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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서울대 특강에서 털어놓은 취임 6개월 맞은 심경

“남편과 이혼했을 때, 법무부장관직을 제안받았을 때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2003. 10. 10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란 점 때문에 취임 초부터 끊임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강금실 장관이 취임 6개월을 맞은 심경과 개인적인 고뇌를 털어놓았다. 모교인 서울대를 찾아 후배들에게 들려준 학창시절 추억 & 이혼의 시련을 극복하기까지.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서울대 특강에서 털어놓은 취임 6개월 맞은 심경

지난 2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강금실 법무부장관(46)이다. 헌정 사상 최초의 ‘비 검사 출신’ ‘여성’ 법무장관으로 임명돼 화제를 모았던 강장관은 처음엔 검찰조직 내부의 반발과 언론의 집중 공격으로 조기낙마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 각 언론사와 시민단체에서 발표한 장관들의 성적표를 보면 강장관은 가장 뛰어난 업무수행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한국리더십센터에서 전문가와 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강장관이 가장 리더십 있고 신뢰받는 관료로 꼽혔다. 그는 업무수행 능력 이외에도 작고 여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자신의 소신을 옹골차게 밝히는 당당함과, 검찰과의 갈등을 검찰총장 등 수뇌부와 보신탕집에서 폭탄주를 돌리며 푸는 화끈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높은 인기는 지난 9월15일 열린 서울대 법대 초청 특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현직 장관이 학내 행사에 참석하면 흔히 야유와 함께 시위가 벌어졌던 것과는 달리 2백50석 규모의 백주년기념관 대형 강의실은 강의 시작 1시간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서울대 법대 학생뿐 아니라 청강생까지 4백명이 훨씬 넘게 몰려 계단은 물론 복도와 문밖까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또한 방송사와 신문사 등 20개가 넘는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서울대 특강에서 털어놓은 취임 6개월 맞은 심경

강금실 장관이 서울대 법대 초청 특별강연을 한 강의실은 4백명이 넘는 청중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거의 30년 만에 처음 모교를 찾았는데, 이렇게 후배들과 교수님들이 따뜻하게 환영을 해주니까 ‘돌아온 탕아’가 된 것 같다”며 운을 뗀 강장관은 대학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인생에 대한 조언과 함께 법무부장관 취임 6개월을 맞은 소회,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특강은 강장관의 인사말에 이어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식으로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는데, 30여 차례에 걸쳐 웃음과 함께 박수갈채가 터지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특히 사회자인 안경환 법대 학장이 “내게 꿈이 있다면…” 하고 운을 뗀 뒤 “강장관이 장관직을 그만두면 법대학장으로 모시고 싶다”고 하자 “난 또, 장관직을 그만두면 데이트 한번 하자는 줄 알았는데…” 하고 조크를 던지는가 하면, 취재기자가 최근 강장관과 검찰조직 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감찰권 이관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이래서 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았어야 하는데” 하며 웃는 등 특유의 유머로 청중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 추석 연휴 때 보고전화 한통 받지 않고 5일 동안 온전한 휴식을 취했어요. 여름 휴가 때도 제대로 쉬지 못했거든요. 연휴가 끝나고 오늘 첫 출근을 했는데, 마치 장관 1학기 수습 과정이 끝나고 2학기 첫날을 맞는 기분이에요” 하며 법무부장관으로서 6개월을 보낸 소회를 밝힌 그는 그동안 장관으로서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서울대 특강에서 털어놓은 취임 6개월 맞은 심경

강장관은 최근 가장 리더십있는 관료로 꼽히기도 했다.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권력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해 거꾸로 된 생각을 갖기 쉽다는 것이었어요. 권력이란 국민이 낸 세금을 잘 분배하라며 맡긴 것인데 마치 권력이 처음부터 자기 것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권력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런 착각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는 “검사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조직을 총괄하는 법무장관으로서 애로점이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검찰 내부의 관행이 있기 때문에 애로 사항이 있지만 검찰조직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 들어가서 ‘이런 건 고치는 게 좋지 않아요?’ 하면 ‘고치면 큰일난다’고 하는 게 많았어요. 심지어 소파 하나 바꾸자고 해도 큰일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바꾸면 ‘어? 바꾸니까 괜찮네요’ 하는 거예요(웃음). 그런 면에선 외부인이 들어오는 게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사법시험 준비할 때 연애하며 틈틈이 공부

학생들은 한총련문제, 국가보안법문제, 세계화문제 등 국정현안에 대한 예리한 질문들도 던졌지만 ‘인간 강금실’에 대한 질문들도 많이 했다.
법조인이 되기 전에 가졌던 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솔직히 어렸을 때 뭘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해 생각난 게 없어서 현모양처라고 했다가 핀잔을 들은 적이 있어요. 대학에 입학해서도 ‘이것이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을 갖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안하고 방황을 했던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종교와 인문학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방향을 잡지 못하다 결국 법대를 선택했어요. 그러면서도 법관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희망은 없었어요. 여러분들은 저를 닮지 마세요. 저는 지금도 구체적인 희망이 없어요(웃음).”
그는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놀았던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1학년 때는 춤을 추고 싶어서 탈춤반에 들어가 활동을 했고, 2학년 1학기 때는 강령탈춤을 배우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데모를 하느라 바빴다고 고백했다.
“사법시험 준비기간은 창피해서 밝힐 수가 없는데, 그때 연애를 해서 (남자친구와) 항상 같이 다녔어요. 같이 다니는 틈틈이 사시 공부를 했죠(웃음).”
인생의 시련을 묻는 질문에서는 이혼 등 아픈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굉장히 어려웠던 시련이 여러 번 있었어요. 너무너무 힘들었던 것은 최근 몇년 동안 빚이 무척 많았고, 이혼도 겪었어요. ‘이 사람과는 영원히 사랑하고 당연히 항상 같이 있을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깨졌을 때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짐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어요. 그리고 법무부장관직을 제안받고 ‘할 것이냐, 안할 것이냐’ 고민할 때도 무척 힘들었어요. 그때는 정말 절벽을 뛰어내리는 느낌이었어요. 법무부장관을 한다는 게 큰 보람이 있는 일이지만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극복하기 어려운 삶의 고통은 물론 고통을 이겨야 한다는 마음 자체를 버릴 때,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여성이기에 여성 관련 질문도 나왔다. 여성 법률가로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여성 법조인이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은 과도기로 현재 호주제 폐지가 이슈가 되고,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이 60%에 이르는 등 여성은 사회적 약자”라며 “여성 법률가는 여성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당사자인 여성들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남성과 공존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여성의 관점을 버리고 인간의 관점을 갖고 상대를 포용하고 동료로서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서울대 특강에서 털어놓은 취임 6개월 맞은 심경

학생들의 사인 공세에 즐겁게 응해주는 강장관.


이날 학생들은 “최초의 서울 법대 출신이자 여성 대통령이 되기 위해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없느냐”는 의외의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의 대답 여부에 따라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아까 말했듯이 저는 구체적인 희망이 없어요(웃음). 유감스럽게도 저는 장관이 된 것도 되겠다고 노력하고 훈련을 쌓은 것이 아니라 노대통령이 굉장히 취약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장관에 임명되기 전에 제가 장관이 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지금 제 머릿속엔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그는 곧이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남편을 떠나보낸 후 했던 명대사 ‘Tomorrow is another day(내일은 또 다른 해가 뜬다)’를 인용, 대통령 출마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참여정부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법치주의로 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줬으면…”

그는 최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참여정부가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는 법치주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가 들어서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법무부가 법을 지키는 부서임에도 이런 모습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고, 사회적으로도 법치주의가 아직 정립이 안되어 있어요. 참여정부는 현재 법치주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이에요. 모든 정부 부서가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정착해가는 중이에요. 그게 이전의 정부와 다른 점이죠. 다만 각종 파업이나 여러가지 문제로 혼란스러운 점도 있지만 그건 지금까지 법치주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날 강장관은 흰색 블라우스에 감색 재킷과 바지 정장 차림의 보이시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려는 듯 금색 띠 장식의 검은 구두와 은색 귀고리, 작은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멋을 냈다. 또한 직접 자주색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인상적이었다.
특강이 끝난 후 휴대폰 카메라 등으로 기념촬영을 하거나 사인을 받으려고 몰려든 학생들로 인해 강장관은 한동안 강의실을 떠나지 못했다. 그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는 학생들은 강의실을 나와 법정대학장실에 들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강장관은 싫은 기색 없이 “반갑습니다” 하며 일일이 악수를 하고 사인을 하는 성의를 보였다.
한편,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히는 옹골찬 모습을 보이던 그가 자신을 마중나온 대학 은사 최송화 교수 앞에선 공손하게 두손을 모으고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모습을 보며 왜 그가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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