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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power_woman #interview

빛나는 추억 더 아름다울 미래

editor 김명희 기자

2017. 08. 29

삶의 궤적을 그리는 데 있어 결정적인 시간들이 있다. 박영선 의원과 조휴정 PD, 박경미 의원과 정은아 아나운서의 수도여고 방송반 시절이 그렇다. 그녀들이 추억을 되짚어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함께했다.

조휴정(53) KBS PD, 더불어민주당 박경미(52) 의원, 박영선(57) 의원 그리고 정은아(52) 아나운서가 차례로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녀들은 30년이 넘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여고 시절로 타임슬립했다.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에 넉넉한 그늘을 드리웠던 나무가 은행나무였는지, 느티나무였는지 갑론을박을 벌이다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들이다.

박영선 의원은 MBC 기자와 앵커를 거쳐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한 4선 의원이고, 박경미 의원은 수학교육학 박사 출신으로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1번으로 20대 국회에 진출했다. 1993년 KBS에 입사한 조휴정 PD는 1996년과 2002년, 2006년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한 베테랑 연출자고, 정은아 아나운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진행으로 사랑받는 진행자다.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건 ‘수도여고 방송반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다. 박영선 의원과 박경미 의원은 국회의원 동료로, 조휴정 PD와 정은아 아나운서는 KBS 1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의 연출자와 진행자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녀들의 소녀시대

삶을 설명하는 데 있어 때로는 소녀로 지낸 한 시절이면 충분하다. 그 시절에 읽었던 책, 선생님과 친구들, 머물었던 공간과 경험은 DNA처럼 깊이 각인돼 삶의 방향과 자세를 결정짓는다. 박영선 의원과 조휴정 PD, 정은아 아나운서는 방송을 업으로 삼았거나 아직 현업에 종사하고 있고, 박경미 의원 역시 MBC 〈100분 토론〉의 첫 여성 진행자로 활동한 바 있다.  

▼박영선 의원은 1975년, 조휴정 PD는 1979년, 박경미 의원은 1980년, 정은아 아나운서는 1981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서로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조휴정 박경미 의원이나 은아는 별로 안 변했어요. 박 의원은 모범생이었고, 은아는 키가 크고 보이시하고 시크한 매력이 있어서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죠. 



박경미 조휴정 선배는 눈물이 많았어요. 방송반에서 선배보다 한 해 위 기수 중에 ‘센’ 분들이 많아서 시집살이를 많이 했었죠. 지금은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지만 그땐 1년 선배가 엄청나게 무서웠거든요. 방송 조금 틀리면 선배들이 달려와 “너희들 이런 식으로 할래?” 하며 야단치시고, 그러면 저희는 인생이 무너진 것처럼 눈물 뚝뚝 흘리고. 저희가 그렇게 진지했답니다.

정은아 박영선 선배는 저희와 함께 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수도여고 방송반의 레전드였어요. 워낙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잘하셔서 선생님들로부터 “박영선 선배는 어땠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래서 선배가 앵커로, 기자로 승승장구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우리에게 이렇게 훌륭한 선배가 있다는 것에 늘 든든했던 기억이 나네요.

박영선 선생님들이 후배들에게 ‘방송반 들어가면 성적 떨어진다’는 본보기로 제 얘기를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웃음). 저는 2학년 돼서 다른 친구들 다 공부할 때 늦바람이 나 방송반 활동을 시작했어요. 제 위로도 훌륭한 선배님들이 많이 계신데, 가끔 학교에 와서 우리가 하는 걸 봐주시기도 하고, 또 그땐 방송국 PD들이 고등학교 방송반을 많이 도와줬어요. PD들이 백합제라는 저희 학교 방송 축제에도 오시고, 또 저희가 라디오 방송에 나가 청취자들이 보내온 사연도 읽고 그랬죠.

방송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거 같아요.
박경미 학교 방송이 점심시간, 수업 종료, 청소 시간 등을 알리는 일종의 시그널 역할도 했는데, 어떤 때는 시간을 잘못 맞춰서 수업이 안 끝났는데도 방송이 나간 적도 있어요. 방송 스위치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우리끼리 수다를 떨다가 그게 고스란히 방송에 나간 적도 있고요.

정은아 저는 웃음이 많아서, 마이크에 대고 많이 웃었어요. 안내 방송을 하다가 문구가 조금 이상하면 전교에 대고 웃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달려오셔서 혼내는 것까지 그대로 방송에 나가고 그랬죠(웃음). 축제 때 이웃 남자 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무를 던지며 “무다리다!”라고 놀렸던 기억도 나고요.

박영선 방송반이래 봐야 턴테이블, 마이크, LP판 진열대 정도로 구성된 정말 작은 공간이었는데, 그곳이 저희들에겐 해방구 같은 장소였어요.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데 우리는 거기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비 오는 날엔 집에 안 가고 들러서 같이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집중적으로 음악을 듣고 친구, 선후배들과 우정을 나누며 보낸 시간이 이후 삶에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방송반 경험이 네 분의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 듯합니다.
박영선 첫 직장이 KBS 춘천 방송국이었어요. 거기서 심야 라디오 방송 DJ를 했는데, 강원도 지역 군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이후 MBC로 옮겨 앵커와 기자로 일한 것도 방송반 활동 경험이 바탕이 됐어요. 의정 활동은 기자 생활과 무관하지 않고요. 당 대변인으로서 현안에 관한 브리핑을 한다거나, 국정 감사에서 질문을 한다든가 하는 부분이 특히 그렇죠.

정은아 저는 아나운서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 했어요. 기자가 되려고 언론사 스터디를 하다가 진로를 바꾸면서 KBS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는데, 방송반 경험이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방송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빨리 돋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경험은 없어요. 한 번의 강렬한 만남이 삶을 새로운 길로 이끌기도 하고, 축적된 시간이 내공이 돼 결정적인 순간 빛을 발하기도 하고요. 제겐 방송반 활동이 그런 시간이었어요.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경험이죠.

조휴정 방송반 시절엔 저희가 선곡도 다 했기 때문에 음악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들었죠. 저는 그게 평생의 먹거리가 됐고요. 은아와 함께 방송을 하면서 가끔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어요. 학교 방송반에서 같이 활동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35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예요.

박영선 우리가 그때 많이 틀었던 음악이 폴 모리아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음악들이었는데 지금도 그 음악들을 들으면 그때의 풍경과 추억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애잔해요. 돌아갈 수 없어서 더 그렇겠죠?

정은아 저는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를 너무 많이 틀어서 어떤 선생님이 ‘그 노래 좀 그만 틀어라’라고 하실 정도였어요(웃음).

박경미 저는 이치현과 벗님들의 ‘당신만이’를 좋아했어요. 방송제를 준비하면서 선배들에게 야단이라도 맞은 날이면 넓은 빈 강당에 울려 퍼지던 이 노래로 서러운 마음을 달래곤 했죠. 1990년대 후반 서울 미사리 카페에서 그 노래를 다시 들었는데 또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요즘은 곽진언과 김필이 부른 버전을 즐겨 들어요. 같은 노래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그런 게 음악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네 분이 사회에서 다시 만난 계기가 있나요.
정은아 그동안 만나지는 못했지만 선배님들이 방송반 출신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하시는 모습을 자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3년 전쯤 단톡방을 만들어 연락되는 선배님들을 수소문해 모임을 한 번 열었어요. 나이 쉰을 앞두고 뒤를 돌아보며 ‘내 인생에 뭐가 있었지?’란 생각을 해봤는데 방송반 시절 기억이 많이 나더라고요. 또 제가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방송 일을 하고 있으니까 한번 다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도 있었고요. 그렇게 해서 정말 오랜만에 선배님들을 만났는데, 다들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라서 놀랐어요.

두 분씩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데, 동료로서 서로를 어떻게 보시는지도 궁금해요.
정은아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좀 느슨해질 수도 있는데 조 선배는 열정과 아이디어가 넘쳐서 따라가기 숨찰 정도예요. 지금 함께 방송을 하고 있지만 저는 선배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는 정도죠. 그렇다고 일에만 매몰되는 것도 아니고, 일할 시간에는 바짝 일하고 퇴근 후에는 또 자신의 시간을 내서 글 쓰고 사람들 만나고, 살림도 잘하고, 낭비하는 시간이 없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우죠.

조휴정 저는 요즘 은아와 함께 일을 하면서 매일 감탄해요. 청취자들이 실시간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면 그걸 보고 즉흥적으로 멘트를 이어나가는데 그렇게 순발력이 좋을 수가 없어요. 교육, 문화, 스포츠, 요리 등등 어떤 주제가 나와도 막힘이 없죠. 상대를 배려하면서 방송을 하고 개인적인 삶도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하고, 덕분에 안티가 없는 걸로도 유명해요.

박영선 저는 초선 의원 시절 많이 헤맸던 것 같은데, 그에 비하면 박경미 의원은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냘프게 보이지만 강단도 있고,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 중요한데 국회에서는 그런 부분에서 활발하게 입법 활동을 하고 있어요.

박경미 제가 당 대변인을 하는 동안 기자들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전임) 박영선 대변인의 브리핑은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도 될 만큼 간결하고 정확하다”는 거였어요. 10초 정도 되는 짧은 코멘트에 핵심을 다 담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요즘 재벌 개혁, 사법 개혁을 위해 맹활약하고 계신데, 이렇게 정당하지 못한 일들을 바로잡고자 밀고 나가는 모습을 뵈면 존경스럽기도 하고요.



응원하고 싶은 그녀들의 새로운 도전

이들은 수도여고 방송반 출신이라는 점 외에 성공한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성공이 세속적인 의미에 좀 더 가깝다면 여성의 성공은 개인적인 성취를 통해 다른 여성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남녀를 구분하는 것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학창 시절 반짝반짝 빛나던 여성들이 직장이나 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편견 혹은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안타깝게 커리어를 마감하는 걸 직접 경험하거나 숱하게 봐왔다. 소녀 시절을 거쳐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고, 이제 후배 여성들의 롤 모델로 자리매김한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사회 곳곳에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국회도 여성 의원 비율이 17%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박영선 제가 2004년 17대 국회에 들어왔을 때 여성 의원 비율이 15% 정도였어요. 당시 비례대표 여성할당제(50%)와 정치자금법 대폭 개선으로 돈 없는 선거가 가능해지면서 그전보다 여성 의원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했는데, 그 이후로 10년간 겨우 2% 정도밖에 늘지 않은 셈이죠. 예전에 미국의 첫 부통령 후보였던 제랄딘 페라로라는 정치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여성 의원은 남성들보다 2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왜 여성을 뽑아야 하는가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답을 줘야 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고, 더 투명해야 하고,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이것도 일종의 유리천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아직 여성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건, 바꿔 말하면 정치가 여성들에게 블루오션이라는 의미도 돼요. 요즘 유권자들이 원하는 건 생활 정치, 즉 내가 사는 지역을 어떻게 바꿔줄 것인지예요. 그런 것들을 많이 보고 투표하시기 때문에 꼼꼼함, 섬세함, 소통 능력 같은 여성적인 리더십이 경쟁력도 있고요.

박경미 그런 의미에서 수적으로 많지는 않아도 활동 내용만 놓고 보면 여성 정치인 전성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불어민주당(추미애), 바른정당(이혜훈), 정의당(이정미) 대표가 모두 여성인데, 이분들은 당내 의원이나 유권자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협업하는 데 능하세요. 박영선 선배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전문성과 강점을 갖춘 선배들을 뵈면서 앞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 사회 참여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박영선  경제부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재벌이 많은 특혜를 받는 걸 봐왔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바로잡고 싶고,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또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해서 환경이나 도시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데, 서울은 공원이 절대 부족한 것 같아요. 관련 상임위에도 제안을 드리고 있는데, 환경이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그런 부분이 개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조휴정 제가 유일하게 잘하는 일이 방송인데 그걸 직업으로 삼게 돼서 참 감사하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어요. 저희 방송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사연을 보면 우리 사회엔 생각보다 어렵고 외로운 분들이 많이 계세요. 라디오가 TV처럼 드라마틱한 영향력은 없지만 제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정은아 아나운서처럼 좋은 진행자가 마음을 담아서 전달하면 그런 분들께 희망과 위로가 되는 방송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은아 오늘 선배들 말씀을 들으니 ‘다들 콘텐츠를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열심히 사시는데 나는 뭘 했나’란 생각에 반성을 하게 됩니다(웃음). 세상은 아직 제게 미지의 대상이고, 저는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요. 새로운 게 나오면 ‘이게 뭘까’ 하고 시도해보고, 언어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거기서 또 꼬리를 물어 다른 걸 시작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학교 다닐 때도 안 했던 공부를 나이 들어서 하게 되네요. 공부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사소한 일이라도, 아니 사소한 일일수록 더욱더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경험하면 결국은 그것이 용기와 자부심으로 남더라고요.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것, 저는 그게 제게 주어진 숙제예요. 

박경미 제가 국회에서 속한 상임위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인데, 모든 학생들이 자존감을 갖고 행복하게 공부하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입법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 빈소에 갔다가 김용수 할머니를 뵈었어요. 그분이 “내가 1928년생인데, 일본군의 만행과 위안부 피해 실상을 알리는 운동을 하기에 딱 좋은 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50대 초반에 안정된 교수직을 포기하고 국회에 4년제 비정규직으로 들어오면서 상당한 변신이고 모험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싶었어요. 우리 모두 아직 할 일이 많은가 봅니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최정미 제품협찬 미스지컬렉션  에흐드쥬 에스카다 앤클라인 블루페페 미소페 알도 무크 스와로브스키 엠쥬 헤어 진화(끌림 갤러리점) 메이크업 유화(끌림 갤러리점) 스타일리스트 장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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