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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의 선택

골재채취업체 사장에서 코믹 연기자로 변신한 원상연

■ 글·이영래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2003. 07. 09

지난 6월9일 첫 방송된 KBS 일일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탤런트 김영애가 운영하는 여성복 의상실의 디자이너로 출연해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원상연씨는 국내 도급순위 4위의 골재채취업체 사장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연기자로 변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원상연씨의 별난 끼, 별난 인생.

골재채취업체 사장에서 코믹 연기자로 변신한 원상연

‘끼’라는 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일까? 올해 나이 39세. 국내 도급순위 4위의 골재채취업체 대표가 돌연 탤런트 데뷔를 선언하고 나섰다. KBS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 출연하고 있는 원상연씨가 바로 그 주인공. ‘달려라 울엄마’는 김영애 서승현 이보희 등을 주축으로 평범한 아줌마들의 좌충우돌 생활기를 코믹터치로 그려낸 일일극. 그는 이 시트콤에서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잘난 척만 하는 교만한 패션 디자이너로 등장,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제가 초중고를 거치면서 응원단장, 오락부장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군생활도 통일대 예술단에서 했습니다. 한마디로 남 앞에 서서 잘 웃기고 잘 노는 체질이에요. 사실 스물 너댓살 무렵에는 실제 연예인이 되려고 시도한 적도 있는데, 잘 안됐어요. 물론 개그맨 쪽으로 생각했죠(웃음). 그런데 참 묘하죠? 아버지 가업을 이어받아 골재채취업을 하면서도 사람을 사귀면 꼭 연예계 사람들이었어요. 군 시절 알게 된 사람들도 있고, 형(‘싸이렌’ ‘돈을 갖고 튀어라’를 쓴 시나리오 작가 원동연씨)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있고…. 그게 아마 기질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연예계에 많은 지인을 둔 덕에 그는 벌써 영화에 두번이나 출연한 바 있다. 지난 2002년 영화 ‘긴급조치 19호’에 찬조출연 형식으로 얼굴을 내보이며 데뷔(?)를 했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성악가 김동규 교수와 개그맨 서세원의 사무실에 놀러갔다 우연찮게 함께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 이후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도 지인과의 인연으로 조폭 출신 국회의원 후보로 출연했다.
“영화는 사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작업한 거였어요. 게다가 영화 마니아란 게 저희 연배에선 한정적이라 주변 사람들도 제가 나온 걸 잘 몰랐어요. 그런데 TV에 나오니까 이건 이야기가 달라요.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난리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처가에 뭐라고 해야 할지(웃음)…. 사업하는 사람이 이제껏 어떤 이미지로 살았겠습니까? 의도적으로라도 강한 이미지로 보이려고 노력했죠(웃음).”

“연기자로 2년 ‘필드’ 경험하고 영화 제작자 될 겁니다”
골재채취업체 사장에서 코믹 연기자로 변신한 원상연

연기자로 데뷔한 이상 유명해지는 게 싫을 리 없건만, 사업은 사업대로 하고 있는 중이기에 아직까지는 남의 시선이 무섭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각오한 바다. ‘일주일에 한번’이긴 하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새로운 인생을 살 계획이기 때문.
“군 제대하고 아버님 사업을 갑자기 물려받았어요. 80년대 후반부터 골재채취업이 대호황이었거든요. 형님은 영화를 하시겠다고 한 터라 제가 가업을 잇게 됐죠. 90년대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얼마나 건축경기가 좋았습니까? 정말 머리 깎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았죠. 덕분에 돈은 벌 만큼 벌었습니다.”
성남에서 사시던 그의 부친은 60년대말, 강남으로 이사해 철물점을 냈다. 당시 강남은 화훼단지로 가득한 전형적인 빈촌이었다. 그런데 강남이 개발되면서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도시락도 못 싸갈 정도로 빈한했던 그의 집안도 불같이 일어났다. 중학생 무렵부턴 ‘아쉬운 것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고, 90년대 신도시 개발 붐을 타면서는 이른바 ‘유지’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청춘은 골재채취 사업을 하면서 지나갔다.

골재채취업체 사장에서 코믹 연기자로 변신한 원상연

20대 초반, 이루지 못했던 연기자의 꿈을 그는 나이 마흔을 앞두고 이뤘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물려받은 사업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건축 경기도 예전 같지 않고, 새로운 건축공법의 개발로 골재 수요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가 사업장으로 사용하던 골재채취장 또한 아파트로 개발되게 됐다. 때문에 그는 이참에 아예 사업을 정리하고 직종을 바꿀 생각이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화제작자가 되는 것. 그는 2년 정도 ‘필드’ 경험을 쌓은 뒤 직접 영화를 제작할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사회성 있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는데, 이미 시나리오도 여러 편 써놓은 상태라고.
“연기자로서도 자신 있어요. 생긴 거야 ‘박상면 짝퉁’이지만(웃음) 제 나름의 노하우가 있잖습니까? 사회 생활 경험이 많으니까 그 경험을 연기로 십분 살려보고 싶어요. 연기야 물론 힘들죠. 무엇보다 대본대로 외우는 게 익숙지가 않아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애드리브를 치고 있는데, 상대 배우들이 그것 때문에 불만이 많아요. 어떤 데서 자기 대사를 해야 할지 헷갈린다는 거죠(웃음). 미숙한 후배 좀 봐달라고 빌고 있습니다.”
연기를 위해 그는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상도 주문해 맞췄다. 생각보다 의상비가 만만치 않아 놀랐는데 나름의 비책도 세워두었다.
“패션 디자이너니까 좀 독특한 의상을 입어야 하잖아요? 좀 망가지는 컨셉트라 옷도 우스꽝스러워야 하고…. 다 맞춰 입을 수도 없고 해서 결심했어요. 한가지 옷만 계속 입기로요. ‘쟤는 무슨 디자이너가 만날 똑같은 옷만 입냐’고 욕먹는 게 제 컨셉트입니다. 똑같은 옷이 40벌 있다고 우기지, 뭐.”
99년 뒤늦게 결혼한 그는 현재 네살 된 딸을 하나 두고 있는데, 딸은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진 아빠 모습이 재밌는지 그가 디자이너로 변신한 드라마를 보면 ‘꺅’하는 소리까지 지른다고 한다. 처음엔 반대하던 부인도 이제는 그의 든든한 조력자로 변신, 내조를 아끼지 않는다고.
서른아홉,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연예계로 나선 그의 선택이 나름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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