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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해피토크

지친 육신과 영혼에 바치는 선물

입력 2009.10.09 15:37:00

지친 육신과 영혼에 바치는 선물

허은영_Fill Again_120×120cm_Mixed Media on Canvas_2009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 있다. 타워팰리스처럼 호화로운 집을 방문하거나, 수억원대 외제 승용차를 타거나,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보석 장신구를 구경할 때가 아니다. 마사지를 받을 때다.
매일 어깨를 웅크린 채 컴퓨터를 해서 의사에게 목 디스크 판정을 받은데다 체질 자체가 순환이 잘 안 되는 나는 수시로 어깨와 목 근육이 뭉친다. 설상가상 물도 잘 안 마시고 운동은커녕 삼보일탑승, 즉 세 걸음만 걸을 일이 있으면 재빨리 택시를 타는 성격이라 굳어진 몸은 더 기형이 되어간다.
그러다 몇 년 전 미용 기사를 쓸 때 스파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유명 수입 화장품사에서 운영하는 그 스파가 “직접 체험을 해야 보다 생생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현명한(?) 판단으로 내게 스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 전까지 동네 목욕탕에서 때밀이 아줌마가 서비스로 발라주는 오일 마사지 정도가 나의 스파(?) 히스토리였다. 새파랗게 젊은 여성들이 목욕탕 침대에 누워 여러 재료로 마사지를 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려 목욕탕 마사지를 별로 즐기지도 않았다. 자기 몸 하나 예뻐지겠다고 버려진 우유나 유해한 재료가 강이나 바다로 흘러가면 정화하는 데 몇 톤의 물이 필요할까란 환경친화적 생각도 아주 잠시 해봤다.

내 몸을 어루만지는 천사의 손길
그런데 전신 스파는 벼락 맞은 듯한 충격을 줬다. 전문가가 벨벳 같은 손길로 몸 구석구석을 섬세하고 부드럽게 마사지하자 막혔던 혈관과 근육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또 향긋한 아로마오일이 후각을 자극해 뇌도 맑아지는 듯했다. 그리고 온몸을 쿠킹호일 같은 것으로 감싼 뒤 해독작용을 한다는 기구 속에 들어갔는데, 어찌나 아늑하고 따사롭고 행복한지 여기가 천국이지 싶었다.
그렇지 않은가? 천사들이 하프를 연주하고 철학자들이 고상한 담론만 하는 게 무슨 천국인가.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음악과 재미있는 책과 수다를 떨 친구에다 내 몸을 마사지해줄 테라피스트가 있는 곳이 내가 꿈꾸는 천국의 풍경이다. 난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천국을 체험했다. 몸에 닿은 손길이 천사의 손으로 느껴졌다.
스파를 마친 뒤 물어보니 그 전신 마사지 비용, 즉 천국행 티켓은 확실히 비쌌다. 가격에 놀라 나지막이 신음 소리가 났는데, 놀랍게도 그 고가의 전신 마사지를 회원제로 끊어 목욕탕 드나들 듯하는 부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 다짐했다.
“그래. 부지런히 돈을 벌어 맘껏 마사지를 받자. 내 몸에도 사치를 허락하자.”
그 후 닥치는 대로 외부 원고를 쓰고 강의도 다니며 돈을 벌긴 했다. 그래서 중국 마사지, 타이 마사지, 핀란드 마사지 등 국적별, 그리고 스톤 마사지, 불 마사지, 한약재료 마사지 등 재료별 마사지를 다 받아봤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핀란드 시골, 일본 온천지, 타이완 리조트, 필리핀의 찜질방(그 더운 나라에 왜 찜질방을 만들었는지 의문이었는데 곧 문을 닫았단다), 두바이의 호텔 스파에 이르기까지 각계의 온정과 내 돈으로 스파를 체험했다.
하지만 정작 일상에 쫓기다 보면 평소엔 내 몸을 호사시켜줄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또 처음에 마사지를 받으면 피부에 윤이 흐르고 얼굴빛도 화사해지는데 나흘만 지나면 다시 원상복귀하는 것 같아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난 1, 2년 동안은 친한 친구와 결별하듯 스파와 마사지의 세계를 떠났다. 펀드에 투자한 돈이 반토막 나고, 딸이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떠나는 바람에 지갑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지친 육신과 영혼에 바치는 선물

허은영_Fill Again_50×50cm_Mixed Media on Canvas_2009


떨쳐낼 수 없는 스파의 황홀함
스트레스로 귀신이 올라앉은 듯 어깨가 무겁고 기분이 눅눅한 날,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꽃잎처럼 뽀얀 피부에 날렵한 V라인 턱선을 자랑했다. 2주일 전에 만났으니 턱 수술을 받을 시간은 없었을 텐데. 갑자기 예뻐진 비결을 물었더니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요즘 마사지를 받잖아. 미용실 언니 추천으로 가봤는데 손맛이 일품인 거야. 얼굴 경락 마사지를 받았더니 턱밑 살들이 다 도망갔다니까. 너한테만 알려줄 테니 혼자만 가봐. 괜히 소문 내서 사람 많아지면 우리한테 소홀해진다니까. 얘, 나이 들어서 제일 슬픈 게 칙칙하고 축 늘어진 피부 아니니? 넌 돈 벌어서 어디 쓰니? 연예인들 고운 피부가 타고난 건 줄 아니? 일주일에 2, 3번은 피부과나 관리실에 누워서 신입사원 월급을 지불한 결과라고.”
바로 친구가 말한 피부관리실로 달려갔다. 등 마사지를 받았더니 과거의 아련한 행복감이 되살아났다. 그 사이에 더 단단해진 근육과 탄력을 잃은 피부는 갑작스런 손길과 고주파 기계의 촉감에 충격을 받긴 했으나, 난 모처럼 느긋한 여유를 즐겼다.
“고객님은 우리 숍을 방문한, 아니 제가 만져드린 고객 가운데 가장 어깨가 많이 뭉친 상태랍니다. 그래서 일반 코스가 아니라 스페셜 코스를 하셔야 효과가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꾸준히 관리를 받으셔야 한다는 겁니다.”
지름신이 강림했는지, 다시 맛본 천국 체험에 넋이 나갔는지 그날 나는 20회분 티켓을 끊었다. 영수증의 금액을 확인하고 약간 속이 쓰리긴 했으나 후회하진 않았다. 내가 번 돈으로 그동안 혹사한 내 몸에게 이 정도 선물은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광고 멘트처럼 “난 소중하니까요”를 외치면서 말이다.
이제 겨우 두 번째 마사지를 받았는데 확실히 어깨 근육이 몰랑몰랑해진 것 같다. 그런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마사지를 계속 받으려면 하염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데 퇴직하고 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손으로는 내 어깨를 만질 수도 없고 남편은 20초면 안마 끝인데. 늙어서도 마사지를 받으려면 적금을 들거나 부업거리라도 찾아봐야겠다.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여성동아 2009년 10월 5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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