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오랜만입니다

영화 '보리울의 여름' 주연 맡은 마흔다섯의 아름다운 독신녀 장미희

“아직 싱글이기 때문에 좋은 남자 만날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는 짜릿함 느끼며 살아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3. 05. 07

그동안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로,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외도 아닌 외도를 했던 영화배우 장미희가 최근 개봉한 영화 '보리울의 여름'을 통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가 처음으로 털어놓은 마흔다섯 독신으로 사는 남모르는 즐거움 & 배우로서의 남다른 열정.

영화 '보리울의 여름' 주연 맡은 마흔다섯의 아름다운 독신녀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루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배우 장미희(45). 그동안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로,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외도 아닌 외도를 하며 스크린을 떠나 있던 그가 지난 4월24일 개봉한 영화 ‘보리울의 여름‘을 통해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97년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스크린을 떠난 지 6년 만이다.
“이런 따뜻한 영화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흔쾌히 결정했어요. 더구나 가정의 달 5월에, 이라크전쟁이 끝난 시점에 개봉해 이 영화가 주는 화해와 사랑,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기뻐요.”
그의 말처럼 축구를 통해 종교간의 벽, 세대간의 벽을 허문다는 줄거리를 담은 ‘보리울의 여름‘은 2001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집으로…‘처럼 재미와 따뜻한 감동을 줘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다. 여기서 장미희가 맡은 역할은 박영규가 맡은 스님과 대비되는 캐릭터를 가진 원장수녀.
언뜻,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온 그가 수녀 역을 한다는 게 아이러니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고, 장미희 역시 어려서부터 교회와 성당, 사찰을 많이 다니는 등 종교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인적으로 데뷔 이후 성직자 역할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야 그 역할이 주어졌네요. 이 배역을 맡으면서 수녀님이 지나갈 때 언뜻 느껴지는 향기, 그러니까 순수함과 신성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며 평생을 인간적 절제, 신성으로 살아온 그분들의 향기를 몇 개월 만에 흉내낸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어요.”
70, 8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89년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임용된 후 스크린 나들이가 현저히 줄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배역들이 대부분 정형화된 캐릭터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생긴 게 이래서 그런지 요즘도 너무너무 섹시한 역할이라든가, 채찍을 휘두르는 여자라든가(웃음), 아니면 아무 생각 없는 사치스런 여자 같은 역할들이 많이 들어와요. 물론 상황에 따라 그런 게 필요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전제가 되어서는 곤란하죠.”
정형성을 탈피해 새롭게 하고 싶은 배역이 뭐냐고 묻자 그는 이창동, 홍상수, 임순례 감독의 영화처럼 일상성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의 배역을 맡아보고 싶다고 했다.
“꼭 한번 제 안에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인물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영화가 과연 만들어질지 모르겠지만 현실과 환상이 동시에 움직이는 영화도 한번 해보고 싶고요.”
그는 여전히 욕심 많은 배우다.
“지금 저에게 대표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한 5편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을 두개 정도 더 만들고 싶어요. 연기를 하다 탈진해 쓰러져 죽어도 좋은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전에는 선배들이 무대에서 죽겠다는 말을 하면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게 행복하고 최선을 다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보리울의 여름' 주연 맡은 마흔다섯의 아름다운 독신녀 장미희

장미희는 요즘 무의식, 전생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장미희의 나이 올해 마흔다섯. 영화 속 수녀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봉사하겠다는 그는 여전히 독신이다. 자식삼아 강아지 세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 새 한 마리를 기르며 사는 그의 독신생활은 어떨까 궁금했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아침 7시30분에 눈을 뜨지만 게으름을 부리다 8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요. 먼저 커피를 올려놓은 다음, 음악을 틀고 집안을 환기시켜요. 그래야 나무가 잘 자라고 집안의 모든 것이 깨어나 활력을 찾거든요. 새장에 가서 새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 새장 문을 열어주면 집안을 날아다니다 다시 자기 집으로 들어가요. 그때쯤이면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을 치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등 최소한 11시까지는 제 시간을 가져요. 누가 벨을 눌러도 안 열어줘요(웃음). 그 시간을 놓치면 하루 종일 몸이 안 좋더라고요. 그리고 밥 먹고 학교에 가거나 볼 일을 본 후 보통 저녁 8시30분쯤 집에 들어오는데, 저녁뉴스를 본 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죠.”
-너무 모범적인 생활인데,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없나요?
영화 '보리울의 여름' 주연 맡은 마흔다섯의 아름다운 독신녀 장미희

장미희는 '보리울의 여름'에서 원장수녀 역을 맡았다.


“그렇지 않아요. 저에겐 책을 읽는 게 가장 재미있는 일이에요. 연기를 위해서라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흔히 배우는 감성이 발달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이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감성은 결국 한계에 부딪친다는 걸 알아요. 감성을 이성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안돼요. 제가 요즘 ‘연기자에게 무의식이 어떻게 연기에 발현되는가’를 공부하느라 관련된 책을 보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침대에서 누워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 일어나 앉아서 보게 되고, ‘티벳 사자의 서‘를 볼 때는 너무 좋아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사니까 저는 재미있기만 한 걸요.”
-책을 읽는 재미 외에 다른 즐거움은 어떤 게 있나요?
“전 호기심이 많아서 쇼윈도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그래서 시장에 자주 가요. 가끔씩 황학동에 들르는 재미도 쏠쏠해요. 거기엔 골동품뿐 아니라 재미있는 물건들이 너무 많아요. 여름과 겨울엔 여행도 다니고…. 사람들은 제가 특별하게 살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망치질까지 제가 직접 다 해요. 일상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연기로 체화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 '보리울의 여름' 주연 맡은 마흔다섯의 아름다운 독신녀 장미희

학생들의 연기를 지도하는 교수 장미희.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특별한 것은 없는데, 굳이 이야기하자면 음식을 가려서 먹는 편이에요. 불결한 음식, 몸에 안 좋을 것 같다고 판단되는 음식은 안 먹어요. 하루 두끼 외엔 군것질도 안 하는 편이고요. 헬스클럽엔 일주일에 3일 정도 가요. 운동을 좋아해서 탁구나 배드민턴도 즐겨 치는데, ‘보리울의 여름‘을 촬영할 때 이민용 감독의 대학생 조카와 자장면 내기 배드민턴 시합을 했어요. 물론 제가 이겼죠.”
-피부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과일을 즐겨 먹고 깨끗이 씻는 것 외엔 특별히 하지 않아요. 3시간씩 누워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아주 특별할 때가 아니면 피부관리실도 안 가는 편이에요. 물론 기본적인 화장은 하죠. 오늘은 화장을 좀 진하게 한 편인데, 왜냐하면 얼마 전 사진을 찍었는데 얼굴이 넓적하게 나온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갸름하게 보이고 싶어서…(웃음).”
-쌍꺼풀은 광고에서처럼 진짜 국제전화요금을 아껴서 한 것인가요?
“수술한 것처럼 보여요? 광고에 나온 건 풀을 붙여서 만든 거고, 전 자연적으로 된 거예요.”
-결혼할 생각은 없는 건가요?
“지금도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스물여섯부터 서른살까지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것 때문에 갈등도 하고, 결혼생활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까 지금은 결혼을 한다, 안 한다는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저와 생각이 같고, 동반자로서 서로 존중할 수 있고,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죠. 그런 남자가 있었으면 제가 먼저 서둘렀을 텐데 아직까지 꼭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요.”
-그래도 혼자 살면 외로움 때문에 가끔씩이라도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혼자 있어서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혼자 있어서 편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아요. 혼자 있으니까 일을 더 많이 한 것도 있어요. 만약 제가 결혼을 했다면 지금처럼 배우와 교수, 영화진흥위원회 일을 다 하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 현실이 그렇잖아요. 저는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자기성취를 위한 길을 가기가 수월했어요.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탈진해 침대에 누워있을 때 ‘내가 결혼했으면 이 시간에 이렇게 누워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가족들과 있을 때나 부부동반 모임에 갔을 때 잠깐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때 잠깐뿐이에요. 만약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면 벌써 결혼을 했겠죠. 그런데 저는 상대가 있다고 해서 원초적인 외로움이 해결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생활이 너무 좋아 앞으로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현재는 삶 전체를 제가 좋아하는 영화와 학교로 채울 수 있는 즐거움이 더 커요. 그리고 이런 기분 아세요? 아직 싱글이기 때문에 저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앞으로 훨씬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는 짜릿함, 감칠맛을….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에요(웃음).”
-누군가 ‘중년의 아름다움’에 대해 책을 쓴 적이 있는데, 장미희씨도 벌써 40대 중반입니다. 나이를 느낀 적이 있나요?
“나이가 들어가는 즐거움이 있어요. 재미있고, 신비스럽고…. 물론 주름살이 늘어난다든지 하는 미용적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씩 감탄을 하게 돼요. 단적으로 젊어서 단테의 ‘신곡‘을 읽었을 때와 얼마전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달랐어요. 전에는 몰랐던 오묘함과 재미가 느껴지더라고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동서양의 고전은 물론 사회학·정신분석학·예술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장미희를 보며 ‘왜 그가 한국 최고의 여배우, 대학교수,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이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