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peace #korea

평양에 아이돌을 허하라

EDITOR 정희순

2018. 05. 08

북한 방송에선 레드벨벳이 ‘통편집’ 됐지만, 누구도 상상 못했던 평양의 변화였다.

WHY

지난 4월 1일과 3일 평양에서 열린 공연의 정식 명칭은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단독 공연은 남북 관계의 역사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미에서 ‘봄이 온다’는 부제가 붙었고, 3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합동 공연에는 ‘우리는 하나’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번 평양 공연은 앞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기간 강릉과 서울 등지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에 대한 답방이자, 오는 4월 27일 열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사전 행사로 마련됐다.

LINE UP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은 가수 윤상이 음악감독을 맡고 조용필,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백지영, 정인, 소녀시대 서현, 알리, 강산에, 김광민, 레드벨벳이 참여했다. 앞서 통일부는 가수 윤상을 음악감독으로 발탁한 이유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적 자질’을 꼽았다. 예술단에 포함된 가수 중 조용필과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등은 이미 평양 공연 경험이 있다. 조용필은 지난 2005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단독 공연을 열었고, 이선희도 2003년 같은 곳에서 열린 통일음악회 무대에 올랐다. 북한 예술단이 지난 2월 서울과 평창 공연에서 부른 곡도 이선희의 ‘J에게’였다. 최진희는 이번 방북이 벌써 다섯 번째다. 윤도현도 역시 지난 2002년 ‘MBC 평양 특별공연’에 참여해 ‘오! 필승 코리아’를 개사한 ‘오! 통일 코리아’를 불렀다. 행사 사회는 그룹 소녀시대 출신 서현이 북한 아나운서 최효성과 공동으로 맡았다. 앞서 서현은 지난 2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 깜짝 등장해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걸 그룹 레드벨벳의 참가는 단연 화제였다. 북한에서 한국 대중문화는 ‘남조선 날라리풍’이라며 시청은 물론이고 언급 자체가 금지돼 있기 때문. 하지만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이미 레드벨벳의 인지도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작년 방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북한에서도 암암리에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레드벨벳은 이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했었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당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한 북한 선수가 2015년 발표된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흥얼거린 것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PLAYLIST

지난 4월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단독 공연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참석해 관람 도중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공연 후 출연진을 불러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지난 4월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단독 공연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참석해 관람 도중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공연 후 출연진을 불러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북측의 요청으로 선곡한 곡은 조용필이 부른 ‘그 겨울의 찻집’과 최진희가 부른 ‘뒤늦은 후회’라고 한다. 두 곡 모두 김정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전 위원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져 있다. 최진희는 공연 다음 날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를 하면서 ‘그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고 말하더라. 왜 나더러 ‘뒤늦은 후회’를 부르라고 했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관객석에서 두 번이나 함성이 터진 곡은 이선희의 ‘J에게’였다. 지난 2월 강릉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 당시 북한 가수 김옥주가 선곡한 것도 이 곡이었다. 이번 평양 공연에서는 김옥주와 이선희가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백지영이 부른 ‘총 맞은 것처럼’과 ‘잊지 말아요’도 화제였다. 두 곡은 북한에서 한국 대중가요 중 최고 인기곡으로 손꼽힌다. 예술단을 이끌고 평양에 다녀온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백지영 씨에 대해 ‘어느 정도 레벨의 가수냐, 저 노래는 최근 노래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레드벨벳은 자신들의 히트곡 ‘빨간 맛’을 불렀다. 다만 총을 쏘는 듯한 안무는 손가락을 이용해 가볍게 관객을 가리키는 듯한 안무로 바뀌었다.

REACTION

지난 4월 1일부터 3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포착된 북한 여성들. 하이힐과 미니스커트 등 과거에 비해 세련된 헤어와 패션 스타일이 눈길을 끈다.

지난 4월 1일부터 3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포착된 북한 여성들. 하이힐과 미니스커트 등 과거에 비해 세련된 헤어와 패션 스타일이 눈길을 끈다.

첫날 공연을 관람한 김정은 위원장은 남한의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해당 가수의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가 하면, 곡이 언제 나왔는지, 편곡은 어떻게 한 것인지, 무대 연출은 어떻게 했는지 등을 상세하게 물어본 것으로 전해진다. 도종환 장관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와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윤도현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를 때 ‘남자는 다 그래’ 하는 대목에서 공감하는 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가을에는 ‘가을이 왔다’라는 공연을 서울에서 하자”고 말했다는 비화도 밝혔다. 

객석의 반응은 조금 어색했다. 따라 불러달라는 요청에도 박수만 칠 뿐 노래를 따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탈북민 출신인 주성하 동아일보 북한전문기자는 “이번에 한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보며 난 평양이 또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공연장의 평양 시민들은 김정은 앞에서 노래에 맞춰 손도 흔들고 소리도 질렀다. 김정은이 직접 ‘우리 인민들이 남측의 대중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고 진심으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면, 이건 대단한 파격”이라고 평했다. 



남한에선 지상파 방송 3사가 공연을 녹화로 중계해 합계 시청률이 36.6%에 이르는 등 뜨거운 관심을 모았으나, 북한은 아주 일부만을 공개했다. 이선희의 ‘J에게’ 외엔 우리 가수들의 이름이나 노래, 무대 인사 등을 모두 무음으로 처리했고, 레드벨벳의 공연은 아예 통편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영상은 북한에서 USB를 통해 ‘은밀히’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디자인 박경옥
사진 뉴스1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