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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해피토크

돕고 도움받는 행복, 아세요?

입력 2009.09.11 15:07:00

돕고 도움받는  행복, 아세요?

전명자_자연의 조화_8호_캔버스에 유채


“엄마, 여기 정말 좋아. 평생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엽서나 열쇠고리가 아닌 진짜 에펠탑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교환학생으로 프랑스 파리에 간 내 딸은 전화로, 메일로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하긴 누가 예술과 패션의 도시인 파리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20대 초반에 1년간 머무는 파리는 나처럼 세파에 찌든 중년이 잠시 방문하는 파리와는 전혀 다른 빛깔이리라.

인간관계 지수가 인생을 결정한다
내 딸이 이렇게 파리 생활을 즐기는 이유는 단지 파리가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화와 여가 생활을 책임져줄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 덕분이다. 딸은 약간 위험한 지역의 기숙사에 머물다가 안전하고 매력적인 동네로 거처를 옮겼다. 알고 지내는 패션칼럼니스트가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일 때문에 서울에 머무는 동안 그 집을 대신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돈은 낸다.
또 한국에서 유일하게 파리 매장을 갖고 있는 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씨의 딸 역시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있다. 우영미는 나의 대학동창이다. 그런 인연으로 지난번 파리컬렉션 때 아이는 패션쇼 무대 뒤에서 조각 같은 얼굴과 몸매의 남자모델들에게 옷을 입히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딸은 요즘 각종 박물관과 미술전시회에 다니느라 바쁘다. 지난번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을 제안 받았을 만큼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큐레이터 김승덕씨가 수시로 딸아이와 함께 전시회에 가서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승덕씨는 헤어디자이너 그레이스 리 선생의 따님으로, 나와는 20년 지기다.
주말에는 가끔 파리 교외에 있는 박인혜씨 집에 놀러간다. 인혜씨는 유학 도중 프랑스 남자와 결혼, 아이를 넷이나 낳고 와인에 심취해 현재 프랑스 와인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딸은 인혜씨 집에서 김치와 한식으로 차려진 밥도 먹고, 함께 와인박람회에 가서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한다. 인혜씨는 지금은 문을 닫은 내 홈페이지에 들어와 글을 남긴 인연으로 알게 된 사이다. 지난봄 딸은 프로방스 여행을 다녀왔다. 마르세유 근처에 사는 내 여중 동창생이 자동차에 딸을 싣고 4박5일 동안 프로방스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야말로 각계의 온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참 인덕과 인복이 많은 셈이다.
21세기는 NQ, 즉 인간관계 지수가 높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한다. 네트워킹이나 인맥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얘기다. 학연이나 지연을 전혀 따지지 않는 미국이나 서양에서도 어딘가에 취직하려면 추천서가 매우 중요하다. 그 사람을 제대로 설명해줄 추천자가 누구냐에 따라 직장의 자리가 결정된다.

돕고 도움받는  행복, 아세요?

전명자_자연의 조화_40호_캔버스에 유채


인맥관리는 가까운 사람부터
인맥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들은 부지런히 동창회에 얼굴을 내비치고 실력자에게 줄을 대려 노력한다. 각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에서 골프와 와인을 안주 삼아 인맥을 쌓는다. 하지만 내게 절실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귀인을 청와대나 장관실, 혹은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찾을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바로 내 주위의 사람들, 때로 아주 시시해 보이는 보통사람일 때가 더 많다.
세계적인 헤드헌팅회사의 대표인 밥 보딘은 최근 ‘내 안의 100명의 힘’이란 부제가 붙은 ‘WHO’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보딘은 정말로 소중한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거나 자신의 삶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살피라고 충고한다. 가까운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 새로운 인맥을 캐는 대신 초등학교 동창부터 사돈의 8촌까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따져보라는 것이다. 그런 인적 자원들은 쇼핑정보부터 취업까지 엄청난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
암에 걸렸다면 명의를 찾아 수술을 받는 것이 지름길이다. 하지만 저명한 명의는 보통 수술 스케줄이 밀려 있어 5,6개월씩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 명의나 병원장과 친분이 있다면 수술날짜를 빨리 잡을 수 있지만 의료계에 아는 이가 없다면 꼼짝없이 불안과 초조감 속에 세월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내 친구는 도우미 덕분에 남편의 암수술을 1주일 안으로 앞당겼다.
“우리 남편이 위암판정을 받았잖아. 수소문해보니 ○○병원의 ㄱ선생이 명의라는데 환자들이 너무 밀려 있는 거야. 주변에 의사도 없고 정보도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우리 도우미 아줌마가 그러더라. 자기가 ㄱ선생 딸이 아이를 낳았을 때 1년 동안 그 집에서 도우미 생활을 해서 친분이 있다고. 그 딸 부부가 외국에 가면서 자기도 나왔는데 아직도 그 부인과는 연락을 하고 가끔 반찬도 만들어주러 간다는 거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부탁했는데 그 아줌마가 워낙 잘했는지 수술 날짜를 앞당겨줬어.”
이런 구체적이고 확실한 도움뿐 아니다. 나의 응원군과 팬을 확보해두면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을 수 있다. 유명인사 대부분이 재능도 있지만 매스컴을 통해 성장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예수도 12제자의 전도와 알림의 도움 덕에 많은 이에게 존경을 받게 됐다.
물론 이런 도움을 받으려면 나부터 그들에게 귀인이 되고 도움을 줘야 한다. 내가 먼저 안부전화를 하고 아는 정보를 공유하면 그들도 내게 무언가를 되돌려준다. 물론 10개를 줬는데 3개도 안 돌려주는 이들도 있고, 하나를 줬는데 10개씩 되돌려주는 이들도 있다. 또 두 개쯤 갖고 있을 줄 알았는데 10개나 갖고 있는 이들도 있고 20개쯤 갖고 있다고 자랑했지만 알고 보면 빈 상자인 이들도 있다.
힘들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 나타나 “뭘 도와줄까?”라고 건네는 말처럼 감동적인 게 있을까. 또 내가 누군가를 도와 남들에게 귀인 대접을 받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있을까. ‘노후(Know Who)’가 우리의 노후 행복을 결정하는 것 같다.







▼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여성동아 2009년 9월 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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