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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결혼식

프랑스인 사위 맞은 도올 김용옥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식 특강 지상중계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건네주는 구습은 소유 관계 이전을 뜻하는 것으로 없애야 해요”

■ 기획·이영래 기자 ■ 글·최건일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3. 07. 31

KBS ‘논어 강의’로 우리 사회에 동양학 열풍을 몰고 왔던 도올 김용옥이 드디어 사위를 맞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맏딸 승중씨가 같은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프랑스인 크리스티앙 메누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 도올은 주례사를 겸해 즉석 강연을 하는 등 이날 결혼식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프랑스인 사위 맞은 도올 김용옥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식 특강 지상중계

“고례(古禮)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상당히 오랜 시간 우리 학생들과 세미나해왔는데, 이것을 오늘날 21세기적으로 간단히 구현해보고자 합니다. 이 의식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보편화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고요.”
지난 7월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내스티홀. 동양학자이자 현 문화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도올 김용옥씨(55)의 맏딸 승중씨(29)와 프랑스인 크리스티앙 메누(30)의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속속 도착하는 내로라하는 국내외 유명인사들과 때론 영어로, 때론 우리말로 “댕큐” “감사합니다” 하며 웃음을 머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김씨의 표정에는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반면 절친한 지인들과 아무말 없이 오랜 시간 손을 잡고 있는 모습엔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아쉬움이 배어났다.
TV 강의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열적으로 강의하던 도올 선생과 현직 대통령에게 날카롭게 질문했던 문화일보 김용옥 기자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연신 미소 지으며 “좋은 날이니까”를 연발하는 저 사람이 과연 도올 김용옥인가 싶다.
같은 시각, 신부대기실에서는 이미 준비를 마친 신랑 크리스티앙 메누씨와 그의 부모가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전통의상을 입고 마지막 단장을 하는 신부 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랑도, 프랑스인 시부모도, 신부의 표정에도 백년가약을 맺는 긴장감보다는 재미난 결혼 이벤트라도 즐기는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신부 대기실보다는 출연자 대기실이랄까?
예식장의 자리가 거의 채워질 즈음 신부의 어머니 최영애씨는 남편 도올에게 먼저 무대에 올라가 하객들에게 인사하길 청했다.
“신부 아버지가 이렇게 떠들면 안되는데 이왕이면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결혼식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서게 됐습니다. 오늘의 예식이 우리 사회의 전범(典範)으로 보편화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외국인 사위에게 전통혼례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객들의 큰 박수소리와 함께 무대에 오른 도올은 어느새 신부 아버지라기보다는 명강사로 돌변해 특유의 몸짓을 곁들여 ‘도올의 결혼 특강’을 시작했다.
“요즘 우리가 따라 하고 있는 서양의 결혼식은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것을 하느님한테 인증받는 형태로 돼 있기 때문에 대개 주례나 사제가 저기 있고, 신랑신부는 교회의 성스러운 단을 마주 보고 서서 모든 것이 행해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전통결혼식이라고 하는 것은 신부집 마당에서 모든 사람들이 빙 둘러싸고 가운데 천막을 치고 간단한 예를 행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이 그 두 사람의 성혼을 공증해주는 형태지, 특별한 사람에게 그것을 인가받는 형식은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우리 전통결혼식의 의미를 분명히 되살려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이날 결혼식은 지난 2001년 5월 방송된 KBS ‘도올의 논어 이야기 62강’의 실습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실습생이 프랑스인 사위와 친딸인지라 평소 도올 특유의 걸쭉한 어휘들이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딸 결혼식 직접 사회 맡고 하객과 다같이 주례사 낭독

2년 전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던 도올은 “가장 웃기는 게 뭐냐면 결혼식을 하면 빰빠빠밤하고 들어가서 아버지가 딸을 신랑에게 건네주는 거야. 이건 소유구조를 인신매매하는 거야. 이제 이 여자는 남편 니거다 가져라, 이거야.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아주 잘못된 여성에 대한 학대적인 잔악한 유물이고 아주 죄스러운, 말도 안되는 결혼식 모습이지” 하고 열변을 토했지만, 이날은 “오늘날과 같은 민주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불쾌하다”고 완곡하게 표현했다.
병풍을 치고 대추 한 접시, 밤 한 접시, 그리고 술 한병이 놓인 간단한 혼례상이 차려지고 사회자인 도올의 개례(開禮) 선언으로 결혼식이 시작됐다. 결혼식 첫 무대는 한국종합예술대학 원일씨, 정재일씨의 피리와 기타연주. 두 사람의 연주는 전통혼례와 현대적 감각의 만남이라는 이날 결혼식의 의미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특히 긴 머리에 헐렁한 티셔츠, 통 넓은 청바지 그리고 끈이 풀어진 운동화를 신은 정재일씨의 복장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리고 도올의 사회로 결혼식이 시작됐다. 우선 양가 부모가 차례로 입장했다. 이어 신랑과 신부가 4명의 들러리와 함께 입장해 양가 부모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양가 부모는 무대 좌우에 마련된 자리로 내려가고 혼례상을 가운데 두고 신랑신부가 마주 섰다. 양옆에는 들러리가 2명씩 섰다. 이날 들러리는 신부의 동생 미루씨와 김정국 문화일보 사장의 세딸이 맡았다. 한국어로 진행된 이날 결혼식에서 도올은 신랑과 신랑 부모 그리고 외국인 하객들을 위해 간간이 절차와 의미를 영어로 통역하기도 했으며, 도올의 해설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예식이 멈춰지기도 했다.

프랑스인 사위 맞은 도올 김용옥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식 특강 지상중계

이날 결혼식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삶이 아닌, 빛나지 않으면서 소박한 삶을 살라는 의미로 금반지가 교환됐다.


첫 순서로 자신들을 성화시키고 혼례가 치러지는 자리를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손을 씻는 관세례(튰洗禮)가 진행됐다. 관세례 도중 신랑 크리스티앙 메누씨가 신부보다 먼저 손을 씻자, 사회자가 무효라며 동시에 다시 씻으라고 지시해 결혼식장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이어 신랑과 신부가 술을 반씩 나눠 마시는 수작례(酬酌禮)가 행해졌다. 수작례에 쓰인 술은 1949년 중국 소흥에서 99병만이 양조돼 50년 만에 개봉한 귀한 것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 결혼식을 위해 선사했다. 도올은 “이 술은 모택동도 못 마셔보고 돌아가셨다”며 진귀한 술임을 강조했다.

외국인 사위 맞는 걸 반대했으나 “지들이 좋은 걸 어찌하겠냐”며 허락
마지막으로 신랑과 신부가 모두 세 차례 맞절을 하는 교배례(交配禮)가 진행되는 동안 도올의 특강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폐백문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요즘 결혼식이 끝나면 ‘폐백을 드린다’고 하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앉아서 ‘아들 딸 많이 나라’ ‘밤 대추 만큼 많이 나라’ 합니다. 그러면서 밤과 대추를 던지지요? 이게 고례(古禮)의 의미에서 완전히 왜곡된 것입니다. 대추라고 하는 것은 한자로 조(棗)자입니다. 이게 일찍 조(早)와 의미가 통하는 것이고, 밤 율(栗)자는 전율(戰慄)할 때 율(慄)과 통하는 것으로 부지런하고 조심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실제 고례에 따르면 조선시대 혼례에서 폐백은 결혼 전에 남자가 여자 집에 비단을 예물로 보내는 것이고, 대추 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밤과 대추가 등장하는 것은 신부가 신랑집에서 첫날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시부모에게 첫 인사를 드리는 ‘현구고례’라는 예식에서다. 이때도 시부모가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신부가 시부모께 절을 하고 밤과 대추를 바치는 것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처럼 부지런하고 매사에 조심조심하면서 떠는 마음으로 지내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일배” “재배” “삼배” 교배례를 마치자 도올은 “고대의 결혼식이라는 것이 이렇게 간단한 겁니다” 하며 혼례의 끝을 알렸다. 도올의 해설시간을 빼면 10여분 안에 모든 의례를 마친 셈이다.
“이제 두 사람이 서양식으로 간단한 예물을 교환하는데 사실 우리 전통에도 결혼식하기 전에 양가 사이의 예물교환이 있었습니다. 오늘 예물은 한돈쭝짜리 금반지입니다.”
도올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삶을 살지 말고 금처럼 빛나지 않는, 소박한 삶을 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날 결혼식에서는 별도의 주례자 없이 도올의 선창으로 하객들이 모두 함께 주례사를 낭독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千命之謂性)”는 ‘중용’의 구절로 시작한 주례사는 “어느 곳에 살든지 그 땅을 정토(淨土)로 만드는 모범이 되라”는 덕담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열린 식후 행사는 그야말로 축제의 마당이었다. 주한 프랑스 대사 프랑수아 데쿠에트의 축사와 가수 조영남과 장사익의 축가,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연, 살풀이춤 등 여러 예술가들의 노래와 춤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특히 데쿠에트 대사는 “나와 같은 직업 외교관 수십명보다 이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날 2세가 최고의 외교관이 아닌가 한다”고 덕담을 풀어놓았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도올이 직접 가사를 쓴 판소리를 김진희씨가 열창했다.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애틋함과 훌륭하게 자라준 딸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판소리 가사는 하객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사실 외국인 사위를 맞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가 “지들이 좋다는게 어쩌겠어요?” 하며 딸의 결혼을 축복해주는 모습엔 자식에 대한 잔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인간이란 우주티끌 잠깐 살다 만다해도/ 인생길은 길고길어 홀로가기 어려워라/ 서로믿고 서로아껴 백년해로 바랄지니~”
승중씨와 크리스티앙 메누씨는 90년대 후반 각각 미국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만나 같은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사랑을 싹틔웠다고 한다. 신랑 아버지 크리스티용 메누씨는 주미 프랑스 대사관에서 재정담당 부대사로 일하고 있다.
이날 결혼식에는 이한동 전총리, 한인옥 여사, 임권택 감독, 현대아산 김운규 사장, 연극연출가 손진책씨, 박철언 전의원, 최장집 고려대 교수, 스위스 터키 온두라스 대사 등 각계 인사 6백여명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동아일보 인터넷 동아닷컴(www.donga.com)에서 결혼식 동영상과 주례사 전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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