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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현장

도올 김용옥과 가수 장나라의 이색 강의 현장 지상중계

노자 도덕경 강의에 비눗방울과 화려한 조명, 애창곡 퍼레이드까지…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3. 10. 10

문화일보에 평기자로 입사해 화제를 뿌렸다가 돌연 사직한 도올 김용옥이 강단으로 돌아왔다. 중앙대학교 석좌교수로 임용돼 이번 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한 것. 평소 기인적 행보를 보여온 그답게 강의 또한 파격, 그 자체였다. 가수 장나라와 현대아산의 김윤규 사장이 특별 초대돼 펼쳐진 ‘엔터테인먼트형 강의’ 현장을 중계한다.

도올 김용옥과 가수 장나라의 이색 강의 현장 지상중계

지난 9월15일 오후 2시,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은 술렁이고 있었다. 콘서트장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무대, 그리고 ‘도올@나라’라고 씌어 있는 커다란 풍선이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5백석에 이르는 대강당의 좌석을 채우고도 모자라 통로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은 수강생들은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수십명의 기자가 취재 경쟁을 벌이는 풍경은 강의실이라기보다 공연장의 모습이었다.
‘역사와 인간’이란 이름을 내걸고 시작된 도올 김용옥(54)의 강의는 교양선택 과목으로 수강신청 이틀 만에 정원 5백명이 채워졌다. 특히 15일의 두번째 강의는 인기 가수이자 탤런트인 장나라가 출연하는 ‘기념비적 공연’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터여서 중앙대 학생들말고도 일반 시민까지 몰려드는 등 그 관심이 더했다.
예의 그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나타나 마이크를 잡은 도올은 첫마디는 껌을 씹고 있던 학생에 대한 주의. 다소 소란스럽던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선생님의 ‘지적’에 잡담을 멈추었다.
“오늘 장나라양을 초대한다니까 많이들 모인 모양인데, 그를 부른 것은 무슨 쇼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이른바 ‘한류열풍’이라는 것이 나가야 할 바를 진단해보자는 것이에요.”
갑자기 터지는 고음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특유의 방식 대신 오히려 “조명이 너무 눈부시니 좀 낮춥시다”하며 ‘점잖은’ 모습을 보인 그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가 높아지고 특유의 ‘궤변’을 쏟아냈다.

김윤규 사장 ‘윙크 버릇’과 현대와의 인연 밝혀
도올 김용옥과 가수 장나라의 이색 강의 현장 지상중계

강의 초 그는 ‘깜짝 손님’을 무대에 불렀다. 바로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회장이 남긴 유서 중 ‘당신 윙크하는 버릇 고치세요’라는 문구 때문에 화제가 됐던 그가 무대에 오르자 학생들은 강당이 떠나갈 듯한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강의는 자연스럽게 김사장과 대화를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김용옥(이하 도올) 아니, 나보다 더 인기가 좋으시네. 이렇게 김사장님이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은 줄은 몰랐네.
김윤규(이하 김) 제가 잘생겨서 그런 게 아니고, 윙크를 잘해서 그런 거예요.(학생들 웃음과 함성)
도올 여러분 김사장님이 왜 윙크를 잘하는 줄은 다 아나요? 이 양반이 말이야, 리비아에 갔을 때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했어요. 다행히 올리브나무숲으로 떨어졌는데 그때 입은 부상이 다 낫지 않아 윙크를 잘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 말이야, 돌아가신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 양반만 항상 데리고 다니는 거야. 왜냐면 이 양반만 데리고 다니면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나더라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거고…. 제 말이 맞죠?
정주영 회장님과 이야기를 하셨어요?(학생들 웃음) 현대건설에 입사해 건설일꾼으로 일하며 외국에 갈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비행기 조종사들은 대부분 공군 출신이라 용감합니다. 리비아에 갔을때도 안개가 끼여 도저히 내릴 수 없다는 관제탑의 지시가 있었는데, 조종사가 “여기 지형을 잘 아니까 내릴 수 있다”고 고집한 거죠. 서양 사람들 같았으면 절대 못 내린다고 착륙을 허가하지 않았을 텐데 중동 사람들은 “마음대로 해라” 한 거죠. 그런데 내린다는 것이 그만 활주로에서 1㎞ 밖에 내린 거예요. 건물에 부딪치고 사람이 여럿 죽었습니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늘 그때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도올 김용옥과 가수 장나라의 이색 강의 현장 지상중계

도올과 전화통화중 우연히 강의 참석 제의를 받았다는 김윤규 사장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학생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


도올 정주영 회장과의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다고 하던데….

70년대 미포만에 조선소를 지을 때 일입니다. 그때 미포만을 찍은 흑백사진 한장 달랑 들고 영국의 버클리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주면 여기다 조선소를 지어 배를 만들어 팔아서 갚을 테니 돈 좀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날도둑놈이었죠. 그때 제가 같이 갔습니다. 통역을 하러 갔는데, 제가 영어를 잘한다기보다는 잘하는 척합니다. 정회장님이 잘 아시는 단어를 쓰면 되거든요. 그런데 은행장이 “배를 하나 계약해오라”는 재미난 제의를 하더군요. 그런데 그걸 어디서 계약을 합니까? 조선소도 없는데…. 그때 그리스의 한 사업가를 찾아가 연기를 했죠. “우리가 이런 상황인데, 은행에서 너만 설득하면 돈을 빌려준다고 하더라”며 상대방을 띄워주었죠. 며칠을 고민하더니 계약을 하더군요. 그러고는 다시 돌아와 영국에서 머물렀는데, 어느날 회장님이 옥스퍼드대학의 잔디를 구경가자고 하시더군요. 세계 곳곳을 다녀도 외출하는 법이 없는 분인데 웬일인가 싶었죠. 그런데 가서 5분도 안돼 “다 봤다. 가자”고 하시더군요. 다음날 은행에 갔는데 은행장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요?” 하고 묻더군요. 전 당황해서 잠자코 있는데 회장님이 “야, 경제학 박사라고 그래” 하시더군요. 그랬더니 은행장이 “어디서 학위를 받았느냐”고 또 물어요. 회장님이 “옥스퍼드라 그래” 하는 거예요. “언제?” 하는 물음에 “어제” 하고 대답하시더군요. 어제 옥스퍼드 잔디밭 위에서 자신의 사업구상을 밝혔더니 박사학위를 주더라는 것이었죠. 그때 돈을 빌려 지금 울산의 현대조선소를 만든 것입니다.



이외에도 김사장은 도올의 질문에 응해 남북경협 등을 둘러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일화, 현재 현대아산이 진행하고 있는 국민공모주 사업 등을 풀어놨다. 대화 도중, 도올이 요구한 ‘10만원 이하의 비용으로 수강생과 함께하는 금강산 MT’에 동의하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편 김사장은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에 대한 질문에는 “이제는 눈물을 닦아야겠다. 정회장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해야겠고 더는 울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또 유서에 적힌 ‘윙크하는 버릇 고치세요’라는 문구와 관련, “정회장의 애정 어린 말과, 남북경협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눈 수술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류열풍’ 주역 장나라 댄스곡 열창
도올 김용옥과 가수 장나라의 이색 강의 현장 지상중계

이날 강의에는 가수 장나라와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이 ‘깜짝’ 출연했다.


강의 중반, 흰 바지에 빨간 셔츠를 입은 가수 장나라가 자신의 히트곡 ‘Sweet Dream’을 부르며 무대에 나타났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연기전공 과정에 있는 장나라의 이날 등장은 ‘21세기형 첨단 강의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도올의 초대에 따른 것.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자신까지 중앙대 동문인 그는 현대를 대중문화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강의를 한다는 도올의 뜻에 찬성,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고 한다. 장나라의 노래에 이어 도올도 자신의 애창곡인 ‘My Way’를 불렀다.

도올 이 얼마나 좋습니까? 대학 강단에서도 대중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대기업 사장이 자신의 속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 이게 진정한 쇼 아닙니까? 미국 ‘뉴스위크’ 최신호를 보니까 전세계 대학들이 시들어가는 상황에서 유독 미국 대학만 장사가 잘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유학을 많이 가기 때문이래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미국에 안 가고 우리 강의에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장사가 되는 강의’를 할 작정입니다
장나라(이하 나라) 제겐 엄청난 영광이에요. 저같이 공부도 못하는 학생이 이렇게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기쁘네요. 노래를 하다 보면 어떤 분들은 팔짱을 끼고 앉아서 ‘그래,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분들이 계세요. 여기에 계신 분들은 모두 마음을 열고 계셔서 노래하는 저도 참 기뻐요.
도올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도 강의 때문에 무대에 많이 서는 사람인데, 여기저기서 강의 부탁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제 원칙이 하나 있어요. 전 공무원 대상 강의엔 절대 안 가요. 반드시 조는 사람이 나와요(학생들 웃음). 아무리 소리를 높이고 이야기해도 반드시 졸아요. 장관이 부르건 청와대가 부르건 절대 안 가요. 쇼가 됐든 강의가 됐든 소리명창보다 귀명창이 더 중요합니다. 항상 듣는 사람이 무대를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거죠. 아니, 제가 무슨 재주로 마음을 열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두세 시간을 떠들어요?

도올 김용옥과 가수 장나라의 이색 강의 현장 지상중계

최근 안티팬들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장나라는 도올의 강의 덕분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나라 어려운 자리에서 노래를 하거나 나이가 많으신 분들 앞에 서면 긴장할 때가 많아요. 노래를 그냥 노래로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너무 진지하게 탐색을 하시는 거예요. 그분들과 눈이 마주치면 스스로 긴장되고, 노래의 흥을 잃게 되죠. 그런데 선생님 노래 정말 잘하시네요. 이처럼 노래하면서 감정에 충실한 경우는 별로 못 봤어요.
도올 내가 노래를 하면 어떤 밴드는 지들 음악에 나를 맞추라고 해요. 그런데 나 같은 명가수가 노래를 하면 지들이 따라와야지. 나라양의 밴드는 100%로 따라오더라고. 아주 좋은 밴드와 일하는구먼(학생들 웃음). 나라양을 초대한 것은 단순히 쇼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우리가 대중문화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이상, 대중문화를 어떻게 보고 이해하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이를테면 영국은 엄청나게 보수적이고 전통이 지배하는 나라지만, 20세기를 지배한 록은 모두 영국에서 시작됐어요. 그런 맥락에서 최근 동아시아를 휩쓰는 한류열풍에 주목해야 해요. 이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동아시아의 허브, 소통의 복덕방이 될 수 있는 굉장한 자산이라는 것을 뜻하거든요.
나라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전 연예활동을 하다보니까 저를 좋아하는 팬들도 많지만 안티팬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런데 제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까 선생님도 안티팬들이 많더군요. 어떻게….
도올 아, 안티! 날 싫어하는 사람들 말하는 거죠. 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아요. 대한민국에 나처럼 욕 많이 먹는 사람 없어요. 내가 욕을 먹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나한테 저항을 느낀다는 것인데, 저항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열심히 살고 있고, 가진 것이 있다는 거죠. 나를 씹는 사람이 없으면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난 나를 씹는 사람들의 글을 보지 않아요. 왜? 아무리 씹어도 씹히지 않는 것이 나니까. 그런 거 다 신경 쓰면 주름살 생겨요. 봐요? 내 이마에 주름살이 있어? 누가 널 씹더라도 신경 쓰지 마!

‘이등병의 편지’ 부르다 군대 간 아들 생각에 눈물

이날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도올이 자신의 애창곡인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던 대목.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며 이 노래의 참맛을 알았다는 그는 노래에 얽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나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하는 대목이 가장 좋더라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 낳아서 굳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어요. 꽤 공부도 잘하고 나름대로 미국 사회의 엘리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군대라는 곳을 보내야겠더라고. 그래서 무조건 한국으로 불러 군대에 가라고 했죠. 이미 병무청장한테는 말해놓은 상태였고, 나중엔 훈련소장한테까지 꼭 전방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이 녀석이 50㎏ 행군을 하고 나서 편지에다 ‘훈련을 버틸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써서 보냈더군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이것보다 좋은 교육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아들 군대 보낸 아버지라 가끔 아들 생각이 나면 이 노래를 불러요.”
나중에 밝힌 바에 따르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또 아들 생각이 나 눈물이 찔끔 나오더라고.
화려한 공연 위주의 강의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눈치챈 탓인지 그는 강의 말미에 “다음주에는 노자 도덕경 제1장을 강의합니다. 강의가 대단히 엄밀하게 학술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므로 관련 책을 잘 읽고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며 강단에 선 교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이와 같은 강의를 진행할 것이라는 그는 국내 최초로 개설된 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에도 초빙교수로 임용돼 가을학기부터 ‘국악예술학’을 강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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