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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공방

아들 존재 뒤늦게 밝혀진 벤처 갑부 이수영 VS 전 시아버지 임씨 팽팽한 공방

“17년 전 사기결혼 당하고 이혼 후 아들 양육권 뺏긴 채 살았다” vs “내 아들 죽은 후 아이 맡긴 채 돌보지 않았다”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7.05 14:47:00

그동안 미혼으로 알려졌던 벤처 갑부 이수영씨가 17년 전 결혼했었고 아이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이씨가 이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와 엄마로서 아이를 양육하지 않은 이유를 놓고 이씨와 전 시집 측이 상반된 주장을 펼쳐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아이가 있다는 것 외에 모든 주장이 상반된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아들 존재 뒤늦게 밝혀진 벤처 갑부 이수영 VS 전 시아버지 임씨 팽팽한 공방

5백억원대의 주식을 가진 ‘미혼의 벤처 갑부’로 올해 초 미국의 장애인 검사 정범진씨와 결혼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던 (주)이젠 사장 이수영씨(39). 최근 그에게 열일곱살 난 아들이 있음이 밝혀져 또 한번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 시사주간지에 따르면 이씨는 대학생이던 87년 결혼해 아들을 낳고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남편이 93년 암으로 사망한 후 시부모에게 아이를 맡긴 채 지금까지 돌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6월9일, 벤처타운인 테헤란로 근처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이씨를 만났을 때 그는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아들이 있다는 것 외엔 다 사실왜곡”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6월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자신의 기사를 실은 시사주간지 등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때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때론 눈물을 흘리는 격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친 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만 담아두었던 응어리를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며 미소 짓기도 했다.
-그동안 미혼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아들을 위해서라도 복잡하고 힘들었던 과거를 공개하고 싶지 않았을 뿐 일부러 속이려 한 적은 없었어요. 유학시절 친구들과 정범진 검사는 제가 결혼한 사실을 알고 있어요. 제가 미혼으로 알려지게 된 건 이래요. 기자들이 지나가는 말로 ‘결혼했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전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싱글’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어요. 아이랑 같이 살았다면 아이가 있다고 말했을 거예요. 외국은 미혼이든 이혼녀든 혼자 살면 싱글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싱글’ 하면 미혼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언론에서 ‘처녀갑부’라는 수식어를 쓰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굳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필요는 못 느꼈어요. 시간이 지나 아이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펴낸 자전에세이에도 서문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알렉스(정범진 검사)와 ○○(아이 이름)에게 선물하고 싶다’고만 썼을 뿐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데요?
“그 이야기를 책에 쓰려고 한다면 이 책은 몇 년 후에나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아이도 모르는 진실이 세상에 먼저 알려지면 아이가 상처를 받잖아요. 아이에게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데 아직 미성년이라 진실을 받아들일 능력이 안 되고, 또 만날 수도 없는 상태예요. 2년 뒤면 성인이 되기 때문에 그때 모든 걸 이야기해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이 책은 제 개인사를 담은 자서전이 아니라 먼저 벤처인의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기에 개인사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성인이 되면 모든 진실을 말하려 했다”
-전남편과의 결혼이 사기결혼이었다고 주장하는 게 사실인가요?
“죽은 사람의 명예도 있고, 무엇보다 아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시시콜콜 이야기하지는 않겠어요. 그는 대학생이 아니면서도 서울대 의대생인 것으로 철저히 속이고 절 만났어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땐 이미 아이가 있었고, 아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결혼을 선택했어요. 그러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그래도 남편은 함께 미국으로 유학 가서 낮에는 신문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택시운전을 하는 등 이수영씨를 뒷바라지 해주다 무리해서 암으로 사망했다고 하던데요?
“아이를 낳고 88년 복학해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남편이 말도 없이 사라졌어요. 시집 쪽에서 미국 유학 갔다는 말을 전해들었는데, 나중에 남편이 멕시코에서 냉동차를 타고 미국으로 밀입국을 하다 얼어 죽을 뻔했다는 말을 하더군요. 제 뒷바라지를 해주었다는 것도 사실과 달라요.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90년에 미국으로 갈 때 비행기표를 사준 것도, 유학비용을 대준 것도 친정이었어요. 전남편이 제 학비를 대주었다고 하는데 우린 92년 7월에 이혼했고 제가 대학원에 들어간 건 그해 9월이었어요. 그리고 전남편은 93년 사망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제 학비를 대주었다는 거죠?”

아들 존재 뒤늦게 밝혀진 벤처 갑부 이수영 VS 전 시아버지 임씨 팽팽한 공방

아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이수영씨.


-무엇 때문에 이혼한 건가요?
“처음에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잘못을 인정하고 노력하면 되잖아요. 결혼이란 게 서로 신뢰를 쌓고 인생을 같이 설계하는 것인데 그 사람은 그런 노력이 없었어요.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결혼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힘들었어요.”
-시집 쪽에선 사별이라고 주장하는데?
“성인이 합의해 법원에 가서 내린 결정을 이제 와서 인정할 수 없다니 기가 막히네요. 이혼을 하면서 양육권을 남편이 가져갔어요. 전 위자료를 한푼도 받지 않았고 매달 25달러(약 2만8천원)의 양육비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어요. 양육비를 요구한다면 지금이라도 그걸로 계산해서 2천1백달러(약 2백40만원)를 지급할 용의가 있어요.”
-이혼할 때 암이라는 사실을 몰랐나요?
“그때까지 너무나 건강해서 저도 전남편도 암은 생각도 못했어요.”
-95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왜 시집에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나요?
“이혼 사실은 아들이 말해야지 이혼한 며느리가 찾아가 말해야 한다는 게 말이 돼요? 그리고, 이혼 후에 전남편이 암에 걸려서 시어머니가 미국에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분들 주장대로라면 남편을 간호하고 있어야 할 며느리가 집에 없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또한 제가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귀국 후 아이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시집에 찾아가서 아이의 양육권을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자기들의 직계자손이고, 저는 언제든지 재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제게 무슨 경제적 여유가 있겠냐고 하더군요.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이가 엄마인 저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이혼했다고 해도 친엄마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은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아이는 고모를 엄마라고 부르며 살고 있었어요. 그 후 제가 집에 찾아갈 때마다 아이를 못 만나도록 숨기고, 길거리에서 아이를 만나도 ‘어차피 같이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을 붙이면 안 된다’면서 인사도 안 시키고 데리고 사라졌어요.”
-99년 시집 쪽에서 아이를 보내지 않았나요?
“그 집 큰며느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아이가 사춘기가 되니까 아무래도 엄마가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시어른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당연히 제가 키우겠다고 했죠.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오게 되었어요. 전 아이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기에 정을 붙이기 위해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평일은 회사 일로 바빠 주말에만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아이는 주말엔 할아버지 집에 가는 걸로 알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주말에 보냈지만 그 집에서도 아이가 엄마랑 친해질 수 있게 만나는 시간을 줄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혀 줄이지 않고 오히려 아이에게 힘들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더군요.”
-아이가 왜 다시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간 건가요?
“1년 정도 같이 살았어요. 어느 날 밤 아이 방에 들어갔는데…. 다른 일로는 저에게 야단을 맞아도 괜찮았는데, 그 일은 무척 창피했던 것 같아요. 야단을 치려니까 ‘할아버지 집에 가겠다’며 짐을 챙겨 나가더라고요. 야단을 맞아도 나한테 맞아야 하고 나랑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해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상식적으로 아이가 그렇게 갔으면 당연히 그 집에선 엄마랑 살라고 돌려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돌려보내기는커녕 제 동의도 없이 학교까지 그쪽으로 전학을 시켰더라고요.”

아들 존재 뒤늦게 밝혀진 벤처 갑부 이수영 VS 전 시아버지 임씨 팽팽한 공방

이수영씨는 최근 출간한 자전에세이에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정씨와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아이를 다시 데려올 생각은 안 했나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데려오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데려오려면 납치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집을 나간 후 아이가 전화를 한번도 안 했다는 것은 엄마에 대한 정이 없다는 것 아닌가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 손을 내밀지 못한 것 같아요. 같이 시간을 보낸 만큼 쌓이는 게 정이에요. 아이나 저나 정을 쌓을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게 억울할 따름이에요.”
-아이랑 살 때 추억도 많았을 텐데요?
“아이가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팀에 들었어요.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갔더니 제가 너무 젊어보였는지 다른 아이 엄마들이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라고요.”
-지금 시집 쪽에선 아이를 데려가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돈이 많다는 기사를 보고 ‘그렇다면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돈을 많이 벌면 아이 엄마로 인정하고 그렇게 벌지 못하면 아이 엄마로 인정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돼요.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조건이 되는 건가요? 돈이 있으니 이제 키우라니, 무슨 권리로 엄마와 자식 사이에 끼여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가요. 만약에 제가 돈을 벌지 못했다면 이런 말 했겠어요?”
-시집 쪽에서 아이를 보내면 같이 살 건가요?
“우린 아이가 태어났을 때 1년, 99년에 1년, 그렇게 2년을 빼놓고 15년간을 떨어져 살았어요. 같이 살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지금 당장 같이 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아이와 저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싶어요. 좀더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곳에서 교육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집 쪽에선 지난해 8월부터 계속 아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이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전혀 응답을 안 했다고 하는데요?
“지난해 8월경 연락이 와서 제 동생이 대신 만났어요. 당연히 양육 문제를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 문제는 뒷전이고, 제 기사 스크랩한 것을 펼치면서 ‘왜 처녀라고 했냐’는 이야기만 하더래요. 기자들 만나서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고. 그리고 올해 3월에 결혼기사 나가니까 4월에 내용증명을 보내왔어요. 양육비를 달라,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니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당신이 미혼으로 알려진 탓에 아이가 사생아처럼 돼버려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부터 저에게 양육권을 주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에요. 분명히 제가 키우겠다고 아이를 달라고 했는데 이를 거부한 사람들이에요. 왜 아이를 방치했다고 거짓말하고, 결혼 발표 하니까 도덕적으로 비난을 해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도 대한민국에선 혼자 된 며느리에게 아이를 주니 안 주니 하고, 억지로 모자관계를 떼어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열심히 돈을 번 것도 이 때문이에요. 시집과 자식 문제로, 결혼으로 인생이 꼬여버린 사람들에게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더 열심히 일했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 10월이 되면 새로운 포털사이트도 오픈하고, 결혼도 하고, 또 2년이 지나 아이가 성인이 되면 양육권 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남들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했다.

아들 존재 뒤늦게 밝혀진 벤처 갑부 이수영 VS 전 시아버지 임씨 팽팽한 공방

이수영씨를 만난 후 전 시집 쪽의 주장을 듣기 위해 구로구에 있는 시집을 찾았다. 전 시아버지 임씨(73)는 “은숙이(이수영 사장의 본명)는 지금도 내 며느리”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을 “사업을 하다 실패한 후 40대에 뒤늦게 신학을 공부한 목사로, 대학 등에 강의를 나가다 지금은 정년퇴임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생계가 어렵다”는 말도 털어놓았다.
-이수영씨는 사기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하는데요?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찾아왔을 때 분명히 ‘내 아들은 대학생도 아니고 경제적 능력도 없다. 집안도 서로 차이가 나니까 잘 생각해보라’고 말했어요. 양가 부모가 만난 자리에서도 분명히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했고요.”
-이씨가 당시 임신 상태였다는 건 알고 있었나요?
“몰랐어요. 나중에 보니까 결혼할 때 임신중이었더군요. 우리도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낼 계획이 있어 결혼을 서둘렀어요. 아들은 87년에 결혼하고 그 다음해 미국으로 갔어요.”
-아들이 미국에서 기자로 일했다고 하는데, 고등학교만 졸업해 어떻게 기자로 취업이 가능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저는 모르겠어요. 아들이 그렇게 말을 했어요.”
-아들이 미국으로 간 후 이씨와는 같이 살았나요?
“며느리는 아이를 낳고 88년에 복학했어요. 남편이 없으니까 혼자 시집에 살기가 불편했는지 가까이 있던 친정 동생들 집에서 생활했어요.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아이는 우리가 키웠어요.”
-이씨의 학비를 대주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솔직히 아들이 자리잡을 때까지 며느리가 가서 뒷바라지를 해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갔더라고요. 아들이 두 사람 생활비와 학비의 일부를 대기 위해 힘들게 일했어요. 낮에는 신문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택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이혼 사실은 전혀 몰랐나요?
“아들로부터도 며느리로부터도 들은 바가 전혀 없어요. 이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암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어머니가 미국에 갔을 때 집에 며느리가 없었을 텐데도 몰랐나요?
“아내 말이 아들에게 물어보니까 ‘안 온다’며 ‘만난 지가 오래되었다’고만 했지 다른 이야기는 들은 게 없다고 해서 살면서 싸울 때가 있으니까 그런 것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이씨가 장례식장에 안 갔는데도 이혼 사실을 몰랐나요?
“불화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아들이 죽기 직전 기도원에서 생활했는데 며느리가 한번 찾아왔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만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무척 반가워했어요. 그래서 둘이 만났는데 며느리가 잠깐 있다가 일어서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자.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 하룻밤만 같이 있어주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야속하게 그냥 가더라고요.”
아이를 숨긴 게 아니라 며느리가 아이 보러 안 온 것



-95년 이씨가 귀국해 아이를 키우겠다고 했는데 아이를 못 만나게 했다고 하는데요?
“며느리가 생활기반을 잡아 부양능력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때까지 우리가 키우기로 합의를 했어요. 우린 아이와 며느리를 못 만나게 하려고 이사를 하거나 전화번호를 바꾼 적이 없어요.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면 되었어요. 그런데 며느리는 연락 한번 안 했어요.”
-이씨는 시집 쪽에서 ‘내 핏줄이니까 내가 키우겠다’ ‘네가 재혼하면 아이는 어떻게 되냐’며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 아이 혼자 너무 힘들고 외롭겠다고 생각했어요. 중학생이 되면 혼자 있어도 되겠다 싶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우리가 키우겠다고 한 거지 내 핏줄이라거나, 재혼 이야기는 한 적도 없어요.”

아들 존재 뒤늦게 밝혀진 벤처 갑부 이수영 VS 전 시아버지 임씨 팽팽한 공방

오는 10월 결혼식을 올리는 이수영 정병진.


-아이에게 엄마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고모를 엄마라고 부르게 하는 등 이씨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아이도 친엄마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어요. 고모를 엄마라고 부르게 한 것은 부모 없이 자라야 하는 어린 아이의 정서를 고려한 것이었어요. 집에서 엄마라고 부를 존재가 없을 때 느끼는 상실감을 손자가 겪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며느리가 왔을 때 아이가 자기 존재를 몰랐다는 건 자기 느낌이었을 거예요. 몇 년씩 떨어져 있었으니 서먹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이유를 이수영씨에게 설명해주었나요?
“했을 거예요. 이제 와서 그걸 문제삼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아이를 위해 한 일인데 우리가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되어 황당할 뿐이에요.”
-99년 아이를 보냈다가 1년 만에 다시 양육권을 뺏어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이가 사춘기가 되니까 엄마를 찾는 것 같아 우리가 며느리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1년쯤 지나 아이가 가방을 메고 왔더라고요. 무슨 만화를 보다 야단을 맞았대요. 아무리 타일러도 아이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고, 며느리는 ‘아이를 감싸고 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과하고 앞으로 인연을 끊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데려가겠다’고 하더라고요. 한달 동안 아이를 데려가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이 없어서 전학을 시킨 거예요. 당시 아이는 이모는 만나도 엄마에겐 연락을 안 했어요. 2001년 겨울엔 이모부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받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엄마와 아이가 만나는 걸 차단시켰다니 말이 안 되죠.”
-왜 이씨가 당신을 안 만나려고 하는 것 같나요?
“모르겠어요. 왜 자꾸 이상한 쪽으로만 생각을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어요. 자기가 섭섭하게 느꼈는지는 몰라도 우린 섭섭하게 한 적이 없어요. 살다보면 남편이랑 안 좋을 수도 있고 시집이랑 안 좋을 수도 있죠. 하지만 자식에 대한 일이니까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언론 보도 후 아이가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파
-아이를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사춘기라서 감수성이 예민해요. 특히 이번 일로 충격을 받았는지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많이 아팠어요. 아이가 지갑에 엄마 사진을 넣고 다니는 것을 보고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아이는 지금도 엄마가 ‘너는 어디서 살든 나랑 같이 살아’라고 한 말을 잊지 않고 있어요. 지금도 엄마를 그리워해요. 전 이제 늙었어요. 아이를 엄마에게 보내야 하는데 엄마가 직접 와서 데리고 가는 것이 모양새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당부 말도 있고 해서 한번쯤은 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씨가 직접 와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면 보낼 건가요?
“이야기를 듣고 타당성이 있으면 당연히 보내야죠. 타당성이란 엄마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한다는 것과 아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말해요.”
-왜 이수영씨가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 건가요?
“신문에 ‘처녀사업가’라는 말이 연이어 나왔어요. 며느리가 결혼을 안 했다면 아이는 사생아란 말인가요? 며느리가 한번이라도 ‘본의 아니게 그런 기사가 나갔다’는 말만 했어도, ‘그동안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을 텐데 앞으론 내가 키우겠다’는 말만 했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자고 해도 아무 응답도 없고, 계속 거짓말을 하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죠.”
-돈을 요구했다고 하는데요?
“제가 4월10일자로 보낸 편지에 처음으로 양육비, 처녀 행세를 해서 아이를 사생아로 만드는 등 우리 가족에게 정신적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구했어요. 그건 돈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어요. 진심 어린 사죄와 함께 그동안 처녀라고 게재되었거나 방송된 매체들을 통해 재발방지 약속을 하면 되는 거예요.”
-앞으로도 돈을 요구하지 않을 건가요?
“여기가 법정은 아니잖아요. 여기서 말할 사안은 아닌 것 같군요. 그 부분은 노코멘트예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며느리의 상처가 제 상처고, 제 상처가 며느리의 상처예요. 이로 인해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이 바로 손자예요. 빨리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양쪽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 진위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 예민한 사춘기에 놓인 열일곱 소년이 밝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돌보는 일일 것이다.

여성동아 2004년 7월 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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