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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yobosoju

여보 소주 한잔 어때요

프리미엄 소주로 뉴요커 사로잡은 캐롤린 킴·제임스 금 부부

editor 정희순

2018. 03. 28

한국계 미국인 캐롤린 킴과 제임스 금 부부가 만든 여보 소주가 까다로운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소주는 36억1천5백12만 병.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소주라는 데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고백하자면, 에디터 역시 소주를 ‘애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최근 마트에 갔다가 ‘소주 같지 않은 소주’를 발견해 냉큼 바구니에 담았다. 이국적인 병 디자인과 ‘땡기는’ 술 이름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여보 소주(YOBO SOJU)’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여보 소주는 국내에서는 ‘소주’가 아니다. 주류법상 소주는 곡물로 만들게 돼 있어 100% 포도를 증류해 물에 희석한 여보 소주는 ‘소주’가 아닌 ‘증류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 해외에선 소주로 통한다. 알코올 도수는 23도로, 일반 소주에 비해 높은 편이다. 

여보 소주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캐롤린 킴(39)과 제임스 금(42) 부부다. 미국 LA에서 공익 변호사로 활동 중인 캐롤린은 지난 2015년 입맛에 맞는 소주를 찾다가 프리미엄 소주를 직접 만들게 됐다. ‘여보’라는 이름은 남편인 제임스가 지었다. 

향이 풍부하고 맛이 깔끔한 여보 소주는 지난 2015년 뉴욕 인터내셔널 스피릿 캄퍼티션 2015(New York International Spirits Competition 2015)에서 ‘올해의 소주’로 선정됐고, 지난해엔 샌프란시스코 세계 스피릿 캄퍼티션 2017에서 골드 메달을 수상하며 미국 주류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50개 주 중 15개 주의 고급 레스토랑과 홀푸드 마켓에서 판매 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소주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에도 도전장을 내 현재 이마트와 SSG 매장, 롯데백화점(잠실점)에 위치한 탭앤크래프트에서 만날 수 있다. 마침 한국에 있는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여보 소주의 공동 창립자 캐롤린과 제임스 부부를 만났다. 한국의 대표 주류인 소주는 부부의 손에서 어떻게 재해석됐을까.

이름이 참 귀엽네요. 부부가 만든 소주라서 ‘여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 건가요. 



제임스 아내와 대화를 하다가 나온 말이에요(웃음). 솔직히 말하면 ‘여보’라는 이름은 하와이 방언에서 따왔어요. 하와이에선 이모, 삼촌, 친구,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을 여보(Yobo)라고 부르거든요. 한국에선 부부끼리 쓰는 말인 이 단어가 여러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한다는 사실이 재밌어서 우리끼리 낄낄대며 웃다가 소주 이름으로 여보 소주가 어떻겠냐고 했던 게 계기가 됐죠. 

캐롤린 여보 소주는 진탕 마시고 취하는 술이라기보다는 지인들과 함께 가볍게 한잔 마시기에 좋은 술이에요. 친구, 연인, 가족 누구와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소주인 셈이죠. 더 멋있는 이름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우린 조지 클루니가 아니잖아요(웃음). ‘보통 사람’ 누구나 이 술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는 느낌을 살리기에 ‘여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캐롤린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는 한국 음식의 위상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전에는 인터내셔널 푸드 코너 구석에 있던 한식이 이제는 일식보다 더 대중화됐어요. 뉴욕이나 LA에 있는 한식 레스토랑의 메뉴는 혁신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고요. 높아진 한식의 퀄리티에 걸맞게 한국의 주류 문화도 이제 고급스러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식집에 가면 한 병에 80~90달러짜리 사케를 기꺼이 주문하잖아요. ‘소주는 왜 안 돼?’ 하고 생각한 게 시작이었죠. 여보 소주는 미국에서 27달러 정도에 판매되고 있어요. 

제임스 어느 날 캐롤린이 그러더라고요. “나는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한국의 소주도 좋아. 그래서 프리미엄 소주를 만들어보려고 해”라고요. 저는 듣자마자 “What?(뭐라고?)” 하면서 코웃음을 쳤어요. “그거 만들어봐야 안 팔릴걸. 저렴한 가격에 대여섯 병씩 마시는 게 소주인걸. 누가 비싼 소주를 사 먹겠어”라고 대꾸했죠. 그랬더니 캐롤린이 그러더라고요. “나는 대여섯 병씩 퍼마시고 싶지 않아. 그냥 좀 더 좋은 걸 마시고 싶을 뿐이야. 아마 나처럼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을걸” 그때 느꼈죠. ‘아, 내 시각이 지나치게 남성적이었구나’ 캐롤린은 여성 소비자의 시각으로 ‘소주’라는 술을 다시 바라본 거예요. 

캐롤린 제가 2015년에 쌍둥이 아들을 낳았거든요. 외출했다 집에 들어오면 일단 뭔가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럴 때 있잖아요. 엄마도 한잔하고 싶은 날. 쌍둥이 아들 덕분에 여보 소주를 만들게 된 셈이죠(웃음). 

제임스 생각해보면 소주는 남성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광고 포스터에 예쁜 여자 연예인이 타이트한 옷을 입고 등장하잖아요. 저는 그런 점에서 캐롤린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아내는 미국에 사는 동양인 여성이에요. 소수자인 셈이죠. 보수적인 주류 업계에 그녀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한국 소주도 많이 드셔보셨나요. 

캐롤린 저와 제임스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어요. 대학 때 한국 유학생 친구들을 만나면 꼭 소주를 마셨던 것 같아요. 

제임스 그럼요. 소주는 재미교포 2세인 저희에게 뭔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술이었어요. 물론 숙취도 함께였지만(웃음). 

기존 소주와 다른 여보 소주의 차별점은 뭔가요. 

캐롤린 여보 소주는 포도를 증류해서 만든 술이에요. 그레이프 베이스트(Grape based)죠. 이건 그레이프 플레이버(Grape Flavor)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에요. 진짜 포도로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방부제나 인공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았어요. 클린하고 심플해서 마시기 좋은 술이죠.

제임스 1년에 딱 한 번 추수기 때만 만들어요. 신선한 포도만을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많이 만들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 역시 캐롤린의 아이디어였어요. 제가 “그럼 2월엔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2월에는 신선한 포도가 없으니 그냥 만들지 말자고 하더라고요(웃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업성 한번 되게 좋네!” 하고 비꼬았는데 지금은 그게 오히려 여보 소주의 성공 요인이 됐죠. 한정 수량으로만 생산돼 희소성이 있거든요. 캐롤린은 이렇게 항상 엄마와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요. 제가 많이 배웠어요. 

다른 원료도 많은데 특별히 ‘포도’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캐롤린 향도 좋고 맛도 좋잖아요. 사실 전 ‘뉴욕’적인 상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뉴욕은 우리 부부에게 굉장히 특별한 공간이거든요. 뉴욕에 핑거 레이크스라는 청정 지역이 있는데 이곳이 포도 산지로 유명해요. 여보 소주는 핑거 레이크스에서 재배한 포도만 100% 사용하고 빙하호 연안으로 흐르는 최상급수를 이용해 증류하죠. 

제임스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포도를 처음 심은 지역이 이곳이에요. 미 연방 정부에서 미국 전체에 있는 와이너리에 라이선스를 발급하는데, 이 지역 와이너리의 라이선스 넘버는 ‘001’로 시작해요. 그만큼 미국에선 유명한 지역이죠. 이곳 포도는 당도와 산도가 뛰어나 특히 알코올 스피릿을 만들기에 더없이 좋아요. 핑거 레이크스는 한국과 비슷한 날씨와 풍경을 지녔어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캐롤린의 본업은 변호사잖아요. 주류 사업을 시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캐롤린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술이라고 하면 응당 남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건 정말 저의 가치관과는 상충되는 일이었어요. 그걸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미국 뉴욕 주 북부에 위치한 핑거 레이크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은 신선한 포도 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미국 뉴욕 주 북부에 위치한 핑거 레이크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은 신선한 포도 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제임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주류업계 역시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미국 주류 회사 CEO라고 하면 ‘전형적인 백인 남자’를 상상하면 될 정도죠. 그런 곳에서 누가 캐롤린을 진지하게 생각했겠어요. 다행히 유명 레스토랑 오너와 셰프들이 여보 소주의 가치를 인정해줬고, 그러면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으니 정말 감격할 만한 일이죠. 

여보 소주와 잘 어울릴 만한 안주 혹은 곁들일 만한 음식을 추천해주신다면. 

제임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둘의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웃음). 저는 주변에 “네가 먹고 싶은 건 어떤 것이든 안주로 좋다”고 해요. 스테이크에 레드 와인, 삼겹살에 소주를 공식처럼 여기는데 사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잖아요. 스테이크를 화이트 와인이랑 마시는 게 더 좋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음식과 드링크의 페어에는 정해진 공식이 없다고 생각해요. 음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하잖아요. 앞으로 어마어마한 새로운 맛들이 펼쳐질 거고요. 그러니까 그냥 우린 시도해보면 돼요. 

캐롤린 저는 와인을 좋아하는데 그게 한식과 어울린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된장찌개에 레드 와인? 상상이 잘 안 돼요(웃음). 와인과 비교했을 때 소주의 매력은 그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맛이 깨끗해서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죠. 개인적으로는 온 더록 잔에 민트나 라임 등을 넣고 칵테일처럼 마시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오렌지 향이 나는 베리를 넣어 ‘여보 칵테일’을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그게 정말 인기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말부터 이제 한국에서도 여보 소주를 만날 수 있게 됐어요. 여보 소주를 맛본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가 나오길 기대하나요. 

캐롤린 일단은 사람들이 여보 소주를 궁금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주가 왜 이렇게 비싸?”하고 물으셔도 좋아요. 저는 그분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거든요. 물론 비싼 가격 때문에 포장마차 같은 곳에선 팔리지 않겠죠. 하지만 요즘은 한국에 좋은 식당 정말 많잖아요. 양보다는 질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소주’ 하면 ‘싼 술’이라는 이미지를 깼다는 말도 듣고 싶고요. 

제임스 한국에서 잘 팔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한국계 미국인이 만든 소주가 고국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잖아요. 사실 재미교포 2세로서 캐롤린과 저의 삶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었어요. 물론 한국말은 잘 못하지만요(웃음). 여보 소주도 그렇게 만들 거예요. 한국은 굉장히 경쟁적인 문화라 들었고, 이곳에서 여보 소주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큰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좋은 소주라는 정체성 하나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어요.

photographer 홍태식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YOBO SO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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