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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해피토크

관계의 기술

입력 2009.06.10 17:59:00

관계의  기술

김태원_남자들의 수다_2008_53×63cm



친구 몇 명이 모여 한 친구에 대한 품평회를 열었다. 애교 덩어리에 그 누구를 만나도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리는 사교술의 대가인 친구가 주인공이었다. 그 친구는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에게도 선물을 주며 엄청나게 다정한 태도로 대한다. 처음에는 거부 반응을 보이던 이들도 몇 번 만나면 그의 포로가 되고 마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 훌륭한 인맥과 로비 능력을 갖춘 그 친구에 대한 질투와 찬사, 부러움, 연민 등을 안주 삼아 수다가 이어지던 중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면 넌 참 드라이한 편이야. 때론 너무 사무적으로 느껴지기도 해.”
애교가 없다거나 지나치게 씩씩하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와 서로 속내까지 다 털어놓는 사이인 친구가 나를 드라이하다고 평가하니 기분이 묘했다. 건조한 성격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해심이 없고 사무적으로 대한다는 말인데, 기분 좋을 리 없다.

‘쿨’하다는 착각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다정다감하거나 싹싹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사람들, 특히 친구들에게는 진심으로 대한다고 생각했다. 경조사도 빠지지 않는 편이고 누가 아프면 나도 덩달아 아파했다. 나이가 든 뒤에는 많이 착해져 누가 잘된 일에도 배 아파하지 않고 충심으로 축하했다. 또 작은 선물도 잘 전하는 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이한데다가 사무적이라니….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난 누가 아파할 때 왜 아파하는지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상처만으로 충분히 아플 텐데 왜, 어째서, 어떻게 아프냐고 캐물어서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이혼을 했다고 뒤늦게 고백한 사람에게도 “왜요? 남편이 바람피웠나요?”라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이 알아서 털어놓기를 기다렸고 이야기를 해주면 귀 기울여 들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배려였다. 내가 괴로울 땐, 그저 가만히 놔두었으면 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댈 어깨나 묵묵히 들어줄 귀가 필요했을 뿐, 자기감정에 겨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은 피곤했다. 내가 그랬기에 남들에게도 그렇게 대한 것이다.
또 기자로 20여 년을 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질문이 취재나 인터뷰를 하듯 딱딱해지긴 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이들에겐 사무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맞장구를 쳐야 하는데 “음, 지금 좀 바쁘니까 이따 내가 다시 전화할게”라며 중간에 끊게 된다.
또 직업상 두서없이 한 이야기를 또 하고 자초지종을 마구 늘어놓을 때는 은근히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기도 할 것이다. 딸아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도 내가 피곤할 때는 나도 모르게 “용건만 간략히 정리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곤 내가 쿨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곰곰 주변을 살펴보니 ‘사랑스럽다’ ‘다정다감하다’란 찬사를 받는 이들이 무척 많았다. 한 친구는 친구들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내고 문제가 생기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답게 “내가 기도해줄게”라고 말한다. 하도 진심어린 태도라 이번에 쓸개 제거수술을 받을 때도 그 친구에게 “기도해줘”라고 부탁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집도한 의사보다 기도해준 그 친구에게 더 감사했다. 그 친구의 ‘기도빨’ 덕분에 수술이 잘된 것 같아서 말이다.
관계의  기술

김태원_결혼식_2008_53×63cm


다정다감한 사람이 되려면?
한 여사장은 축하를 한 박자 늦게 해서 감동을 준다. 지난해 추석이 열흘쯤 지났을 때 사과 한 상자를 받았다. 시골 과수원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지금쯤 과일이 떨어졌을 것 같았다고 한다. 그저 사과 한 상자일 뿐인데 가물 때의 사과맛은 유난히 달았다. 그 여사장은 한 선배가 승진했을 때도 보름쯤 지나서야 예쁜 화분을 보냈다고 한다. 축하 화분들이 이제는 시들었을 것 같아서, 자기를 더 오래 기억해달라는 의미로 말이다.
탤런트이자 최고의 라디오 진행자인 최유라씨도 인간관계에서 대가 수준이다. 내 생일에 그는 직접 만든 헝겊 필통을 선물했다. 그 바쁜 사람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만든 필통은 지금도 요긴하게 쓰인다.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럭셔리 브랜드는 아니지만 세상에서 둘도 없는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쓸개 제거수술을 하고 난 뒤에는 친정엄마의 농장에서 딴 싱싱한 채소를 택배로 보내줬다. 고기를 못 먹으니 채소식단을 즐기라면서. 그 사람이 내게 잘 보일 이유도, 선물할 필요도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예쁜 짓(?)을 하니 어찌 사랑받지 않을 수 있을까.
명강사로 소문난 최윤희씨는 수시로 편지나 문자를 건넨다. ‘세상에서 젤 예쁜 인경님, 모하셔용?’ 등 60세가 넘은 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통통 튀는 신세대 용어로 칭찬을 난사한다. ‘이건 좀 심하다’ 싶으면서도 칭찬과 아부에 약한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라 그분만 보면 기분이 좋다.
이렇게 주변에 사랑스럽고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가득한데 정작 난 왜 이렇게 건조하게 살았을까. 하지만 애교나 다감한 성격은 피를 수혈하거나 유전자 변형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지 않는가. 고민하는 내게 친구가 이런 조언을 했다.
“네가 이기적이거나 싹수없다는 뜻이 아니야. 넌 사려 깊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 하지만 그건 네 방식이거든. 네가 생각하는 배려심이지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배려가 아니라는 거지. 제일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거야. 넌 어떤 사람의 이혼 배경을 물어보면 그 사람이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하지만 그 사람은 네게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을 수도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 네게 바라는 것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아니거든. 뭔가 꼭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라고 먼저 물어봐.”
어린아이도 아닌데 아직도 인간관계의 기본을 몰라 이렇게 헤매고 충고를 듣는 내가 참 한심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새로 배우고 노력해야 늙어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좀 사근사근해지면 칠순 넘어서도 친구들과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고 여행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여성동아 2009년 6월 5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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