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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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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말기 아버지 치료비 마련 위해 일자리 찾아나섰다 돈 한푼 못 받고 윤락 강요당한 10대 자매의 기막힌 사연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최규정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3. 10. 02

간암에 걸린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나선 10대 자매가 악덕 다방업주에게 윤락행위를 강요당하고 지방의 티켓다방으로까지 팔려갔던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이같은 자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김씨가 끝내 숨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파렴치한 어른들에 의해 극진한 효심마저 산산조각 난 자매의 가슴 아픈 사연.

간암 말기 아버지 치료비 마련 위해 일자리 찾아나섰다 돈 한푼 못 받고 윤락 강요당한 10대 자매의 기막힌 사연

지난 9월18일 서울 구로경찰서는 미성년자인 김모양(19)과 동생(17)에게 윤락행위를 강요하고 협박한 혐의(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로 경기도 안산시 Y다방업주 서모씨(27)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티켓다방 운영에 관여한 업주의 아내 등 3명과 자매를 성매매한 40대 남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이들 자매의 비극은 2년전 아버지 김씨(49)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아버지가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오던 이들 식구에게 아버지의 발병은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었고, 누구보다 아버지를 따르던 자매는 결국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나서게 되었다. 먼저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언니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동생까지 학교를 중퇴하고 돈벌이에 나섰던 것. 그때 동생은 겨우 고등학교 1학년, 16세의 앳된 나이였다.
하지만 자매가 하루 종일 고생해서 번 돈은 한달에 50만원도 채 안될 정도로, 나날이 늘어가는 아버지의 치료비를 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어린 나이에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자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월수입 1백50만원 보장’이라는 다방의 홍보 스티커. 지난해 4월 자매는 더 많은 돈을 벌어 병원비에 보태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안산의 한 다방을 찾았다.
대부분의 소녀들이 그렇듯 자매 역시 청소를 하고 차를 나르는 종업원 일을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다방업주 서씨는 “남자손님을 상대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자매를 윤락의 길로 내몰았다. 그뿐 아니다. 티켓다방들의 교묘한 착취수단인 선불금과 벌금 등을 이용해 순식간에 자매를 빚더미에 앉게 했다.
업주는 일을 하기 위해 옷부터 사야 한다며 건네준 돈부터 지각하면 3만원, 결근하면 사정이 어떻든 30만원의 벌금을 꼬박꼬박 매겨갔다. 그 결과 두달 만에 차용증에 적힌 자매의 빚은 2백만원으로 불어났다. 이같은 차용증과 업주의 협박은 자매로서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다.
자매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후 업주는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조건으로 자매를 멀리 경북 구미의 티켓다방으로 팔아넘겼고, 이때부터 자매는 경북 일대의 다방 7군데를 전전해야 했다. 경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연루된 다방업주만도 총 15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자매는 업주에게 가불한 돈 2백만원을 집으로 보내는 등 아버지 치료비 마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1년4개월을 보낸 후 자매에게 돌아온 것은 6천여만원의 빚과 함께 상처 입은 몸과 마음뿐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자매는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취직한 건데 윤락까지 하게 될 줄을 정말 몰랐다. 월급은 한푼도 못 받았지만 보복이 무서워 신고도 할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돈 벌어 아버지 살리려 했는데…. 이제 어른들을 못 믿겠어요”

이같은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진 것은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난 8월말. 구미의 한 다방 업주가 걸어온 빚 독촉 전화를 받은 자매의 어머니와 고모가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지하고 슬쩍 자매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제야 그동안 자매가 당한 고통들을 알게 된 어머니와 고모는 억장이 무너졌다.
결국 일련의 사건으로 자신의 몸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자매의 어머니를 대신해 고모가 이 사실을 112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신고 당시 김양의 고모는 “아버지 병원비를 대겠다고 험한 일을 자청한 아이들에게 강제로 윤락을 강요한 업주들과 돈을 내고 어린 아이들을 농락한 남성들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용기를 냈다”고 했다고 한다.

간암 말기 아버지 치료비 마련 위해 일자리 찾아나섰다 돈 한푼 못 받고 윤락 강요당한 10대 자매의 기막힌 사연

그동안의 가혹한 경험 때문인지 자매는 처음엔 “이젠 경찰도 믿을 수 없다”며 조사에 비협조적일 정도로 어른들과 기성사회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해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음은 물론이다. 이후 수사에 최선을 다하는 담당 경찰관들의 모습에 자매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게 되었고, 확보된 다방업주와 남성들의 연락처를 중심으로 수사가 진행되었다. 기소하면서 검찰에 넘긴 1천여 페이지의 수사기록은 자매의 눈물어린 사연들을 낱낱이 담고 있다.
서너 차례씩 경찰서를 드나들며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뇌이는 중에도 다방으로 돌아오지 않는 자매를 협박하는 업주들의 전화는 그치지 않았다. 자매는 혹시라도 업주들이 신고 사실에 대해 눈치를 채지 않도록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 하는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이런 힘겨움 속에서도 자매가 가장 걱정한 것은 역시 아버지의 병환이었다. 조사중에도 아버지에 대한 걱정을 멈추지 않았고 언니와 동생이 번갈아가며 밤샘 간호를 했다.
하지만 자매들의 눈물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창 조사가 진행중이던 지난 9월8일 아버지 김씨는 눈을 감고 말았다. 담당 경찰관은 “당시 자매의 낙심이 너무나 커서 불가피하게 잠시 조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자매는 그나마 최근 핵심적인 가해자들이 대거 검거되면서 작은 위로를 받고 있다. 그들의 처벌로 자매의 아픈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을 괴롭히던 업주들과 어른들이 곧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자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치료제가 되기 때문이다.
구로경찰서 박채인 형사계장은 “아직까지 성매매 관련 사건은 신고나 제보를 받았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자매는 신고 당시부터 피해자임이 명확히 규정되어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도 수사는 종료되지 않았다. 최종판결이 나기까지 자매는 다시 검찰조사에 응해야 하며 여전히 다른 업주들의 협박전화가 계속돼 휴대전화 번호까지 바꾼 상태다. 가족들은 지금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고민할 정도다.
자매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동안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사건이 종료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멀어진다 해도 자매는 평생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이같이 엄청난 경험을 한 것을 보면서 한 어른으로서 마음이 아팠다”는 담당 경찰의 말처럼 이제는 사회와 어른들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매가 다시 학교에 가고, 예전처럼 밝은 눈으로 이 세상과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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