것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산에서 남이 버린 휴지나 깡통 하나 주워서 내려와도 저 때문에 산이 훨씬 깨끗하고 좋아질 것 아니겠어요?”
걸어서 세계 여행을 하느라 무릎 연골이 닳았을 정도인 여자, 올해로 긴급구호활동 5년째를 맞아 병원 신세까지 톡톡히 지고 있는 한비야. ‘지도 밖의 행군’을 힘차게 지속하고 있는 그가 세상 사람들을 향해 타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이렇다.
“무조건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해서 누구나 세계인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안방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살아도 전쟁터에서 울고 있는 저 아이가 내 아이라는 생각만 한다면 세계는 좁아집니다. 우리는 튀어봐야 지구인이거든요. 내 아이의 영역을 우리가 조금만 더 넓히면 세상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될 대상이 됩니다.”

여성동아 2004년 12월 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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