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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부부

국내 첫 부부 국회의원 된 최규성·이경숙

“아내가 일 때문에 외박하는 경우 많았지만 한번도 타박하거나 불평 늘어놓은 적이 없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김순희

2004. 05. 10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첫 부부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열린우리당 최규성·이경숙 당선자가 그 주인공. 당선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두 사람에게 ‘특별한’ 결혼생활과 선거운동에 얽힌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국내 첫 부부 국회의원 된 최규성·이경숙

부부 출마로 관심을 모았던 열린우리당의 최규성(54·전북 김제·완주)·이경숙(51·비례대표 5번) 후보가 지난 4·15 총선에서 모두 당선돼 헌정 사상 첫 부부 국회의원이 되었다. 부인 이경숙씨는 비례대표 5번으로 일찌감치 당선이 확정된 상태였고, 남편 최규성씨는 전북 김제·완주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의 영예를 안은 것.
“출구조사가 53% 나온 것을 보고 집사람한테 제일 먼저 전화했어요. ‘고생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당선 순간을 아내와 함께 하지는 못했어요. 아내가 서울에 있었거든요. 다른 후보들은 부인과 함께 선거운동을 했지만 제 처는 다른 후보들을 도우느라 절 도와준 시간은 얼마 안됐어요. 선거운동 기간에 상대 후보들이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에 든 아내를 염두에 두고 ‘부부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유권자를 설득하려 했지만 ‘하나보다는 둘이 좋듯 우리 부부가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하겠다’는 제 손을 들어준 것 같아요.”
이경숙씨도 “선거운동 기간에 중앙당 관계자들과 함께 부산·대구 등 전국을 도느라 정작 남편의 선거운동은 나흘밖에 돕지 못했다”며 미안해한다. 애초 전북 김제·완주 지역구는 열린우리당이 경합지역구로 분류해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상태. 하지만 최 당선자는 51.0%의 득표율로 민주당 오홍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70년대 신랑 신부가 ‘동시 입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김제 출신인 최규성 당선자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69년 3선 개헌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인물. 민청학련 사건과 인천 5·3사태 등에 연류돼 수배되기도 했다. 이경숙 당선자는 여성민우회 및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방송위원 등을 지낸 여성운동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을 거쳐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노동운동을 벌여왔다. 그런 두 사람은 지난 78년 남편 최 당선자의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소개받은 지 1년여 만에 결혼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냐고요? 그러진 않았어요(웃음). 두 사람 다 나이가 든 상태에서 만났기 때문에 감성보다는 이성이 판단의 근거가 됐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남편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이 당선자가 말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란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 그는 “결혼 전에 한 약속 중에 안 지킨 것도 물론 있죠. 반찬을 잘 한다고 은근히 (반찬을 만들어줄 것처럼) 얘기했는데 잘 안하더라고요(웃음). 남편과 가사분담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폭넓은 이해와 전폭적인 지지, 그리고 마음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만큼은 어기지 않았어요” 하고 말한다.
국내 첫 부부 국회의원 된 최규성·이경숙

당선 직후 지구당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는 최규성씨.


두 사람의 결혼식도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79년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치러진 결혼식에 신랑 신부가 동시 입장을 했던 것.
“아내가 먼저 ‘결혼식장에 함께 입장을 하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두말없이 그러자고 했죠. 요즘에야 그렇게 치러지는 결혼식이 많지만 당시 우리의 결혼식은 언론에 소개될 정도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죠. 나중에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의아해했다고 하더라고요.”
결혼식장에서 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을 건네면, 사위는 장인에게 꾸벅 절한 뒤 신부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 당선자. “남들은 그게 뭐 별일이냐고 할지 몰라도 저에게는 ‘별 일’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아버지의 품에서 자라다가 결혼과 동시에 남편에게 맡겨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거죠. 결혼이라는 게 남녀간의 종속관계는 아니잖아요.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도 제 눈에는 불평등하게 보였던 거죠” 하며 “어쩌면 난 여성운동을 할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국내 첫 부부 국회의원 된 최규성·이경숙

최규성·이경숙 부부는 둘 다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했다. 치밀하지 못한 편인 최 당선자와 일처리가 꼼꼼한 이 당선자는 서로 다른 성격을 ‘마찰’보다는 ‘상호보완’으로 현명하게 풀어나갔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결혼생활에서 추구하는 ‘행복의 조건’이 서로 동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삶을 사는 것보다 각자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한 거죠. 자기가 세운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해요. 아내가 일 때문에 외박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것을 가지고 타박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진 않았어요. 아내를 존중하고 그 삶을 인정하기 때문이었죠.”

당내 서열은 아내가 남편보다 높아
현재 대학 4학년(아들), 3학년(딸)에 재학중인 남매를 두고 있는 최 당선자 부부의 자녀교육관은 ‘자유방임형’. 대학 진학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대학 선택권도 자녀에게 주었다.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잖아요. 성장과정에서 자율권을 키워주고 길러 주는데 역점을 뒀어요. 부모로서 조언은 했지만 모든 선택권과 그것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을 가르친 거죠. 두 아이들 다 큰 문제없이 자란 것 같아요.”
이씨의 교육관도 남편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남편과 달리 성적이나 다른 현실적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고.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유심히 살펴보니 책상에 앉아 있지를 못하더라고요. 책상에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재미있는 책을 사주고 책상에 앉아서 책읽는 훈련을 시켰죠. 그리고 학원에 보내는 대신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들과 품앗이 과외를 시작했어요. 저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수학을 가르쳤고 다른 엄마들이 여러 과목을 나눠맡았죠. 그렇게 3, 4개월 공부를 가르쳤더니 책상에 앉는 습관도 길러지고 공부하는 요령도 터득하더라고요. 품앗이 과외가 아이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공동의장을 맡기도 한 이 당선자의 현재 직책은 ‘상임고문’. 남편 최 당선자보다 당내 서열이 더 높다. 이에 대해 최 당선자는 “아내가 당의 주요간부라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상대방 후보는 ‘남편보다 아내가 더 똑똑하지 않냐’면서 ‘한 사람(아내)만 국회에 보내자’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낙후된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아내의 힘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하고 주장했죠. 아내와는 동업자라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상생적 경쟁자로서 의정활동에 임하려고 해요” 하고 말한다.
두 사람은 의정활동을 하는 데도 결혼생활처럼 ‘상호보완’을 통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해나갈 생각이라고 한다.
“사업경험이 있는 남편이 경제문제를 잘 파악하니까 경제분야를 맡고,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전문가니까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앞장서야죠. 서로 모르는 부분은 도와가면서 역할분담을 할 겁니다. 같은 당에서 정치를 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정책을 입안하는데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요.”
이경숙 당선자는 “첫 부부 국회의원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지만 여성운동을 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정치개혁에도 앞장서겠다”며 “공과 사는 분명히 구별해야 하니까 집에서는 남편을 ‘여보’라고 부르겠지만 당과 국회에서 만났을 때는 ‘최의원님’하고 부를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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